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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Oct 11. 2018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 아니던 시절

우리는 네 가지 죄를 갖고 있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2002년, 하얀 눈밭에서 나를 향해 부자가 되라고 외치던 그 CF 광고는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이후 '부자'라는 단어가 수많은 광고에 등장했고,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80년대 생인 나는 학창시절의 끔찍했던 IMF를 기억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서는 기업이 도산했다거나 파산했다는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고, 반에서는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는 친구도 적지 않았다. 집안이 어려워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이다. 누구네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거나, 누구네가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곤 했다.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었던 시절. 


[한강 고수부지, 대한민국 서울]


경제위기를 탈출한 직후 나온 것이 바로 이 '부자가 돼라'는 광고였다. 나락에 떨어진 이들에게는 옛날의 영광을 되찾자는 의미로, 생존한 이들에게는 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강대한 부의 성을 짓자는 의미로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라는 광고를 기분 좋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뿌리 깊은 덕담을 물리치고 순식간에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덕담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광고가 불편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바로 우리 부모님 같은 분들.


돈자랑이 부끄럽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은 내게 부끄러운 과거이다. 아버지는 장난감을 잘 사주시는 편이었다. 소심하고 소극적이어서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하는 아들을 위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라고 많은 장난감을 지원해주신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감에 흥미를 보이며 내게 다가왔던 친구들이 많았고, 나는 그 상황이 싫지 않았다. 어린 만큼 욕망에 솔직했고, 욕망을 이루어줄 수 있는 수단은 하나의 권력이었다. 어렸던 만큼, 나는 그 권력을 있는 그대로 즐겼다. 어떤 선악의 판단도 없이.


하지만 그런 꼼수가 끝까지 좋게 흘러갈 수는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집이 굉장한 부자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 친구들이 내게 간식을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늘어갔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보석상, 체코 프라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감지한 담임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연락을 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그날로 내 용돈을 끊으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허락 없이 내게 장난감을 사주실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와 마주 앉아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셨다. 워낙 어릴 때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친구는 돈으로 사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부자가 아니다. 혹, 나중에 돈이 많아지더라도 결코 돈자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그래, 이 부분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돈자랑은 천박한 거라고. 정말이다. '천박하다'는 표현을 쓰셨다. 태어난 이후로 어머니의 입에서 그렇게 강한 의미를 가진 단어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솔직한 욕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물질 만능주의'라는 단어가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배금주의'라는 어휘가 등장했다. 우리는 여전히 2000년대 초반의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위로, 또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무한경쟁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극악으로 치달았고, 삼포세대와 오포 세대를 넘어 N포세대에 접어들었으며, 경쟁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욜로(YOLO)와 슈퍼노말 라이프(Super Normal Life)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극단에 이른 포기의 상황으로 읽게 된다.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으니까. 대다수의 승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솝 우화의 신포도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어차피 맛없을 거야. 어차피 저 포도는 신맛이 날 거야. 부자라고 꼭 행복한 건 아니야.


기득권은 사다리를 걷어차고, 유리천장에 갇힌 사람들은 위층을 향해 곁눈질을 하며 조소를 띤다. 그 이면의 욕망은 과연 얼마나 진실할 것인가. '부자'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카펠교, 체코 프라하]


나는 네 가지 죄를 지은 죄인이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내 분대에는 집안이 굉장히 어려운 후임이 있었다. 고기라고는 삼겹살밖에 먹어본 적이 없고, 그마저도 생일이 아니면 먹기 힘들었다고 한다. 여전히 집은 빚에 쫓기고 있었고, 그 후임은 막일을 뛰면서 독립해서 살다가 군대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선임은커녕 간부에게도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친구였고, 자기주장이 무척 강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친구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그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너무나 답답했던 나머지, 나는 그 친구가 '무식하다'는 말을 뱉어냈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그 친구를 평가하는 마음이 그러했을 터다.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네 가지 죄를 짓고 살았어. 그게 뭔지 알아?"


어머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뭔데요?"


"잘 먹은 죄, 잘 입은 죄, 안락한 집에서 잔 죄, 그리고 배운 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게 왜 죄란 말인가?


"네가 그 후임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건, 네가 그 후임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야. 엄마 아빠가 널 대학까지 보낼 만큼,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엄마 아빠가 그런 경제적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만큼 우리를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네가 그 후임보다 정말로 뛰어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해? 만약 네가 그 후임의 환경에 있었고, 그 후임이 네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 것 같아? 그 후임이 너보다 더 똑똑해졌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니?"


어머니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마지막 비수를 가슴에 꽂아 넣는다.


"오만이고 자만이야. 네가 잘나서 된 게 아니야. 감사하고, 미안해하고, 늘 베풀면서 살아. 네 노력만으로 된 게 아니야. 네 노력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네가 노력을 할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았을 뿐이야." 


[성 베드로 광장, 바티칸]


부의 본질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부'란 무엇일까? 우리가 갈망하고 부러워하는 부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었나? 우리는 그 부를 이루었을 때, 과연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최근에 갑질로 비난받는 재벌만큼의 부를 이루었을 때, 나는 그들과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


목적이 없는 수단은 키를 잃은 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각박하고 무섭다고도 생각한다. 태풍이 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우리는 운 좋게 제법 괜찮은 배를 물려받았다. 이런 배에 오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나는 아내와 함께 더 큰 배를 가질 꿈을 꾸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원래의 목표를 잊지 말자고 약속한다. 남들보다 큰 배가 아닌, 이 배를 이용해 우리가 목표한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 우리는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해, 이 배를 내려 육지에 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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