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위 May 28. 2021

꽃씨가 담긴 지갑

자본 대신 꽃, 그 다음은?


아침 FM에서 꽃씨가 담긴 지갑이라는 어느 화가의 표현을 듣고 문득 생각났다.

연구실에 작은 화분이 있다.

주인이 무심하여 살아남지 못하였다.

기억도 무심하여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도 가뭇하고,

이 작은 화분에서 생명을 부지하였던 것이 무엇인지도 망각의 바다로 건너가버렸다.


작은 화분은 잊혔다.

작위가 아니라 부작위였다.

파견 가느라 2년을 연구실을 비워두어야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방안에 남은 마른 화분..


복귀하여 이런저런 일상을 챙기고

부서에서 단체로 구입하여 나누어준 화분을 옆에 두고 다시 물 주게 되었다.

경이롭게도 마른 화분이 촉촉해지자 며칠 지나지 않아 새싹이 올라왔다.

몇백 년 된 씨앗이 조건이 맞으면 싹을 틔우니 경이롭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은 과장일 수 있다.

연꽃 씨앗이 그러하고 예수님 살았을  대추야자 씨앗이 싹을 틔우는데 고작   기다린 것이 어찌 경이에 속하겠는가!



그때 받은 화분에 심긴 이가 잎이 작은 클로버였을리는 없을 것이다.

싹을 틔우고 본성을 드러낸 화분엔 세 잎의 아기자기한 클로버가 한가득이다.

정성을 들여 씨앗을 받아 키움을 당했던 이는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생명력 하나로 버텨온 잡초가 생을 복원하였다.


골칫거리가 생겼다.

작은 대롱 모양의 씨앗 주머니에서 클로버는 쉴 새 없이 씨앗을 쏟아낸다.

얼마나 힘이 좋은지 손이 닿을 수 없는 유리 벽 높은 곳까지 씨앗을 쏘아 올린다.

언젠가 잎을 쓰다듬다 세상을 향해 나갈 준비가 된 씨앗 주머니를 건드린 적 있다.

순간 손가락과 손바닥에 작은 비비탄을 쏜듯한 느낌의 씨앗 두드림이 있다.

경이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누군가 고이 지갑에 모시고 있던 씨앗이 아니다.

야생의 삶은 살아남기 위해 주머니 가득 씨앗을 길러내고 준비되면 자기 키의 수십 배 높이와 넓이의 세상을 향해 쏘아 보내는 것이다.

지갑에 자본을 넣어두기보다 꽃씨를 넣어두는 삶이 좋을 것이다.

잡초의 씨앗은 누구도 거두어들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살아남는다.


작가의 이전글 아카시아꽃잎이 날린다는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