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0일
⊙ 5월 10일 동선
알트슈타트 → 벡 베르크 → 체칠리엔호프 궁전 → 마이어라이 융페른 호수 → 하이더 카페
→ 포츠담 네덜란드 거리 → 상수시 궁전 → 포츠담 와인 축제 → 혜진이네 집 → 숙소 복귀
요즘 일이 좀 바빠지면서 브런치에 글 쓰는 시간이 빠듯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져서 아쉬웠었는데,
바빴던 일들을 끝내고 잠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 나를 위한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위안이 된다.
오랜만에 여행 다녀온 사진을 보고, 체칠리엔호프 궁전의 역사를 살펴보는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니까~
브런치를 쓸 때면, 독일 여행을 가기 전보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 역사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알면 알수록 시대의 전후가 궁금해져서 100년의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알아보곤 한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지금과 다른 현실이 펼쳐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도 싶다.^^
오늘의 여행지는 포츠담의 '노이어 가르텐(Neuer Garten)' 이다.
융페른 호수(Jungfernsee)와 하일리거 호수(Heiliger See)를 끼고 있는 이 공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장소 '체칠리엔호프 궁전(Schloss Cecilienhof)'이 있는 곳인데
경치를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정말 2차 세계대전의 정상들이 모여 회담을 나눴던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노이어 가르텐은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이 된 장소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노이어 가르텐
Neuer Garten
포츠담 시내에서 603번 버스를 타고 노이어 가르텐을 향해 달리다 보면 시내와는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진다.
고급스러운 단독 주택 거리와 평화로운 골목길을 지나는데,
이 골목을 지나는 버스가 603번 버스 한 대라고 하니~ 이 동네를 순회하는 전용 버스 느낌도 든다.
한편으로는 '아... 이 동네는 차 없으면 살기 힘들겠구나!'
혹은 '다들 부자 같아 보이니 차 없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 약 15분 정도 달리다 보면 횔레슈트라세(Potsdam, Höhenstr.)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여기가 바로 노이어 가르텐과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가 가는 방향으로 걸어서 약 1분? 정도만 가면 노이어 가르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노이어 가르텐의 입구는 유~명한 재벌가 대문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길게 뻗은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면 성처럼 생긴 대저택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녹음이 우거진 길은 부의 상징 같았고
재력을 과시하듯 값비싼 나무로 정원 곳곳을 장식해놓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정원에 들어서면 초록초록한 자연의 기운에 둘러써여 힐링이 되는 기분이 느껴질 뿐이었다.
노이어 가르텐은 독일어로 새로운(Neuer) 정원(Garten)이라는 의미로 신정원(新庭園)이라는 뜻이다.
이 정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포츠담에는 이미 18세기에 프랑스식 정원으로 만든 '상수시 궁전'이 있었는데
당시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정형화되고 자로 자른 듯 가꾸어진 프랑스식 정원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린 '영국식 정원'을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에
'신정원'이란 의미의 노이어 가르텐(20세기 초 완공)을 조성하게 된 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정원의 나무를 하나하나 보면
'자라고 싶은 만큼 자라라' 하는 것처럼 관리를 안 한 것 같고, 산 속에서 혼자 자란 느낌인데~
주변 경관과 같이 살펴보면 울창한 숲처럼 어우러져서 나름의 관리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자연스러움'을 살린 치밀한 계획으로 조성된 정원이라는 건가? 이게 더 관리가 어려울 것 같긴 하다.
입구에서 들어와 조금만 걷다 보면,
어느덧 거대한 역사의 현장에 닿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체칠리엔호프 궁전'이다.
체칠리엔호프 궁전
Schloss Cecilienhof
체칠리엔엔호프 궁전은 우리의 분단 역사와도 연관이 있는 '포츠담 회담(1945년)'이 열린 장소로 유명하다.
이 회담에서 '한국'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츠담 회담'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포츠담보다 앞선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일본이 강제로 뺏은 땅을 다 돌려주겠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안에
'앞으로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된 상태로 만들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었고,
포츠담 선언 제8항에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이 회담이 우리나라의 독립과 분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묵살하자,
미국은 회담 직후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터트렸다.
그 후, 일본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힘 싸움이 우리나라를 향한 신탁통치 논란으로 이어졌다.
카이로 선언에서 말했던 '적절한 절차'라는 게 '신탁통치'였다는 걸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강대국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각자 자신들의 구역을 정해 정부를 세우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우리나라에는 남과 북을 나누는 38선이라는 경계선이 생기게 된 것이다.
선언, 회담 등 단어만 들었을 땐 대화로 풀어가는 평화로운 의견 조율 같은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우리나라가 강대국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슬픈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독립을 해서 좋지만, 어떻게 보면 분단이 시작된 이야기...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안타까운 한국의 역사가 이 안에 담겨 있었다.
사실, '포츠담 회담'이란 말 자체는 익숙하지만 회담이 열린 장소가 어떤 곳인지는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상상했던 이미지도 없었을 뿐아니라, 회담이 열린 장소가 어떤 곳인지 찾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을 보고 역사적 이야기도 살펴보면서 이 장소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체칠리엔호프 궁전의 첫 인상은, '궁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박했고 시골집처럼 아담한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미국의 트루먼,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모여
2차 세계 대전의 종지부를 찍고, 독일의 분할 점령과 전후 질서를 의논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현재 내부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회담 당시 사용되었던 회의장과 각국 정상들의 업무실을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궁전의 일부는 호텔로도 사용하고 있어서 역사적인 장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특별한 경험도 가능하다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간 날은 보수 공사 기간이라 관람이 중단된 상태였다.
100년이 넘은 건물이다 보니 노후되어 2023년부터 대대적인 보수 및 복원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2027년 다시 문을 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공사 규모가 크고 독일의 공공 공사는 워낙 꼼꼼하게 하는 걸로 유명하다 보니 더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체칠리엔호프 궁전에서 포츠담 회담이 열리기 전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이름 자체가 '궁전'인데~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던 걸까 궁금해졌다.
체칠리엔호프는 독일의 호엔촐레른 왕가가 지은 마지막 궁전(1917년 완공)이다.
황태자 빌헬름이 그의 아내 체칠리에를 위해 지은 궁전인데,
아내가 영국식 전원주택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의 취향을 반영해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체칠리엔호프(Cecilie's Court)라고 불리게 된 것인데~ 황태자가 참 스윗했나보다.
빌헬름 역시, 영국 스타일의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거대한 돌덩이로 짓는 독일식 궁전 대신
영국의 시골 영주가 살 법한 영국식 궁전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실제로 체칠리엔호프 궁전의 외벽을 보면,
검은색 나무 기둥이 드러나 있고 그 사이를 벽돌과 석회로 채운 형태인데
검은 뼈대와 하얀 벽이 바로 영국의 15~16세기 튜더 왕조 시대 유행했던
'튜더 양식(Tudor Style)' 건축법이라고 한다.
또한, 가파른 삼각형 형태의 지붕과 높고 뾰족한 굴뚝도 튜더 양식의 상징 중 하나인데~
체칠리엔호프 궁전의 지붕을 보면 굴뚝의 디자인들이 각각 묘하게 다르게 생긴 걸 알 수 있었다.
굴뚝 하나하나에도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겉모습은 500년 전 건축법이지만, 내부는 그 당시 가장 트렌디했던
1900년대 영국 에드워드 7세 스타일로 지었다는 체칠리엔호프 궁전!
이름하야 '에드워드 양식English Manor House'으로 지은 이곳은 개방적인 우아함을 지향하기 때문에
창문은 중세 성곽 느낌이 아니라 햇빛이 잘 들도록 넓게 배치했고, 방의 배치나 높낮이도 자유롭다고 한다.
궁전 안에 들어가서 봤다면 더 실감이 났을 텐데~ 못 보고 온 게 참 아쉽다.
대저택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 안에 방이 무려 176개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깜짝 놀랐다.
대체 그 수많은 방들이 어떻게 다 들어갔을까?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을 읽어보면,
건축가가 건물의 실제 규모를 숨기기 위해서 건물을 영리하게 배치했다고 한다는데
왜, 규모를 숨기려고 했던 걸까?
이 정도 규모면 집에 무슨 방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까먹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한 번도 안 들어가는 방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황태자 부부가 이곳에 살았던 건 고작 1년 남짓하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기 직전에 독일 내부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황실이 폐지되면서
황태자의 아버지인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도망갔다.
황태자 부부도 궁전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나야했기 때문에 궁전을 온전히 즐긴 건 상당히 짧은 기간이었다.
1920년대, 잠시 다시 돌아와 살기도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군이 들이닥치자
1945년 초, 영원히 이곳을 떠나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황태자가 아끼던 메인 홀이 연합군의 회담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회담을 위해 궁전의 원래 가구들은 대부분 교체되었고, 스탈린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모스크바에서 직접 공수해 온 거대한 원형 테이블과 가구를 배치했다고 한다.
현재도 궁전의 메인 홀에는 지름이 3미터나 되는 붉은색 원형 탁자가 있다는데
누가 상석에 앉을 것인가 하는 다툼을 예방하기 위해 원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름의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 방에 가면 트루먼, 처칠, 스탈린이 앉았던 자리에 각 나라의 국기가 놓여있다고 한다.
또한, 스탈린은 포츠담 회담이 열리기 직전!
승전국으로서의 자부심과 소련의 힘을 시각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회담장 정중앙에 있는 뜰에 소련을 상징하는 거대한 '붉은 별' 꽃밭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현재도 붉은 별 꽃밭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걸 봤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 정원은 초록초록한 잔디뿐이었다. 이제는 붉은 별이 없어진 걸까?
역사를 보존하고 잊지 않으려는 독일인데... 붉은 별을 없앴을까?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못 찾았던 게 아닐까 싶다.
회담 당시, 세 나라의 정상들이 모이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들도 있었다는데
각 정상들은 개인 화장실을 따로 요구했었다고 한다.
스탈린은 혹시나 독살 당하거나 도청당할까봐 자신의 침실과 화장실을 철저히 격리하고
경비병을 쫙~ 깔았을 정도라고 하는데...
회담은 '대화'란 '칼'을 들고 모인 자리니까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소련군이 1층 회담장을 꾸미는 동안, 2층에 있던 황태자 부부의 사적인 공간은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특히, 체칠리에가 배 여행을 좋아해서 방 안을 호화 유람선 내부처럼 꾸며놓았은 '선실 모양의 방(Cabin Room)'이 있는데,
이 방에 들어가면 실제 배 안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라고 한다.
추후, 포츠담에 다시 가게 된다면 내부를 둘러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노이어 가르텐은 1990년, 체칠리엔호프 궁전을 포함해서 공원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독일이 통일한 게 1990년 10월, 그리고 두 달 뒤 12월 이곳이 세계적인 보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어떻게 통일이 되자마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을까?
신기한 게,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에도 문화유산은 하나라는 생각으로 1989년부터 지정 신청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점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덕분에 통일이 되자마자 축하 선물처럼 승인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범위는 노이어 가르텐과 체칠리엔호프 궁전뿐 아니라
계단식 포도밭 정원과 상수시 궁전으로 유명한 상수시 구역,
건너편에 있는 성과 공원인 바벨스베르크,
글리니케 성, 사크로브 교회 등
하펠강을 따라 펼쳐진 포츠담 전체 면적이 거의 다 포함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범위가 무려 500헥타르에 이른다는데, 축구장 700개와 맞먹는 크기라고 하니 가늠이 잘 안 된다.
이곳은 인간의 창의성이 자연 풍경과 조화를 이룬 걸작이라는 평가로 하나의 유산으로 인정받았고
강, 호수, 숲, 궁전 등이 모여서 거대한 풍경화를 이루는 셈이다.
이 정도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야외 미술관 아닌가?
때문에, 노이어 가르텐에는 체칠리엔호프 궁전 뿐 아니라 다른 건축물과 숲의 조화가 상당히 예뻤다.
카발리에하우스
Kavalierhaus
공원을 걷다 보니 민트빛의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이곳은 과거 궁정 관리나 귀빈들이 묵었던 별관이라고 한다.
독일의 궁전 단지에는 본관 외에 왕족을 보좌하는 신하, 귀족, 또는 귀한 손님이 머무는 별관을 짓곤 했는데
이를 카발리에하우스(Kavalierhaus)라고 부른다.
건물 자체 컬러가 화려해서 어떤 곳일까 궁금했는데 고급 숙소였구나~
우리는 이 민트 건물을 지나면서
곧 독일에 방문 예정인 혜진이의 귀빈 '어머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를 맞이할 설렘 반, 한편으로는 먼 길을 오실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반이었는데
작년 추석, 어머니는 무사히 딸의 집을 방문해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흘렀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공원을 거닐다 보니 호수를 유유자적 항해하는 배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는데
크고 작은 배들이 두둥실 떠 있는 모습이 정말 구름하고 마주보고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세상 부러운 힐링 타임이라고 해야 하나?
알고 보니, 포츠담에는 실제 부자들이 별장을 지어서 휴양 오는 경우가 많고
개인 배로 자유롭게 항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와~ 포츠담은 부자들의 휴양지였구나!^^
에레미타주
EREMITAGE
호수를 따라 걷다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오두막 집이 나왔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집'이었나? 싶었는데 웬 걸~ 왕족의 응접실이라고 한다.
창고 같은 개념인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내부 구조는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화려한 모습이었다.
이 건물은 1796년에 빌헬름 2세를 위해 지은 비밀 응접실인데
거창한 궁전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며 차를 마시고 싶을 때나 쉬고 싶을 때 찾던 왕실의 개인 카페인 셈이다.
가까운 지인이나 귀빈을 초대해 다과를 나누던 일종의 아지트라고 할까?
내부는 천장과 벽면에 수천 개의 조개껍데기, 산호, 대리석으로 꾸며놓았다는데
촛불을 켜면 그 빛이 번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당시에 철거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다행히 내부 벽면 일부가 보존되어 있었던 상황이라,
2007년, 재건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슐로스퀴헤
Schlossküche
노이어 가르텐을 걷다 보니 특이하게 생긴 동굴도 보였는데, 이게 궁전의 주방이라고 한다.
생긴 것도 특이하고, 이제는 폐허가 되어 독특한 이곳이 주방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는데...
처음부터 인공 동굴 형식으로 지었고 이 모습이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 스타일이란다.
낭만과 돌로 지은 동굴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특이하지 않은가?
주방을 마치 고대 유적처럼 보이게 장식한 거라는데 그때와 현재 미의 기준이 다른 거라서 낭만의 기준도 다르지 않을까 싶다.
1917년 체칠리엔호프 궁전이 완공되었을 때,
궁전에서 먹을 모든 음식을 이곳에서 만들었는데 음식을 어떻게 가져갔을까 했더니
이 주방 안에는 궁전으로 향하는 지하 통로가 숨어있다고 한다.
음식 냄새나 소음이 방해되지 않도록
주방을 별도의 건물로 지어서 지하로 연결했고
정원을 가로질러서 음식을 들고 가면 왕족들의 산책에 방해가 되어서 지상으로는 못 갔다고 한다.
비 오거나 추운 날 음식이 상하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 지하로 가는 게 편했을 것 같기도 한데…
아이디어는 좋긴 하지만,
음식을 가져가는 신하들은 식을까봐 혹은 흘릴까봐 죽을 맛이었을 것 같다.
브루어리 마이어라이
Brauerei Meierei
공원을 한참을 돌았는데도 너무 넓어서 반대편은 가보지도 못 했다.
그리고 출구 가까이 왔을 때 보였던 곳은 바로 브루어리 마이어라이다!
이곳은 1791년 지어진 건물로, 왕실에 우유를 공급하던 알테 마이어라이(Alte Meierei)였다.
왕실 가족들이 신선한 우유를 마시며 전원 놀이를 즐기던 장소라는데
지금은 수제 맥주를 파는 브루어리 마이어라이가 되었다.
테라스에서 융페른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생맥주 한 잔이 정말 기가막힌 곳~!
이 절경을 보면서 왕족들은 여기서 휴식을 취했겠구나~
독일에서 마신 맥주 중에서 Best3안에 꼽히는 맥주다.
모든 맥주가 다 맛있었지만, 따뜻한 햇살 아래~ 적당히 부는 바람을 즐기고
탁 트인 호수를 바라보며 마신 이 맥주가 정말 맛있었다!
맥주를 한 모금 딱 마셨을 때, 맥주 거품도 정말 부드러웠고 고소한 맥아 향이 매력적이었다.
목 넘김도 깔끔해서 와~ 감탄을 연발했고, 혼자 맥주 광고 찍듯이 표정변화가 얼마나 요란했는지 모른다.^^
양조장이 있는 곳이고, 신선한 맥주라서 그런 건가?
너를 내 인생 맥주로 임명한다~^^
◎ 비용
맥주 (0.5L) 2잔 x €5.00
▶ Total = €10.00
(한화 15,741원 / 5월 10일 환율 기준)
옛날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는 유람선이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그냥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따로 없던 시간이었다.
노이어 가르텐에는 아직 내가 보지 못 한 곳이 많다.
빌헬름 2세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했던 '대리석 궁전 마르모르팔레(Marmorpalais)',
고딕 양식으로 지은 '도서관 (Gotische Bibliothek)',
겨울에 얼음을 보관하던 '피라미드 창고(Eiskeller)',
오렌지 나무나 식물을 보관하던 온실 '오랑제리 (Orangerie)'까지
하루에 다 구경을 못 할 정도로 넓으니
포츠담에 간다면 여유있게 공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노이어 가르텐 ※
주소
☞ Am Neuen Garten, 14467 Potsdam, 독일
[위치] https://maps.app.goo.gl/T357ynbAZn9koyKdA
연락처
℡ +49 3319694200
홈페이지
https://www.spsg.de/schloesser-gaerten/objekt/neuer-garten/
※ 체칠리엔호프 궁전 ※
주소
☞ Im Neuen Garten 11, 14469 Potsdam, 독일
[위치] https://maps.app.goo.gl/b86byy5jNdrkAvPg7
연락처
+49 3319694200
홈페이지
https://www.spsg.de/schloesser-gaerten/objekt/schloss-cecilienhof/
※ 브루어리 마이어라이 ※
주소
☞ Im Neuen Garten 10, 14469 Potsdam, 독일
[위치] https://maps.app.goo.gl/WYSFwnQymoJfYsBaA
연락처
+49 3317043211
영업시간
- 목요일 : 오후 1시 00분 ~ 오후 9시 00분
- 금~토 : 오후 12시 00분 ~ 오후 10시 00분
- 일요일 : 오후 12시 00분 ~ 오후 9시 00분
- 월~수 : 휴무
홈페이지
https://www.meierei-potsdam.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