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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Apr 21. 2023

마음이 '색(色)'으로 물드는 순간

프랑스 영화 <프란츠 Frantz>(프랑수아 오종 감독, 2016)는 독특하게도 장면 대부분이 흑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주인공 안나의 감정이 출렁일 때마다 잠깐 컬러 화면으로 바뀌곤 하는데,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미세한 마음 흐름을 따라 몰입하면서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 마음도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거나, 반대로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뀔 때가 있겠구나 싶다. 마음을 간지럽히거나 울컥하게 만드는 감정과 역동을 느낄 때의 색과, 마음이 무미건조하거나 권태로울 때 혹은 무기력해져 있을 때의 색은 분명 다를 것이다.      


영화 <프란츠> 포스터 



2015년 뉴욕 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된 시드니 스미스의 <거리에 핀 꽃 Sidewalk flowers>도 흑백에서 컬러로 변화하는 전개방식을 취한다. 책을 펼치면 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구획 지어진 네모 칸 칸마다 그림이 담겨져 있다. 유독 주인공으로 보이는 꼬마의 옷만 빨간색으로 도드라진다. 주인공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길가에 핀 작은 풀꽃이다. 주인공의 시선이 머무는 곳, 손길이 닿는 곳에 부분적으로 색이 입혀진다. 주인공은 한 송이 두 송이 꺾은 풀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재배치한다. 그때부터 세상은 컬러로 바뀐다. 죽은 새를 애도하는 자리, 공원 벤치에서 잠들어 있는 남자의 발치, 산책 나온 개의 목줄 사이, 엄마와 오빠의 머리 위, 아기 동생의 유모차, 마지막으로 자신의 오른쪽 귀에 마지막 남은 꽃 한 송이를 꽂고 당당하게 걸어간다.          


시드니 스미스 <거리에 핀 꽃> 첫 페이지 
시드니 스미스 <거리에 핀 꽃> 마지막 면지


시드니 스미스의 <거리에 핀 꽃>은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와 아빠의 산책에서, 아이가 본 것을 아빠도 보았을까? 어린 시절 토끼풀꽃으로 반지나 목걸이, 팔찌와 머리띠를 만들고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앞동산에만 올라가도 자연에서 놀 거리가 무궁무진했던 아름다운 시절이다.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공평하게 아름다움을 나눠주는 알록달록 풀꽃들이 유독 바쁜 어른에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나이 들수록 애도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왜 어색하기만 할까? 마음보다 먼저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일까?      


<거리에 핀 꽃>의 공동 기획자 조아노 로슨은 이렇게 말한다.     

 

“Giver and recipient are transformed by their encounter.” 참 만남을 통해 서로 변한다.      


‘만남’을 뜻하는 영단어 ‘encounter’의 의미는 ‘맞닥뜨림’, 접촉‘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냥 어설프게 스치듯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부딪혀 접촉지점을 갖는 특별한 만남을 의미한다. 이 만남을 통해 서로의 마음은 새로운 색으로 물든다. 


오래전 직장일로 마음이 유난히 무겁게 내려앉아 캄캄했던 어느 날 오후, 머리를 식히기 위해 근처 단골 카페를 들렸을 때 일이 떠오른다. 카페의 통창 옆 작은 화단에 키 작은 연분홍꽃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있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니 연분홍 꽃잎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아름다워서 내 마음까지 연분홍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조건 없이 건네는 꽃들의 위로를 제대로 받은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 꽃의 이름이 분홍낮달맞이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리고 작은 분홍낮달맞이꽃의 당당하면서도 포근하고, 다정하면서도 귀엽고, 은은하면서도 또렷한 자태를 잊을 수 없다.      


분홍낮달맞이꽃


빌리 조엘의 노래 [She’s got a way] 가사 한 부분이 떠오른다.     


“She's got a way of pleasing. I don't know what it is. But there doesn't have to be a reason. 그녀는 알 수 없는 기쁨을 줘. 그게 뭔지는 몰라도 꼭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어.”      


그때 나의 마음은 분명 분홍낮달맞이꽃과의 만남으로 잠깐 동안이지만 치유를 얻었고, 마음의 색마저 연분홍색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이다.  나도 누군가를 만날 때 알 수 없는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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