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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Aug 01.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23

문어와 조정

이십일 일째 걷는다. 이제야 속이 좀 덜 복잡하다.
오후에 안사람과 문자를 주고받는데 뜬금없이 “당신도 길에서 도닦아요?” 하길래 그냥 눙치고 넘어갔지만 사실 지금 별생각 없다. 이메일 오면 답장하고 문자 오면 걷다가 자판도 잘 안 보이고 해서 씹는 경우도 있고 정히 답을 해야 할 상황이면 그냥 보이스톡을 한다. 되는 일은 되는대로 안 되는 일은 안 되는대로..



갈리시아 근처로 오기는 온 모양이다. 여기 문어 요리가 알아준다고 하던데 오늘 묵는 알베르게 근처로 걸어 들어오는 마을에 문어 요리 간판이 여럿 보인다.



빨래해서 널고 남은 올리브로 캔맥주 사서 마시며 어제 포도주 마시느라 건너뛴 순례기 써서 올리고 그 문어 집을 찾아 나섰다. 몇십 년 한국 문어에 길들여졌으니 이국땅의 색다른 조리법이 입에 맞을 리 없다. 문어 삶아서 시즈닝 해서 먹는 건데 역시 문어엔 우리나라 초고추장만큼 어울리는 양념도 없는 것 같다.



한 접시 해 치우고 오늘은 글감이 없으니 생각이 비어 좋다라고만 쓰고 자야지 하고 걸어오는데 다리 위에서 카누(카약일지도)를 힘차게 젓고 오는 모습을 보았다. 한 학기하고 탈퇴했지만 나는 조정부였었다. 87년도에.. 화공과 동기도 두엇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 수업거부는 했어도 조정부 연습에는 꼭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동틀 무렵 한강에 모여 콕스가 있는 포(four)를 타고 해가 떠오르던 한강을 가르며 노를 저었던 생각이 난다.



한참을 다리 위에 서서 노 젓는 모습을 보다 왔다. 숙소인 성당 옆 공립 알베르게 앞에 앞서 보았던 배 타던 강의 지류가 작게 흐른다. 왠지 모르게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다. 문어 먹으며 마신 맥주가 확 깰 정도로 차갑다.

2019. 7. 31.

오늘의 사족 1. 발 사진이 많이 올라간다. 어쩔 수 없다. 발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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