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위 Jul 11.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01

Bee, 그럼 난 꽃인가?

떠나는 날 아침은 밤 사이 비가 온 탓인지 눅눅하다. 파리답지 않다. TGV를 타고 남쪽 보르도 근처로 오니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개이고 햇살이 쏟아진다.

보르도까지 시속 300km를 넘나들며 내달리던 기차는 이제 쉬엄쉬엄 간다. 졸다 깨다 반복하다 에스프레소 한잔이 아쉬워 몇 칸을 건너 식당차로 가 줄을 서는데 한 눈에도 ‘나 한국 성형 미인이오’라고 알아볼만한 젊은 처자 둘이 내 앞에 서 있다. 모양새가 까미노 할 차림은 아닌데..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삼십일 넘어 걸을 것이니 길을 가며 수많은 인연을 접하게 될 것이고 글로 남을 것이다.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 오전엔 언제나 정답이다. 다시 몇 칸 건너오는데 앞자리 마담 둘이 서서 이야기하다 날 보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어쩔 줄 몰라한다.

저느빠흘레빠프헝세! 그러니 Bee on yourhead라고 한다. 이마로 손을 가져가니 그제야 벌 한 마리가 떠난다. Maybe she likes me! 상황은 그렇게 웃으며 종료..

2019. 7. 11.


오늘의 사족 1. 길 떠나면 글 써진다는 경험칙에 의존하여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챙겨 왔는데.. 아뿔싸 배터리가 다 됐네..

2. 저느빠흘레빠프헝세, 빠리 살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불어 못해요!

3. 도시만 벗어나면 넓게 펼친 대지위로 밀밭 옥수수밭 포도밭이 끝도 없다. 지난달 아들들과 베르동 계곡 근처 갔다가 지평선과 맞닿은 라벤더밭 보고 좀 질린다 싶었어..


4. 이번엔 그냥 걷기로 아무 생각 없이.. 초보 명상이 생각을 비우는 것이라 들었는데.. 비우고 비우고 다 비우고 돌아올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Pharos of Alexandr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