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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10. 2019

가지 않은 길?

Pros and Cons of Being a Parisien_06

Pros and Cons of Being a Parisien_01

계절이 바뀌는 기간이라 목 아프고 열나는 식구들이 생긴다. 막내가 어젯밤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급기야 아침엔 학교 가기가 귀찮은 눈치다. 얼래고 달래고 해서 같이 나왔는데 이마를 만져보니 미열이 있다. 학교 문 앞에서 진하게 비쥬(bisou)를 하고 헤어졌다.


파리에서 출근길에 듣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은 한국 시간으로 명연주 명음반이 나올 때다.


늘 만나는 갈림길에서 선택은 늘 일정하다. 그러니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길이라 해야 맞다. 프로스트가 언어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렸던 제목은 ‘The Road Not Taken’이다.


오십을 지나며 생긴 변화라면 어느 때부터인가 말러의 곡들을 들을 때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선택한 나무가 우거진 길, 낙엽이 덮인 산책로에서 말러를 듣는다. 나는 말러를 선택하지 않았다. 저기 멀리 오솔길 끝에 비껴 든 햇살처럼 라디오 전파가 세계를 둘러싼 웹망을 통해 나에게 부작위 하게 선사되었을 따름이다.


OECD 본부 건물 뒷편 하넬라그 공원 산책길


말러의 5번이, 저기 저 햇살이, 그리고 가을내음 묻어나기 시작하는 아침 공기가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이끈다.
나는 오늘 일탈을 감행하기로 한다.


오늘의 사족: 친구들이 글을 보고 어떤 일탈이었냐고 물어왔다. 

소소하다. 나는 그저 출근하다 말고 벤치에 앉아서 말러 5번을 끝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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