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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24.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14

믿음이 좋다는 것에 대하여

보통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까지 함께 잠을 자는 알베르게에 머물게 되면 자연스레 페레그리노(순례자 또는 도보여행자)들과 말을 섞게 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왜 이 길에 나섰느냐이다. 할 말이 끊어져 침묵을 견디다 못한 질문일 수도 있고 사도가 걸어간 믿음의 길을 수행하는 정신으로 묵묵히 걷는 이의 간절한 인생 질문일 수도 있겠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길을 걷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대화의 말미에는 항상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기도하겠다, 나도 네가 만든 그 길을 걸으러 가겠다, 이런 반응들이 따라온다.



육체적 고통이라고 하면 표현이 너무 극단적이지만 뙤약볕 아래에서 30킬로미터 넘게 걷는 것이 즐겁다고 하긴 어렵겠다. 하지만 순례자들은 넘쳐 나고 각자 마음에 품은 기도를 위해 또는 품은 마음을 버리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탈리아 출신 마우로와 했던 이틀 전 이야기가 내내 마음에 걸린다. 누구보다 열렬히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하겠다고 한 친구인데 사단은 그가 꺼낸 예수의 수의라고 알려진 천조각의 진위를 소위 과학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논란 때문이다. 듣다가 이번엔 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게 정말 중요한 것이냐고.. 순간 썰렁해지며 자리가 어영부영하다가 마무리되었다.




세상사 이름 붙이기와 경계 정하기가 대부분이라 생각하는 나로선 이런 허무한 상황을 뭐라 해야 할지 난감하다. 오십이 넘어도 아직 갈 길이 한참이다.


예보가 오늘부터 나흘 내리 37-8도를 오르내린다고 하더니 점심 무렵부터는 땀이 줄줄 흐른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시작하여 삼십 킬로 넘게 걸어서 당도한 마을에서 한글로 비빔밥 된장국이라 써놓은 알베르게 입간판을 보고 반갑기 그지없다.




오늘의 사족 1. 문 앞에 당도하니 오늘 닫는다고 친절하게 한글로 써 붙여 놓았다. 이런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2. 두 번째 찾아간 알베르게는 할아버지 주인장이 엄청 친절한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신다. 그래도 큰 문제없다.
3. 오늘도 마무리는 차가운 맥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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