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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Oct 12. 2023

나무는 생각했다.

2023 1008


#309


구름이 걷히고, 지나가는 바람이 물었다.

‘나무야, 언제까지 이곳에서 버티고 있을 거니? 한 곳에서 지내기 지겹지 않니?’ 


나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흩날리는 바람에 자신의 이파리들을 내어주고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듯 다시 땅을 촉촉히 적셔줄 비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은 나무를 스쳐 지나가며 또 말했다.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다니며 세상을 구경하는데 너는 한 곳만 바라보니 참 불쌍하구나.’


나무는 이번에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바람에 흐트러지는 잎새들은 처량해 보이기도 했지만,

떨어진 잎들은 곧 강물 따라 여행길에 나서는 듯했다.


바람은 ‘또 올게’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며 휙 사라져 버렸다.


나무는 생각했다. 


떠나가는 바람에 

떨어지는 잎새에 

사라지는 구름에 


자신마저 움직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무는 내년에 또 바람이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일 년 내내 자라온 자식 같은 잎새들만 내어주고 

자신은 끝까지 버티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 산다고


나무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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