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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Mar 24. 2023

자기 앞의 시간

-나의 시간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는가?-


봄에 축하할 일이 생기면 단연코 생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권하고 싶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 둘레에 촘촘히 박혀 있는 커팅된 생딸기의 유혹은 참기 어렵다. 한 조각 잘라서 맛을 보면 ‘음, 이 맛이지.’ 싶고, 마지막 한 조각이 남을 때까지 잘만 보관하면 케이크의 맛은 처음과 같이 보장된다.      


하루는 삶의 전부를 보여주는 단층이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면 삶의 전체 모습이 가늠된다. 삶의 변화란 어느 날 갑자기 비약적이고 초월적 방법으로 나타난 모습이 아니라 하루하루 매일 조금씩 축적한 작은 경험의 합이다.


대부분 사람은 오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지 않는 한 오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일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대단한 결심으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아보려 해도, 꾸준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좋은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밸 때까지는 변화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그저 묵묵히 날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를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생각한 바를 실천할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 눈에 띄는  변화를 보게 될 날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자기 앞에 주어진 시간의 방향과 리듬, 질을 바꿀 수 있다는 희열을 맛보게 될 그날, 자기 삶도 확연히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바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스스로가 만든 걱정스러운 생각과 불안이라는 감옥에 갇히곤 한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더 근원적인 이유는 일에 반응하는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증폭되기 때문이다.


매일 걱정이 끊이질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낮에도 밤에도 몸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과부하 상태가 된다. 자신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는 차단되고 그나마  있던 에너지마저 소진되어 기진맥진한다. 특히 월요일만 되면 주말 동안 잠깐 풀어졌던 몸의 긴장을 갑자기 확 조이면서 다른 어떤 평일보다 피곤과 무기력 증세를 느낀다.


경험상, 직장을 다닐 때는 ‘월요병’이라는 것이 실제 존재한다고 믿었다. 월요일만 되면 출근하기 싫어 집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출근해서도 하루종일 몽롱하고 피곤한 증세를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마치 월요일이라는 불친절한 시간에 하루종일 질질 끌려다니다 마침내 퇴근 후 해방되는 안도감마저 느꼈다. 녹초가 된 몸과 마음으로 집에 오자마자 했던 일은 바깥 옷도 벗지 않고 자리에 뻗는 것이었다.  ‘역시 월요병은 무시무시해!’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월요병이라는 핑계를 대서라도 하루라는 시간을 컨트롤하지 못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시간의 관리는 시간뿐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포함한 정신의 관리와 연결된다. 시간 관리는 정신의 관리이자 삶의 관리인 것이다. 브라질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하자인 아우구스토 쿠리는 자기 앞의 시간을 관리하려면 생각부터 관리해야 함을 강조했다.           


수많은 현대인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일정 형태의 생각 가속 증후군(ATS: Accelerated thought syndrome)에 시달리고 있다. 생각 가속 증후군의 심각도는 제각각이다. 생각 가속 증후군의 특징은 근심, 불만, 건망증, 집중력 결핍, 과도한 신체적 피로 등이다. 생각 가속 증후군을 앓고 있으며 스트레스에 지친 사람은 육체노동자 열 명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도 없으며, 밤에 푹 자지 못하는데 일하는 기계가 된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아구구스토 쿠리, <생각의 심리학>     


이 글을 읽으면서 일 때문에 자면서도 생각의 가속페달을 밟고 살았던 지난날 내 모습을 보았다.  필요할 때마다 생각의 브레이크를 밟으며 가슴 설레는 일을 놓치는 법이 없는 지금 나의 모습도 본다.


아! 나의 시간이 달라져 있구나!

 

이전과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기분 좋게 발견하는 순간이다. 더 이상 시간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고, 나의 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시간의 질을 바꿀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을 살펴보니 나의 생각과 선택을 믿고 행동으로 옮겼던 용기 있는 내가 있었다. 시간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나였고,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나였다. 앞으로도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신뢰하며, 소중한 나의 시간이 타인이나 외부 상황에 휘둘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림책 <시계를 볼 줄 모르는 곰>은 늘 바쁘게 시간의 지배를 받고 일에 휘둘려 자기 앞의 시간을 관리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나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의 워커홀릭을 풍자한 내용이다. 주인공 곰은 시간의 개념을 모른 채 본능의 리듬에 따라 살다 보니 다소 실수하지만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어느 날 곰이 시계를 볼 줄 알게 되면서부터 사는 게 완전 달라진다. 이제 그의 시간은 ‘생산성’과 ‘효율성’의 원칙에 의해 흘러간다. 하루를 알차게 살기 위한 촘촘한 일과표가 부여된다. 시간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쉬는 시간조차 별로 없어 보인다.


곰은 하루 동안 계획한 대로 시간에 맞춰 깨알같이 많은 활동을 완수한다. 그럴 때마다 곰의 계획표에는 또 다른 새로운 활동이 끼어들고, 다음 날 더욱 가열찬 하루가 펼쳐진다. 허둥지둥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 많은 일을 다 해내는 곰의 부지런함과 곰답지 못한 민첩성이 놀랍다. 하루가 바쁠수록 왜 시간도 더 빨리 사라져 버릴까? 곰은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기쁨과 또다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걱정을 동시에 느끼며 매일 종횡무진 달리고 또 달린다. 결국 곰은 병이 나고야 만다.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고 무기력해진 곰은 병원을 찾아간다. 아뿔싸! 곰에게 무섭기로 소문난 현대병, 번아웃이 온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요. “번아웃입니다.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결국 병이 난 거죠. 곰이 너무 지쳤어요. 안타깝습니다. 이제 쉬어야 합니다. 오래, 아주 오래요.”      


곰은 쉬면서 중요한 깨달음을 자기에게 또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곰, 좋은 곳에서 푹 쉬어! 산에서 지내는 건 정말 한적해. 낮잠, 맑은 공기, 느긋한 마음뿐이야. 그럼 어느 날에는 다 나을 거야. 들판을 거닐다가 친구도 만날 테고, 빛나는 햇살 아래서 손목시계 같은 것은 가지고 다니지 않는 어여쁜 곰 친구 말이야. 사람들은 시간은 금이라고 말해. 하지만 사람에게도 곰에게도 행복이란 콩닥콩닥 뛰는 심장 소리를 듣는 여유를 갖는 것이야. 장뤼크 프로망탈 글, 조엘 졸리베 그림, <시계를 볼 줄 모르는 곰>     




번아웃을 벗어나는 데는 삶을 지치도록 가속화하는 부정적인 생각, 나의 평화를 빼앗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일단 멈춤!' 만으로도 약이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앞당겨 걱정하거나 불안에 떨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대신 무기력을 털고 행복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하루 동안 아주 작고 사소한 즐거움을 더 자주 찾고 누려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이 웃으며 먹고 마시는 유희의 시간도 필요하다.


나의 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신뢰할 때 삶의 주도권을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도 빼앗기지 않는다. 더 이상 주저앉아 울고 있을 필요도 없다. 나를 소진시키고 장악했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그제야 가슴 벅찬 일출의 황홀함도, 아름다운 일몰의 낭만도 만끽할 수 있다. 내가 살아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나약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별 큰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에 진심을 다해 감사할 때 극복의 길이 열린다. 감사야말로 불안과 두려움을 보내오는 운명의 여신에게 맞설 수 있는 인간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알랭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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