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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Feb 25. 2023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

                                                                                            그림 : 강준영<O와 X, 그리고 우리> 


만나면 유난히 마음 한구석이 밝아지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새로운 도전과제로 두근거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이번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일면식은 없지만, 어느 곳에선가 치열한 삶의 등불을 밝히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할 때면 잠들어 있던 나의 꿈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눈을 비빈다.     


도티 빌링턴의 책 <멋지게 나이 드는 법 Life is an attitude: How to grow forever better>에서는 나이가 들면서도 늘 새롭게 변화하고 정신적으로 열려 있으며 활기찬 인생을 살고 있어서 모방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 인생의 거울로 삼을 것을 권한다. 닮고 싶은 모델을 만다면 그의 어떤 점이 나의 마음을 끄는지 알아채면 좋다. 최근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사람은 모두 젊을 때부터 해 오던 하나의 일을 멈추거나 슬슬 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1. 자라는 모든 것에 박수를       


KBS 다큐 인사이트 [인생 정원]



번역가이자 세계적인 괴테 연구가로 유명한 전영애 선생님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몇 해 전 은퇴한 후에도 공부하고 글 쓰고 부지런히 정원을 가꾸며 여전히 분주한 삶을 살아간다. 학생들을 가르친 일은 마치 꽃과 나무를 심어 잘 자라도록 잡초를 뽑아주고 정성껏 보살펴주는 일과 흡사하다. 생명을 기르고 살리는 일이다. 선생님이 어쩌다 농부가 되어 어마어마한 크기의 정원을 가꿀 수 있었던 것도 꽃과 나무가 보여준 아름다운 성장에 마음이 떨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꿈을 포기하기엔 스스로 너무 작게 느껴졌다는 칠순을 넘긴 선생님의 미소가 해맑다.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더 많은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꿈을 꿀 뿐 아니라, 그 꿈을 실현하며 사는 삶에서 뿜어 나오는 식지 않은 열정과 에너지가 내 마음마저 따뜻하게 한다.      


“사람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마지막 걸음을 못 내디디게 뒤로 불러들이는 힘은 사랑이에요. 어렸을 때 받았던 절대적 사랑이 내 몸에 남아 있어서 아직도 그 힘으로 사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글 배워 책 읽는 사람답게 늘 바르게 살라 당부하셨어요. 부모님은 제 뜻을 언제나 존중해 주셨고, 그 극진했던 사랑을 생각하면 거기에 배반할 수가 없어요.” 


#2 노래와 함께 한 인생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EBS 스페이스 공감 [다시 공감, 송창식]



내일모레 여든인 가수, 송창식 선생님은 현재진행형 가수다. 1970년대 데뷔했던 모습 그대로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라이브 공연을 한다. 두 번의 성대결절에도 굴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목소리 내는 법을 쉼 없이 연습해 온 결과 아직도 청년처럼 무대를 소화한다. 노래 부를 때의 반짝이는 눈빛과 행복한 미소는 나이 들었음을 잊게 할 만큼 풋풋하고 젊다. 발성이 달라졌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의 힘이 놀랍다. 가식 없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흔히 말하는 원로가수의 공연이 아니라 그냥 가수의 공연이다. 노래하며 살아온 나의 삶,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하며 웃는 고백이 내 마음을 묵직하게 울린다.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라 매일 더 좋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래해요.”
“원래 노래 부를 때 마음가짐이 현장에 있는 필로 가자! 연습할 때는 똑같이 하지만, 노래를 막상 부를 때는 당장 있는 그 기분으로 노래하자 했기 때문에 나의 노래를 수만 번 불렀어도 똑같이 부른 적이 없어요.” 
“같은 노래라도 20대에 부르는 노래가 다르고 30대에 부르는 노래가 다를 것이기 때문에 그때 부르게 될 나의 노래가 기대돼요.” 
“내가 얻은 뜻밖의 인기는 순전히 우연이었고, 운이었어요. 인기란 누군가가 주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정말 최선을 다했나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당시 난 최선을 다할 거야 하고 했으니까…. 허투루 세월을 보낸 적은 없어요.”      




정들었던 연구실을 정리하던 날, 깨끗하고 볼만한 전공 도서는 모조리 따로 분류해서 학교도서관에 기증하고, 낡고 오래된 책과 자료들은 모두 정리하였다. 마지막까지 집으로 데려온 것은 그림책과 심리학 분야의 책들이었다. 학교를 나와서 지금까지 6개월째 실천하고 있는 매일의 리추얼이 있다면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통한 삶의 기록이다. 나를 가장 나답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라는 것을 알았다. 


인생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회고하고, 앞으로의 삶을 전망하면서 매일 나에게 다짐을 한다. 앞으로도 평생 공부하고, 성장하고, 가르치고, 나누는 삶을 살자고……. 물론 학교라는 무대가 아니어도 좋다. 배우기를 원하는 단 한 사람과 나의 삶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의 공부는 삶과 동떨어진 지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임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나보다 훨씬 연배 높은 칠팔십 대 선배가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짱짱하게 공부하고 글 쓰고 노래하고 공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나이 들어가는 것이 막연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그냥 지금 모습 그대로 내일의 시간을 살면 되겠구나 안심하게 된다.           


우리가 가진 능력은 쓰여지기 위해 아우성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만 이러한 내면의 아우성을 잠재울 수 있다. 즉 능력 역시 욕구의 하나이다.
-Abraham Ma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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