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111
#11
야밤에 축구를 하고 왔다.
커뮤니티 센터에서 주최(?) 하는 실내 축구 프로그램이 있어 운동도 할 겸 신청해 봤다.
막상 가보니 다들 배 나온 아저씨들..
캐나다 조기축구..(아니 야밤축구) 같은 느낌이었는데
평소에 운동 잘 안 하던 내가 뛰기에 딱 알맞은 수준이었다.
그나마 나는 젊은 편에 속해서 그런지 아저씨들은 나를 공격수로 세웠고
덕분에 2골이나 넣는 쾌거를 이루었다.
아저씨들과 한참 공을 차고 있자니 나도 어느새 아저씨가 다 된 느낌이었다 (나 애둘 아저씨..맞다).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 ‘나의 아저씨’ 에도 조기 축구회에서 공을 차는 아저씨들이 나온다.
이 아저씨들은 오래전부터 ‘후계동’이라는 곳에 모여 살며 축구로, 술로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형제들이다.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디서 맞아 멍든 자국이라도 보이면 밤낮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가 같이 화내며 따져준다.
이 아저씨들은 진짜 ‘친구들’이다.
사역자가 되고 나서 잃은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친구들’이다.
오늘 사랑하는 동생 전도사가 ‘Pastors have no friends’라는 블로그 포스트를 보내왔다.
처음 고등부 전도사로 사역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사역을 마치면 1시쯤 되었는데 아이들과 간단히 점심을 먹고 교회로 돌아오면
2시 반 청년부 예배가 시작될 즈음이 된다.
나는 곧장 집에 가도 될 터인데 괜히 예배당 뒤편이나 2층에 올라가 청년부 예배에 참석하거나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잘 아는 청년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커피를 마시러 가곤 했다.
나는 그 시간만큼은 그냥 청년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역자란 타이틀을 벗고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전도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이후
같은 나이 또래 청년들은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었다.
돌아보면, 참 외로운 시간들이었다.
주일이 다가오는 토요일 밤. 밀려오는 외로움과 사역에 대한 부담감에,
해결해야 할 성도들 간의 갈등문제 때문에,
텅 빈 예배당에서 얼마나 많이 울며 기도했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사역자들에겐 진짜 ‘친구’가 필요하다.
사역자 친구들도 필요하고,
내가 사역자인지 모르는 교회 안 다니는 친구들도 필요하다.
오늘 축구를 통해 아저씨 친구들을 좀 사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성적 성격인 내가 먼저 친하게 다가간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사역으로 쌓인 내공, 그러니까 학습된 외향적 성격으로 들이밀어 보겠다.
우선 키 작은 Tom이라는 중국 할아버지와 친해졌다.
나의 본성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언젠가 이 아저씨들과 회식이라도 하는 날을 기대한다.
이 아저씨들의 삶 이야기도 다 들어보고 싶다.
아이유에게 이선균이라는 ‘나의 아저씨’가 있다면,
나에겐 야밤축구회의 ‘나의 아저씨들’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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