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라
"긴 시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면접관의 질문에 면접장에는 약 2, 3초 정도의 정적이 흐르고, 이내 면접관은 이렇게 말한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이만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시간 면접을 보고 나면 면접 마무리 멘트로 이런 질문이 나오곤 한다. 부분의 지원자들은 이 질문에 침묵으로 답하고, 면접관들 또한 그런 지원자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채용담당자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민이 따르는 대목일 것이다. 질문?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회사와 관련된 어설픈 질문을 던진다면 회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사실 정말로 궁금한 건 연봉과 복리후생인데, 이런 걸 질문하면 속물적인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또 괜한 질문으로 빨리 면접을 마치고 싶은 면접관을 더 지치게 만들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건 아닐까?
질문은 그 사람의 수준을 보여준다.
맞다. 질문도 잘 해야 한다. 질문이 그 사람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했던가. 자칫 잘못 질문을 던졌다가는 어렵게 쌓은 긍정적 이미지를 망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질문 타임은 강력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High Risk - High Return. 기업 채용은 군대에서처럼 "중간이 가장 좋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기억에 남을 수 있어야 하고, 강렬한 인상이 필요한 부분이다. 무난하게 중간에 섞여 지나쳐버린다면 이는 불합격으로 이어진다. 강렬한 인상과 기억에 남는 임팩트를 면접 중에 가지지 못했다면, 혹은 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면 이 마지막 질문시간을 적극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주는 "패자부활전" 티켓과 같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주는 "패자부활전" 티켓이다.
부디 "연봉이 얼마나 되나요?"라거나 "식사도 제공이 되나요?"와 같은 질문은 삼가길 바란다. 물론 이런 부분들이 실제 근무할 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면접 기회와 그 시간의 무게를 한 번 더 생각해보길 바란다. 정말 질문할 것이 이런 것밖에는 없는지 말이다. 근무조건과 처우는 합격 티켓을 손에 쥔 후에 확인해보아도 늦지 않다. 경력직이라면 합격 티켓을 받은 후에 이를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배짱을 튕기면서 협상을 걸 여지 또한 생기게 된다.
면접 자리에서 이런 질문들은 면접관에게 "난 다른 것보다 조건이 가장 중요해요"라는 인상을 준다. 자신이 하게 될 일 자체보다 조건이 중요하며, 이는 다른 더 좋은 조건만 있다면 언제든지 이 회사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지표로 비치게 된다.
처우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묻어두고, 내가 해야 할 일 혹은 내가 들어가고자 하는 기업에 더 집중해보자. 입사지원서를 넣을 만큼, 그리고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분명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프로그래머이고 향후 경력을 위해 평소 최신 IT 트렌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치자. 그 와중에 한 IT기업의 면접 자리에 왔다. 그 회사는 유관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물인터넷이나 증강현실 사업과 관련된 어떤 계획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예로 이런 질문이 가능하지 않을까?
"평소 귀사의 OO제품(혹은 서비스)에 IOT를 접목하면 재미있는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귀사에서는 이와 관련된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면접관은 이 질문을 통해 당신에 대해 몇 가지 평가를 더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이 회사에 대해 피상적인 정보만이 아닌 깊이 있는 고민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IT 트렌드를 쫓아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
사실 위와 같은 질문은 판에 박힌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지원자들이 이와 같은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간혹 정말 재미있는 전략을 취하는 특이한 지원자들도 존재한다. IT회사에 경력직 개발자로 지원서를 넣은 한 지원자는 임원면접이 끝나는 자리에서 마지막 질문을 이렇게 던졌다. "이 근처에서 저녁식사가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 근처에서 저녁식사가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 지원자는 상당히 영악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하여 특출난 경력사항을 가지진 않았으나 자기소개서에서 일에 대한 열정과 비전, 그리고 지원 회사에 대한 애정을 화려한 수식 대신 굵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뜨겁게 표현하던 지원자였다. 그랬던 이 지원자가 던진 마지막 질문의 이면에 숨겨진 의도를 놓칠 만큼 멍청한 임원은 없었다.
IT업체에서 야근은 현실적으로 숙명에 가깝다.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실은 암울한 편이다. 이런 환경에 지친 직원들은 2,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이 회사 또한 그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곳이었다.
회사의 이런 환경이 옳고 그름을 떠나, "입사를 한다"는 목표만을 놓고 이야기해보자. 이 지원자도 회사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이직률이 높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개발자들이 블라인드 앱과 잡플래닛에 쏟아놓은 불만 가득한 글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회사에서 원하는 직원이 어떠할 것인가를 놓치지 않았다. "저녁식사가 가장 맛있는 음식점"은 면접관들이 품고 있던 '야근이 힘들어 쉽게 다시 퇴직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리스크를 낮춰주는 질문이었다. 분명 질문이었는데, 묻지도 않았던 부분에 대한 시원한 답을 하나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는 쟁쟁한 경력을 갖고 있던 경쟁자들을 제치고 전 회사보다 훨씬 높은 연봉으로 이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해 질문이 아닌 답변으로 마무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국내에서 유명한 한 네트워크 보안 회사의 CSR 정규직 전환 인턴 면접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학 4학년에 첫 구직에 도전하고 있었던 이 지원자는 자신을 면접에 불러준 이 회사에 너무나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경영학 전공 공부에 매진했던 이 학생은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CSR 직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이미 반년 이상 이 직무를 준비했던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답변이 많이 부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턴 지원자는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이 기업에 꼭 들어가고 싶었다.
"혹시 궁금하신 점 없으신가요?"라는 면접관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지원자는 손을 들어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질문은 아니지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지원자는 품 안에서 수십 장의 사진을 꺼내어 면접관의 책상 앞에 놓았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본사 건물 근처를 돌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의 건물을 보고, 또 주말에도 이곳을 드나드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근처 음식점에 들러 밥을 먹으면서 이 회사 직원이 되어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사진은 족히 스무 장이 넘어 보였고, 각 사진은 회사 건물, 음식점의 음식, 버스 내부에서 바깥을 찍은 것 등 굉장히 다양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그 순간의 느낀 점들이 손글씨로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누구보다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열정이 가득한 지원자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면접관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면접관들은 그 지원자가 현재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평가자"에서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구애하는 한 꼬마 아이의 프러포즈를 받는 "연상의 연인"과 같은 입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개인 성향에 따라 무척 달라질 수 있으나, 다행히 이 면접관들은 그 앳된 지원자를 귀엽고 대견한 마음으로 따듯하게 바라봐주었다.
사실 그 어떤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주목받지 못했던 지원자였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질문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열정을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면접관들은 당장의 그의 능력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열정을 높이 샀다. 또한 부끄러움에 지지 않고 다가서려고 용기를 내는 인성은 면접관들이 원했던 CSR직무 수행 직원의 덕목 중 하나였다. 그는 다음 달부터 인턴이 되어 선배 직원들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사실 면접관들은 질문을 기대하면서 마지막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면접자들은 이 기회를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이 면접장을 나서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평가를 마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면접자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질문 기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발언 기회"이다.
면접을 보는 내내 '아무래도 떨어질 것 같아'라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가? 아니면 '아무래도 중간밖에 못 가겠네. 내가 생각해도 인상적인 답변이 전혀 없었어'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마지막 질문이 주어질 것이다. 패자 부활권 티켓인데, 잡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어차피 더 망칠 것도 없는데 말이다. 도박이란 이렇게 더 잃을 것이 없을 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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