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나 Feb 15. 2023

사람 도서관

- ‘사람 책’을 빌려드립니다 -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을 빌리듯, 사람을 빌린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미 오래전 지구 반대편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현존하는 사람을 대여해 준다. 대여 시간은 30분이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서 사람이 책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살아 숨 쉬고 있는 날것의 책이다. 이용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사람 책을 빌릴 수 있다. 물론 정해진 시간 동안 온전히 일대일 혹은 일대 소수의 만남이 보장된다. 그는 ‘사람 책’의 생생한 목소리로 경험을 듣고 인생을 배운다. 그래서 사람 도서관은 ‘살아있는 도서관(Living Library)’라도고 한다.      




실제로 정신과 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대중의 낙인과 편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낙인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집단 구성원을 직접 만나는 일이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내 눈앞에서 스스로의 의미 있는 삶을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나게 된다.
나종호,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2023>    




만약 내가 자주 가는 동네 도서관에 ‘사람 책’을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서 누구나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사람 책 대여를 통해 학교에서의 배움이나 글자 책을 통한 간접경험과는 다른 일대일의 직접 만남이 성사된다. 정해진 시간 동안 안전한 공간에서 사람 책과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고개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빠져든다.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소중한 시간이다.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캄캄한 새벽, 어디선가 갑자기 해가 쑤욱 떠올라 온 세상이 환해질 것만 같은 풍경이 그려진다. ‘사람 책’과의 접촉으로 한 사람의 삶에 파동이 생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상상이다.     


예기치 못한 불행한 일을 겪고 난 후 마음의 상처를 입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수록 자기 안의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예컨대, 자연재해, 심각한 사고나 상해, 전쟁, 갑자기 발병한 위독한 질병, 가까운 친구나 가족의 사고사, 폭력 피해,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이나 강요, 강간 등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범주에 해당하는 경험을 당한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이때 꼭 전문 상담가를 찾지 않고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상의 접근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했던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고통받고 있는 현실의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공포와 수치심을 안고 사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쉽게 하지 못하고, 자기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판단이나 비난 없이 듣고 지지해 줄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덴마크의 사람 도서관은 소수 인종부터 에이즈 환자, 이민자, 조현병 환자, 노숙자, 트랜스젠더, 실직자 등 다양한 사람이 그들의 값진 시간을 자원한 덕에 유지된다.
나종호,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2023>      


만약 자기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도 고통을 잘 승화하여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 책’을 도서관서 대여한다고 가정하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와 함께라면 나의 경험, 나의 상태, 궁금한 것, 그의 이야기,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방법 등에 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경험의 동질성에 안도하고, 
“내가 잘못해서 경험한 일이 아니구나.”자책을 멈추고, 
“나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희망 한 자락을 붙들게 된다면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상처의 영향력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다양성’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 ‘사람 책’이 되어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누군가 경험했던 엉뚱한 실수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손가락질조차 꼭 필요한 ‘사람 책’의 콘텐츠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간다. 그냥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어디서든 삶은 계속된다. 그 어떤 삶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세상에 나쁜 것은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살아있다는 모든 것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찌질하면 찌질한대로 자기한테 허용된 삶을 살면 그뿐이다. 아무도 기억하진 않겠지만 그것이 개인에게 주어진 삶이고 역사이다.
- 영화, <고령화가족, 2013> -                                                  


작가의 이전글 사랑,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