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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Mar 17. 2023

왜 왕이 되고 싶었을까?


‘파워 power’라는 말은 이제 굳이 번역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파워’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어떤 일을 하거나 이룰 수 있는 힘 또는 능력,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나 권력 등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대단한 힘이 있는 대상 앞에 파워를 붙여 명명하는지도 모르겠다. ‘파워 블로거’, ‘파워 유튜버’, ‘파워 인플루언서’, ‘파워 구매왕’, ‘파워 정치인’ 등과 같은 단어는 모두 자기 영역에서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어린아이는 가족 중 누구의 파워가 더 센지 본능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눈치로 알아차린다. 아이의 마음을 끄는 모델은 힘과 능력,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어른의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크고 작은 조직에서 발생하는 암묵적인 위계와 힘의 역동을 눈치로 파악한다. 누구의 파워가 센지에 따라 추종 세력이 만들어진다. 소위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의 생각과 말, 행동은 그 조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 있다. 힘을 갖는다는 것이 특권을 누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떠올려질 때 권력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교수이자 정치 컨설턴트인 브라이언 클라스(Brian Claas)는 자신의 저서 <권력의 심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이 강력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수록,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덜 신경을 쓴다.”  

   

소위 말해서 권력자들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지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만큼 타인의 사정에 공감하거나,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진다. 높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더 이기적이고, 동정심이 없고, 위선적이고, 힘을 남용하기 쉬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식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만큼 책임감도 커지므로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에 해로운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에서 제시한 연구 결과는 반대였다. 오히려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반면 권력자에게 통제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의 건강이 더 해로웠다.   

     

이전 직장에서 내가 경험했던 상사를 떠올려본다. 그는 권좌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감보다는 반감을, 대화보다는 명령을, 반대 의견을 수용하기보다는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살면서 누군가의 갑질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가 어떠한 것인지, 구성원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권력의 폐해를 고스란히 받으면서도 딱히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까지 하겠는가!      


제임스 서버(James Thurber)의 그림책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대 권력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인간 세태에 대한 풍자적 우화가 짤막한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최고의 권좌에 앉고 싶은 이유는 하나다. 왕의 자리에서 누리게 될 매혹적인 특권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고, 누구 위에서 군림하고 지배하거나 통제함으로써 자기 힘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약육강식의 지배 논리가 통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서열을 가리는 일이 당장 맛보는 이익과 직결된다. 이기기 위한 싸움은 끊이지 않고, 그래서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나는 동물의 왕이야.”(사실 동물의 왕은 사자 레오였어요.)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는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깬 호랑이의 뜬금없는 자기 선언으로 서사가 시작된다. 나아가 모든 동물이 변화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명분 내지는 망상에 빠진다.      


“우리는 변해야 해. 모든 동물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잖아.”     

 

‘모든’ 동물?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자기가 왕이 되어야 명분을 다른 동물들의 요구에서 찾고 있는 호랑이의 화법이 다분히 정치적이다.  호랑이는 온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달이 뜰 때쯤에 나는 동물의 왕이 될 거야. 축하하는 의미로 검은 줄무늬의 노란 달이 뜰걸.”      


호랑이는 잠자는 사자를 깨워 도전장을 내밀고, 숲에서는 왕의 자리를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무시무시한 싸움이 일어난다. 숲 속 모든 동물이 난장판 싸움에 끼어들게 되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모른 채 피 흘리며 죽어간다.     

 

모든 동물이 죽고 호랑이 혼자 살아남았다. 호랑이 왕조가 시작되고,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호랑이는 정글의 왕이었지만, 의미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는 숲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 있는 호랑이를 조롱하듯 노골적인 교훈이 적혀 있다.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


교훈 :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왕 같은 거 되면 뭐 하니      


하나도 의미 없어 보이는 전쟁과 싸움, 폭력과 피해가 지금도 인간 세상에서는 끊이질 않는다. 힘으로 지배하려는 자에게 호락호락 농락당하지 않고 존엄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정복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물적인 본능에 영혼이 굴복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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