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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Mar 03. 2023

공간과 사람

2023 0301


#60


‘공간과 사람’


유현준 교수의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읽고 있다.

유 교수의 말에 따르면, 공간이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패턴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나 가정환경이 한 사람이 성장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 또한 그 사람의 인격과 성향, 그리고 생각에 큰 인풋(input) 이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공간을 소유하고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넓고 자유로운 공간이 있으면, 그 공간에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요소들이 있다면, 사람의 생각은 풍요로워지고 창의적이 된다.


나는 한국의 골목길을 참 좋아하는데,

골목길은 ‘다양함’의 집합체이다.


여러 갈래로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고,

나의 생각을 넓혀줄 새로운 것들이 가득해서

걷는 것만으로 나의 호기심과 창의성을 자극시킨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니 수많이 이야기들이,

수백, 수천 년의 시간들이 만났다 또 헤어지는 신비한 일이 벌어진다.


유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익선동 같은 골목길이 ‘핫’ 한 이유가

학교와 직장, 내 소유도 아닌 좁은 집에 갇혀 사는 젊은이들이

그나마 자유와 자연을 만나고 사람중심의 문화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오래된 골목길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적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들은 바깥에 나와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길 원한다.


30대가 차를 사고 싶어 하고,

20대가 카페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10대가 피시방과 편의점을 아지트 삼아 살아가는 이유,

그리고 더 나아가 자꾸만 디지털 세계 속으로

그 무한한 메타버스의 세계로 빠져드는 이유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유교수는 말한다.


성서에 보면, 창조주가 인간에게 허락한 최초의 공간은

‘에덴동산’인데, 그곳에는 인간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고, 하늘에는 새들과 땅에는 다양한 동물들,

언제든지 따먹을 수 있는 싱싱한 과일들과 식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이 ‘무한한 사랑’의 공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것이 그 이유였다.

일명 ‘선악과’라고 불리는 이 열매는 유일하게 금지된 열매인데

이 열매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상징적으로

‘창조주의 말을 따르지 않고, 내가 선하고 악함을 판단할 거야.’라는 의미이다.

한 마디로 ‘반역’을 한 것이다.


건축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나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할 거야. 내 나라를 건설할 거야.’라고 선포한 셈인 것이다.


에덴이라는 창조주의 나라와

최초의 인간이 세운 일명 '아담의 나라' 는 존재론적으로 함께할 수 없었다.


아담은 반역의 대가로 에덴에서 쫓겨났고,

완벽했던 에덴과 달리 그가 처한 현실은 처참했다.

땅을 개간하고 죽도록 수고하여야 그 소실을 먹을 수 있었고,

고통과 질병,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원하던 대로, ‘공간을 재창조’ 할 수 있는 자유는 주어졌으나,

‘끊임없는 노동과 경쟁’이라는 굴레를 만들었고, 인간의 인생은 그 때문에 괴로움이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자신만의 공간을 위해 투쟁하던 인간은 결국 그 공간을 죄로 가득 채웠고,

창조주는 물로 그 더러워진 공간들을 씻어 내기로 했다.

그런데 창조주는 그 가운데 노아라는 당대의 의인을 불러다 ‘방주’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게 했다.

이 공간은 에덴과 많이 닮아있다. 흩어졌던 생명들을 모아 한 공간에 모이게 했다.

에덴의 회복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홍수 심판 후에도 인간은 바뀌지 않았다. 아담이 그토록 원하던 자신만의 공간은, 다시금 후손들로 인해 ‘바벨탑’이라는 높아지고 과시하고 싶은 욕망의 열매로 나타났다. 창조주는 그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냈듯, 그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후의 인간의 역사는 에덴과 쫓겨남, 방주와 바벨탑의 역사의 반복이다.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나만의 공간’을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람은 공간을 소유하려고 하고 재창조하려고 한다.


사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은,

‘에덴에서의 깊은 상처’ 때문이 아닐까?


창조주가 계획했던 그 에덴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에덴에서 사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공간을 소유한 사람과도 같을 것이다.


그 사람에겐 생명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겐 무한한 새로운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놀랍고 신비한 새로운 공간은,

문 밖에서 두드리는 ‘똑똑’ 하는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새에덴으로의 초대의 소리.

당신의 마음에 오늘 들려오길 소망한다.


#에덴 #공간 #사람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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