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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Jan 14. 2023

내가 감자를 싫어하는 이유

2023 0113


#13


내가 어제 일기에 쓴 일화에 이어 

두 번째로 자꾸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이른바 ‘찐 감자 사건.’ 


내가 이 기억이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도,

나의 트라우마와 분명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에 한 번 페북에 올린 적이 있으나

아카이빙을 위해 다시 올려본다.



‘내가 감자를 싫어하는 이유’


비가 내렸다.

늦은 가을, 저녁비였다. 

그렇게 거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세기와 양의 비였다. 


불현듯 아주 오래전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내가 한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인 것 같다. 


동네 아이들 여럿이서 어울려 놀다가,

시간이 지나자 다들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배고프다고 칭얼대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나도 배고파”라고 하며 찡찡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각자 집에 가 무언가 간식을 먹고 다시 와 놀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남자아이가, 

자기 집에 맛있는 것이 있다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같이 놀던 아이들을 초대했다. 

나도 마침 배가 상당히 고팠고, 우리 집은 꽤나 먼 길을 돌아가야만 했기에 

나는 흔쾌히 그 친구의 초대에 응했다 (그 맛있다는 것이 내가 좋아했던 무언가였음에 틀림없다). 

다른 아이들도 다 좋다고 했다.


헌데 갑자기, 무리 중의 어떤 한 어린 여자 아이가 (나보다 한 두 살쯤 어렸었던 것 같다)

자기네 집에도 맛있는 간식이 있다고 와달라고 했다. 

삽시간에 경쟁구도가 조성이 되었다.


아이들은 물었다.

“너네 집에 가면 뭘 먹을 수 있는데?” 


여자아이는 머뭇거리더니, 

“우리 엄마 찐 감자 진짜 맛있게 잘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비웃었다.

“뭐 찐 감자? 푸하하하. 그게 뭐 맛있는 간식이냐?” 


여자아이는 자존심이 상한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냐 맛있어. 진짜 맛있다고!” 


다른 아이들은 더 이상 여자 아이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다들 처음 자신들을 초대한 남자아이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혼자 남겨진 그 아이,

버려진 그 아이. 


아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아이의 그 슬프고 아픈 눈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다섯 살의 나였지만, 

그때 그날 오후의 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의 공기, 습도, 바람과 햇볕. 

멀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남겨진 아이의 울음소리.


나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그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갈게. 너네 집 내가 갈게.”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그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아이와 나는 찐 감자를 먹었다. 


무척이나 자상하셨던 아이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아이의 집도 기억나고, 조그만 상을 펴고 꼬마아이 둘이서 

김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호호 불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감자를 다 먹고

우리는 다시 모이기로 한 장소로 돌아갔다.

반대편 무리들도 간식을 다 먹고 등장했다. 


“그래서 찐 감자는 맛있었어?” 

무리 중 한 남자아이가 비웃으며 말했다. 


“어, 맛있었지. 너네는 어땠는데?” 

내가 되물었다. 


“우리는 진짜 맛있었어. 다음엔 우리랑 같이 가자.” 

남자아이가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안 가도 돼.”

나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무척이나 부러웠다.

게다가 나는 찐 감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고, 그들이 먹었던 그 간식을 나도 너무 먹고 싶었다.

찐 감자를 먹으면서도 나는 못 먹게 된 간식을 계속 떠올렸었다.


우리가 다시 모여 놀려고 하자,

갑자기 비가 왔다. 


늦은 가을, 저녁비였다. 

그렇게 거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세기와 양의 비였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집에 돌아가는 내내, 못 먹었던 그 간식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

.

.

“오빠? 여보?” 

아내가 다급히 나를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에휴, 국 다 떨어지고 있어요. 옷 다 버렸잖아요. 제대로 보고 먹어요.”


푸다 만 된장국은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틈을 타 내 와이셔츠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보, 그리고 왜 항상 국에 감자는 하나도 안 먹고 남기는 거예요? 감자 싫어요?” 

아내가 물었다. 


“아, 그러니까 내가 다섯 살 때 말이야…”


#감자 #상처 #트라우마 #홀로 남겨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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