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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Sep 14. 2022

법적으로 임산부가 된 아내

03. 예비 부모의 첫 발을 떼었다

“아기집 모양도 좋고, 위치도 아주 잘 잡혔대요. 그리고 다음 주에는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대요.”


당신도 같이 갈 거죠? 하고 물으며 아내가 사진 한 장을 건넨다. 아내는 연달아 이틀간 임신 테스트를 했고, 선명한 두 줄이 찍힌 임테기 두 개를 들고 당당히 병원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찍어본 초음파 사진 속에는 텅 빈 작은 타원이 보인다. 그 작은 블랙홀 같은 공간 속에, 보이지 않는 어느 한 생명이 힘을 키우고 있다. 엄청난 힘을 숨기고 기운을 뻗으며, 우리 두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을 존재다.


아기는 1.5밀리 정도의 크기라고 했다며, 아내는 상기된 볼로 연달아 내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덤덤하게 듣고 있던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추임새를 넣을 뿐, 사실 대단히 감동하거나 마음에 동요가 오지는 않았다. 그저 아이도 아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던 걱정이 조금 덜어졌을 뿐.


이제 법적인 임산부가 될 수 있다.


임테기에서 두 줄을 확인하고 병원에 가기까지 나흘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주말이 껴있었고, 아내가 회사일을 빼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 그 나흘 동안 나에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아내가 정식으로 주변의 배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임신과 출산에 무지한 나라도 임신 초반이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안다. 자연 유산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으며, 대부분의 자연유산은 초기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임신 초기에는 외관만으로 임산부임을 알아차리기가 어렵고, 그렇기에 누군가의 양보나 배려를 받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더더군다나 임산부 배지도 나오지 않은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임산부 배려석은 그림의 떡이고 회사에 정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다. 섣불리 회사에 이야기했다가 임신이 아니거나, 임신이어도 뭔가 잘못된 상황이어서 임신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아내의 의견 때문에, 일단 병원에 가서 정밀하게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묵묵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그 나흘이, 배려를 받을 수 없는 그 짧은 며칠이 왜 그다지도 길게 느껴졌던지.


배려도 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 병원에 간 아내는 정식으로 임신 확인증을 발급받았다. 다행히 아내도 배아도 모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의사는 아내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후로는 아내의 발 빠른 행보가 인상적이었다. 이미 준비해둔 것이 많았는지, 아내는 번개처럼 빠르게 여러 가지 행정 절차를 밟아나갔다. 임신지원 서비스를 신청하고, 카드사에 국민행복카드를 신청하며 지원금 바우처를 받았다. 그리고 임산부 스티커를 주문해 당당하게 차에 붙이며 아내가 말했다.


“이거 붙이면 양보 좀 잘해주려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니, 그냥 빵빵하는 것만 안 해줘도 고마울 것 같아. 내가 대답했다. 아내는 장장 여덟 종류의 스티커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한 시간이 넘도록 고민하며 나를 괴롭혔던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임산부가 타고 있어요, 임산부가 운전해요…. 아이가 젖병을 물고 있는 그림과 들고 있는 그림, 임산부가 운전대를 잡은 그림과 임산부의 얼굴만 있는 그림….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없었던(혹은 설명을 해줄 때까지 차이를 인지할 수 없었던) 그 스티커들 사이에서 고른 것이 부디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안락하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택배 박스가 속속들이 날아들었다. 엽산제, 철분제, 산모수첩, 임산부 배지, 육아 초보 아빠를 위한 가이드북, 국민행복카드 등, 앞으로 우리가 밟아 나가게 될 임신기간의 첫 발을 뗄 지원물품들이었다. 제법 풍성하다는 생각을 하는 내게, 아내는 우리가 사는 곳이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출산율이 높아 지원이 적은 편이라고 말해주었다.


4년 동안 공부했어요.


아이를 갖기로 합의를 봤던 4년 전부터, 아내는 임신을 하기 위한 준비뿐만 아니라 임신을 한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뭘 준비하고 뭘 사야 하며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에서 아껴야 하는지 등을 모두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책과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고 엑셀로 임신기간 동안의 계획과 예상 지출 등을 정리해둔 파일을 열어 내게 보여주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아내가 얼마나 아이를 원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너무 오래 끌어서 원망스럽진 않았어요?”


미안한 마음. 그리고 기다려줘 고마운 그 마음.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내게 부담이 될까 혼자 이토록 많은 준비를 했을 그 마음을, 어쩌면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마지막까지 시간을 끌며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진 않았느냐고.


“아뇨. 나는 살면서 내 인생에 아이가 당연히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고, 다만 그때가 되었을 때 잘 준비되어 있기를 바랐어요. 당신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우리가 아이 없이 살 거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나는 우리가 이렇게 아이를 가지는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내가 말했다. 내게 생소한 이 모든 과정이 필연적으로 다가올 운명 같은 것임을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을 뿐이라고. 마치 먼 하늘의 번개를 보고 천둥이 울릴 것임을 알고,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아내는 법적으로 임산부가 되었다.


아내는 회사에 단축근무를 신청했고, 여직원 비율이 유난히 높은 아내의 회사에서는 아내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게 기뻐해 주는 것이 너무도 고마웠다며,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직을 결정한 것이 너무나 잘한 일이었다고. 군대식 문화에 여성 비율은 2% 정도밖에 안 되는 제조업 회사였던 전 직장에서는 아마 골치 아픈 문제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었을 거라면서.


아내는 법적으로 임산부가 되었다. 이제는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을 수 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붙은 노란색 임산부 스티커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제법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길고도 험난한 예비 부모 생활의 첫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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