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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Mar 14. 2023

희망의 등불을 켜고

어두운 겨울밤이었다. 한 아이가 밤이 되자 깜깜한 어둠을 뚫고 모험을 떠난다. 빛을 찾아 나선 것이다. 밤에 출발한 여정은 멀고도 험하다.      


“언제쯤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쳐 땅에 납작 엎드려 있던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코끼리 코에 작은 등불 하나가 매달려 있다. 희망이 찾아왔다. 아이는 등불을 응시하면서 허리를 곧추세워 앉는다. 작은 등불! 고작 내 발등 하나 정도 비춰줄 것만 같은 등불을 손에 쥐고 코끼리 등에 오른다. 또다시 길을 떠난다. 저 멀리 집이 보인다. 어느새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일 떠올라 온통 환하다. 이제 코끼리와는 작별할 시간이다. “고마워, 코끼리야.” 플로라 맥도넬의 그림책 <어두운 겨울밤에> 이야기다.      


<어두운 겨울밤에>의 내용은 저자가 심한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관한 경험 이야기다. 아이 홀로 떠난 모험의 길이 캄캄하고 막막해 보이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변화하는 장면을 보며 안도감이 든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캄캄한 밤, 길을 잃고 지쳐 보였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희망의 불빛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페이지마다 그림과 함께 기록되어 있는 짤막한 글을 한 군데 모아보니 한 편의 시(詩)와 같다. 누군가의 응원 같기도 하고, 스스로 결의를 다지는 선언 같기도 같기도 하다. 엄마의 무릎베개를 베고 잠결에 듣는 기분 좋은 자장가 같기도 하다.    

  

궂은 날씨라도

아무리 지치더라도

가는 길에 많은 것을 잃는다 해도

알 수 없다 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더더욱 깊은 물에 들어가야 한다 해도

헤엄치는 법을 모른다 해도

영원히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바로 그때……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때

희망이 찾아와 너를 데려다줄 거야……

집까지.      

플로라 멕도넬, <어두운 겨울밤에>     


등불을 켜고


그림책 앞표지를 보면 캄캄한 곳에서 작은 등불을 자기 어깨높이보다 높게 쳐들고 서 있는 어린아이가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응시하고 있다.      


“이제부터 날 따라와 볼래?”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나와 같이 모험을 떠나지 않을래?”

“네가 있는 그곳은 밤이야, 낮이야?”




인간의 성장은 밤과 낮으로 상징할 수 있는 다채로운 경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밤의 시간도 때가 되면 빛과 함께 찾아오는 희망에 자리를 내어 준다. 마냥 즐겁던 시간도 또다시 찾아오는 다른 슬픔에 압도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밤과 낮은 생명의 리듬을 만들며 인생을 성장시킨다.       


어느 날 우울한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우울한 감정은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 어느 날 증세가 하나둘 나타나곤 한다.


마음에 세찬 비바람이 몰아닥치고, 괜스레 추워서 몸이 으슬으슬해진다. 이불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고만 싶다. 해가 떴는데도 커튼을 쳐 방을 컴컴하게 한다. 종일 마음을 가라앉히는 음악을 틀어놓는다. 눈을 감으면 내가 잘못한 일만 생각나서 후회스럽다. 아무에게도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문밖에 나가기 싫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에도 도전조차 하고 싶지 않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막막하고, 불안하고, 홀로 버려진 듯한 외로움에 휩싸인다.


보통 우울한 감정은 분노, 슬픔, 무기력, 억울함, 자괴감, 불쾌함, 후회, 죄책감, 수치심, 패배감,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며 옴짝달싹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울한 상태를 이미지로 떠올려 본다.      


깊은 구덩이를 파고 깜깜한 곳에 혼자 앉아 고개를 다리 사이에 푹 처박고 있다. 수심이 깊은 캄캄한 바다에 팔과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스르르 가라앉는다. 감정의 파도가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불 안에 들어가 날이 샌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진다. 그동안 흘린 눈물이 바다처럼 불어나 주변의 모든 것이 둥둥 떠내려간다. 자신을 둘러싼 사방에 높은 벽을 쌓고 있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구부린 채 흐느적흐느적 걸어가고 있다. 초점 없는 눈과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있다. 캄캄한 공간의 구석 자리에 웅크리고 있다. 혼자다.      


이때 나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나의 어떤 이야기도 편견 없이 들어주고, 내 이야기가 더 궁금해서 물어봐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그때 네 기분은 어땠어?“‘

“그때의 너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만약 지금의 너라면 그때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그 누군가가 애써 찾아야 하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가 나의 기분과 상처에 공감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지하고, 나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죄책감 없이 보듬어줄 수 있다면, 캄캄한 절망과 우울의 시간에도 내 안에 있는 등불을 스스로 밝히며 희망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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