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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Feb 01. 2023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 walking man'(1960)을 접했을 때 죽을 때까지 나의 길을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다. '뚜벅뚜벅'은 언젠가 내 몸이 병들고 약해져도 꼭 두 발로 걸는 것을 포기하지 말 것, 생에 마지막까지 내 정신이 희미해지지 않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존엄한 상태를 유지할 것을 염두에 두고 했던 나와의 약속이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1960, 청동, 183cm


살아갈수록 '약속'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게와 책임을 느낀다. 매일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몸을 움직여보자는 나와의 약속이 얼마나 지키기 힘든지, 매번 하루의 끝자락에서 '내일은 꼭!' 하며 잠들곤 한다. 얼마 전 구입한 디지털 체중계는 나의 몸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체중계가 어떠한 원리에서 작동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휴대폰의 앱과 연동시키니 몸무게뿐 아니라 체지방율, 근육량 등을 포함한 10가지도 넘는 세세한 몸의 정보를 나열한 후 종합적으로 '신체나이 00세'라고 한다.  어떻게 체중계 위에 두 다리를 올려놓자마자 몇 초만에 내 몸을 분석하고 데이터화해서 종합 평가를 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실제 나이보다 더 높게 나온 신체나이에 기가 죽었다. 평생 지식노동자로 살아왔기에 몸근육보다는 정신근육을 더 짱짱하게 키워왔노라 변명해 보지만, 그동안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린아이의 자존감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주변의 평가와,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터득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형성된다. 누군가 사랑스러운 눈으로 봐주면서 어떤 모습에도 환호하고 지지해 주는 반응의 총량은 신체적 자아상을 긍정적으로 형성하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된다.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감이 축적된다. 유아기에 자신의 몸과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면서 맛보고, 만지고, 뒹굴고, 걷고, 뛰고, 오르고, 숙이고, 구성해 보는 경험의 총량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에 대해 스스로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유능감을 키운다. 신체에 대한 개념과 경험에 입각한 자기 가치감과 유능감은 이후 정신적 활동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정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 앞에서 거부감 없이 '하면 된다', '해보자'는 동기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걸음마를 뗀 아기가 뒤뚱뒤뚱 걷다가 넘어져 울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다시 일어나 걸으려고 할 때 보는 이의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기에게 자기 신뢰와 호기심이 없다면 첫걸음을 떼는 일도, 넘어지는 일도, 다시 일어나 걷는 일도 어렵기만 할 것이다. 울면서도 다시 해보고자 하는 행위 안에는 내적 자아의 힘이 커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기에 크게 손뼉 쳐주고 싶은 것이다.  유아기 때만 잠깐 가질 수 있는 '만능감', 즉 나는 멋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은 초등학교만 가도 여지없이 깨진다. 평가가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커지는 사회적 자아는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게 만든다.아이는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숨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후로 꽤 오랫동안 몸 혹은 정신능력에 대한 수치심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나이가 들어도 몸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만 가고, 신체기능의 약화와 건강에 대한 염려는 더욱더 자기 몸을 사랑하기 어렵게 만든다.


거울 앞에 서서 노화되어 가는 몸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지금까지 참 고생했다. 장하다. 사랑스럽다' 혼잣말을 해 본다. 누군가 나에게 해주기 바랐던 따뜻하고 애정 어린 격려와 지지를 나에게 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즐겁고, 그래서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놀았던  유년기의 야생적 본능을 되찾자고 속삭인다. '~을 위하여'라는 목적을 위해 몸을 움직이지 말고, 그냥  즐겁게 자발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움직이기! 그것만이 내 몸을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내 몸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이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유년기와 중년 이후의 삶이 겹쳐지는 공통 과제 가운데 하나는 자기 몸을 사랑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늘여가는 것이다. 아이는 건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서 몸을 움직인다. 나의 신체 활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움직임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근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운동하면서 근력을 키워야 한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이상한 말에 나의 본능은 철저히 거꾸로 작동하여 더 눕고 싶고 더 움직이기 싫어진다.  굳이 건강을 위한 약속이나 다짐이 없어도 그냥 몸을 움직이며 놀이하는 유아기적 본능에 충실할 때 결과적으로 내 몸의 배신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 나가야 한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 -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몸으로부터 숨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없으리라.
- 마사 누스바움,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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