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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Mar 01. 2023

골든아워

2023 0227


#58


2년 전 2월, 한국에서.


<Golden Hour>


함박눈이 내리던 주일 오후였다. 


쌓일만한 눈은 아니었고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물기 가득한 촉촉한 눈이 거센 바람과 함께 광화문 넓은 광장을 뒤덮으며 행인들의 발걸음을 지체하고 있었다. 


나는 친한 동생이 다니는 광화문 남서쪽에 위치한 한 교회의 청년부 예배를 드리고 막 나오던 참이었다.

종로 3가의 익선동에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다고 하여 집에 가기 전 잠깐 들릴 계획이었다.


오후 5시. 


구름으로 덮여 어두웠던 하늘이 맑게 개면서 Golden Hour (해 뜨는 때와 해 질 녘, 사진/영상을 찍기에 빛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가 되었음을 알렸다. 


빌딩과 골목 사이사이로 따뜻하게, 그리고 비스듬히 비쳐오는 햇볕은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침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기에 오랜만에 꽤나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흥분되었다.


서울은 사진 찍기에 정말 좋은 도시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고개를 잠깐만 돌려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로, 그들의 표정과 오고 가는 대화들 가운데 찰나의 순간에 프레임 속에 간직되어 기억될만한,

여러 가지 삶의 무게와 한숨들, 탄성과 비명, 미소와 희열이 한데 섞여 나름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


그 질서 속으로 동화되어 셔터를 누른다는 것은, 

그것도 Golden Hour에 그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흥분 섞인 미소를 띠고 성큼성큼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던 나를 누군가 붙잡았다.

막내 이모뻘쯤 되어 보이는 자매 2명이 나를 불러 세운 것이었다.


그들 중 더 절보어 보이는 자매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더니 입을 열었다.


“기운이 좋아 보여요. 어디 해외에서 살다 오셨어요?” 


‘기운이 좋아 보인다’ 라…


영화나 소설에서 들어보던 질문을 직접 듣게 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과연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해외생활 한 것은 또 어찌 알았단 말인가?


“아, 네. 캐나다에서 좀 살다가 최근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나는 최대한 밝고 상냥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혹시 종교 있으세요? 기독교?” 

오호라 이제 본색을 드러내시는구나. 


“네, 기독교예요.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예상외의 대답이었던 듯 그들은 약간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어쩐지, 그래서 이렇게 기운이 좋은 거군요. 저희는 미륵보살의 현신을 믿는 종교예요. 물론 형제님과 우린 같은 하나님을 믿죠. 예수님도 믿어요 저희는.”


그렇게 나는 종로 한복판에서 그들과 30분가량 대화했다. 


아마 그들도 오늘 전도길에 나서며 나에게 이런 고난과 핍박(?)을 당할 줄 몰랐겠지. 

애당초 나는 말로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큰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얘기를 한참 듣자 하니 안타깝고 긍휼 한 마음이 들어 강하게, 그러나 최대한 부드럽게 복음을 전했다.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행위로 얻는 구원이었다.


자신이 지은 죄를 평생 닦아 없애야 하고, 관계가운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사람에게 온전한 용서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또, 선한 일을 많이 해 업적을 쌓으면 구원받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선한 일, 즉 구제와 사회봉사를 더 많이 할 것을 권유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구원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또 은혜 없는 삶이 얼마나 그들을 옥죄이는지 말하며 율법이 우리를 구하지 않는다고, 복음으로 예수님 만나 죄 사함 얻고 참자유를 누리며 살면 좋겠다고 그들을 전도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 중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자매는 개신교에 다니다 그곳에는 참된 진리가 없다고 판단해 최근 개종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눈 내리는 거리에서 서로가 믿는 진리를 서로에게 설파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신의 이름으로 축복한 뒤 헤어졌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Golden Hour는 길어야 한 시간 남짓인데 30분이라는 시간을 길에서 써버렸으니 익선동까지 걸어가는 10분을 감안하면 나에게는 20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은 셈이었다. 


익선동에 도착한 나는 남은 20분 안에 어떻게든 만족할 만한 사진을 건지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머릿속에 자꾸 방금 헤어진 그 두 자매의 얼굴이 떠올랐다. 

끝까지 죄를 안 짓고 ‘선한 일’을 해야 한다며 인상 쓰는 대신 나에게 미소를 보이던 자매들의 모습 말이다.


그날 나의 Golden Hour는 사진 몇 장 못 건진 채 끝이 났다.


해가 지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만난 두 자매들의 영혼구원의 Golden Hour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내가 또 그 자매들을 만나게 되기나 할까? 그 자매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복음을 들을 수 있을까?


“제가 오늘 밤 두 분을 위해 기도할게요.”라고 말하며 헤어졌던 사실이 생각났다.

하루가 지난 오늘, 다른 기도제목으로 기도하다 말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적게 되는 이유는 그들을 위해 더 기도하라는 뜻이겠지.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복음을 듣게 될 Golden Hour,

그리고 내가,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Golden Hour는 사진을 찍기 최적의 시간인 해 뜨는 때와 해 질 녘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길 가다 우연히 만난 바로 그때, 그 찰나의 순간에 기적처럼 펼쳐지는 게 아닐까? 


하나님은 분명 그 순간을 사진처럼 찍어 놓으시고 하늘나라 가면 우리에게 보여 주시겠지. 

참 고맙다고, 내가 그날 그때를 기억한다고. 


봄이 오면 또 가서 사진을 찍으련다. 

혹시 모르지. 그 자매들을 또 만나게 될지.


-


사진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단편영화 ‘Golden hour’ 중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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