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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Jan 06. 2023

아름다운 빛소리

2023 0105


#5


그날은 특히나 눈이 아름답게 내리던 날이었다.

눈꽃들이 적당히 느리게 춤을 추며 위로 그리고 아래로 올라가며 내려왔다.


나는 겨울 산장에서 눈꽃들과 눈을 맞추다가

호수 끝 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루종일 구름 낀 날씨였는데 

해가 고개를 내밀자 

나무 사이사이로 눈꽃들이 더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늘은 파란빛을 띠기 시작했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무릎까지 오는 눈이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바지가 젖고 신발 속까지 눈이 침투해 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빛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열심을 이겨낼 수 없었다.


나는 눈을 헤치며 호숫가로 향했다.

호수는 눈이 덮여 있는 것으로 보아 적당히 얼어있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호수 위에 올라서고 싶었지만,

그래서 내 무게에 얼음이 깨지지 않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 

호수 한가운데까지 걸어가 보고 싶었지만

불과 한 시간 전 아내가 ‘절대 안 돼’라고 못을 박은 것이 생각나

나는 호수 앞 데크 앞에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나는 왜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나는 무작정 ‘빛이 보인다’라는 것만 보고 

빛을 향해 전진해 나갔던 것인데,

막상 내가 갈 수 있는 마지막 길까지 다다르자

‘다음 발걸음’을 향한 나의 질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내가 지나온 흔적이,

내가 출발한 겨울 산장이 거기 그대로 남아 있었다.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부분적으로 아름답게 개인 연파란 하늘과 섞이어

흩날리는 눈꽃송이들과 함께 무척이나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켜고

뷰파인더로 눈 덮인 산장과 나무들, 그리고 하늘과 눈으로 덮인 땅을 담아내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발자국도,

나의 지나온 그 길도

나의 짧은 여정의 출발점도 

한 사진에 다 담기게 되었다. 



그렇게 카메라 속에 저장된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 산장 입구 예쁘게 칠해진 주홍 문이 열리더니


아내가 소리쳐 나를 부른다. 


“여보 노엘이 깼어요. 도와줘요!” 


나는 아내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끄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더 이상 발이 젖지 않으려고 지나온 발자국 그대로 밟으며 말이다.


빛은 언제나 나를 인도한다.

나를 가슴 뛰게 하고 순간을 기억하게 하며 

나를 꿈꾸게, 그리고 이상을 펼치게 한다.

열정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빛이 보이고 잠깐 뒤 들리는 아내의 소리,

마치 천둥처럼 들리는 아내의 외침은,

이제 나는 가슴만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열정만으로 삶은 지속될 수 없음을 일깨워 준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한쪽으로 넘어지지 않게 나를 잘 붙잡아 준다.


그렇게 나는 꿈꾸고 

그렇게 나는 또 꿈에서 꺤다.


또 다른 꿈을 위해 

나와 내 가족이 함께 꿀 수 있는 꿈을 위해

살아가고 또 살림을 한다.


오늘 찍은 이 한 장의 사진은

또 언젠가 내가 가야 할 길을 몰라 헤맬 때, 

나를 기억하게 하고 내 귓가에 말해줄 것이다.


빛 다음에 들리는 소리를 잘 들으라고

빛과 소리를 함께 느껴야 한다고.


산장 안에서 다시 바라보니

창문에 붙은 눈꽃들이 이제는 비처럼 변해있다.


오늘 밤엔 아름다운 빛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여보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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