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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Sep 21. 2022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관계가 있다

04.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얼마 안 됐네. 진짜 조심해야 할 시기인데. 잘 챙겨줘.”


작년에 아이를 낳고, 1년 사이 어느새 의젓한 엄마 티를 물씬 풍기는 친구가 말한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건 말년 병장만이 아니라면서. 나보다 여섯 살이 어리건만, 말하는 건 이미 누나다. 애송아, 이것이 출산 유경험자 엄마 바이브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 그런데, 대체 뭘 조심해야 하는 걸까?”


한참 동안 임신한 아내를 둔 남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조건들을 설파하던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나 때도 그랬거든. 다들 임신 초기가 가장 위험하다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는데. 그런데 정작 뭘 조심해야 하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오빠는 뭘 조심해야 한다는 건지 알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녀가 묻는다.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당장 아내가 오늘 뭘 먹을 수 있을지 조차 모르는데.


대체 뭘 조심하라는 건지 오빠는 알아?


“그냥 다 조심해야지. 무거운 것도 들지 말아야 하고, 잠도 잘 자야 하고, 몸도 차게 하면 안 되고, 걸을 때도 조심조심하고, 너무 급하게 몸을 움직여도 안되고, 뛰어도 안되고….”


아이가 생겼다는 말에, 장모님은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아내에게 훈계하셨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이 한창일 때 아이 셋을 낳고 키워낸 장모님은 첫 손주 소식을 가져온 딸에게 하실 이야기가 많은 듯싶었다.


아내가 병원에서 정식으로 임신 확인증을 받은 지 이틀 후, 우리는 장인어른 생신을 축하하는 가족 식사 모임에 참석했다. 우리 집 바로 옆 아파트 단지인 처가로 걸어가면서, 아내는 어떻게 부모님을 놀라게 해 줄까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티를 내진 않지만 아이를 좋아하시는 장인어른. 왜인지는 모르지만 은근하게 아이 언제 가질 거냐며 아내에게 가장 압박을 많이 넣었던 처제. 아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엄마 될 사람이 그러면 안돼!”라는 말로 혼내셨던 장모님. 그리고 아빠를 닮아 아이를 좋아해 보육원에서 봉사활동도 곧잘 하는 처남. 아내는 처가에서 받을 아이의 환대가 내심 기대되는 눈치였고, 덩달아 나도 처가에 가까워져 갈수록 마음이 붕 뜨며 파랗게 물들어감을 느꼈다.


“어머….”


짜잔. 장인어른에게 생신 선물이라며 두 줄이 선명하게 찍힌 임테기를 보여드리는 아내. 평소 말수가 적으신 장인어른은 묵묵히 씨익 웃으시고, 처제는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눈물을 흘린다. 어머, 이게 뭐니, 하고 임테기가 든 투명 지퍼백을 받아 든 장모님이 거듭 아내를 보며 물으신다. 이게 뭐야, 어머, 생긴 거야? 언제? 이거 진짜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낯설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아직 어린 대학생 처남은 둘째 누나와 엄마 사이를 오가며 어깨너머로 상황을 살핀다.


존재만으로 환영받고 감사하는 관계가 있다.


이 날, 장인어른의 생신을 축하드리려 만난 모임이었건만, 이야기의 중심은 단연 아내의 임신이 되었다. 아이의 태명은 뭘로 지었는지, 입덧은 없는지, 태몽은 있었는지, 시부모님에게는 이야기를 했는지, 병원에서는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지. 모든 게 궁금한 처가 식구는 진심으로 아이의 존재를 환영해주었다. 아내는 이 기세를 등에 업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속에 담긴 말을 당당하게 장인어른에게 날려 보낸다.


“아빠, 이제 담배 끊으셔야 해요. 아빠 담배 피우면 나 여기 못 와.”


장인어른의 표정이 묘하다.


장인어른 생신 모임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일찍 우리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의 본가로 향했다. 코로나 때문에 미루고 미뤄 겨우 몇 달 만에 찾아뵙기로 한 날이 우연히도 딱 맞아떨어졌다. 약 한 시간 가량 차를 달려 부모님을 뵙고, 점심을 먹으며 조용히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 아이가 생겼어요. 엄마 아빠에게 세 번째 손주가 생길 거예요 하고.


우리 부모님의 반응도 장인어른 장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첫 손주이고, 우리 부모님은 누나가 낳은 두 말괄량이 아들들이 있어 세 번째 손주를 보신다는 것 정도. 모두 하나같이 기뻐해 주었고, 아내의 건강을 염려해주었으며, 앞으로 많이 고생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하셨다.


아이를 키워봐야 진짜 어른이 되지.


“이제 진짜 어른이 되겠네.”


어머니의 말씀에, 나이 마흔에 아직도 어른이 아니었나요 하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우리 장모님이랑 따로 말이라도 맞추신 거냐고도 묻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바로 전 날 장모님께서 하신 말씀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았다. 이제 어른이 되겠네. 진짜 어른.


“해 봐.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


나는 이미 다 하고 끝났어. 이제 너희 차례네. 잘해보렴. 하고 여유롭게 웃으시는 어머니. 그 옆에서 마냥 손주 소식이 반가운 아버지. 왠지 그럴 줄 알았다며, 축하한다고 넌지시 말을 건네주는 누나. 주말 내내, 나와 아내는 가슴 설레는 축하와 축복의 말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이 사람들이 내 가족이다.


이후, 일주일 동안 부모님께 연락을 받은 친척들의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해 요원해졌던 친척들이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고 이모티콘 가득한 문자를 보내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대화를 나누고 메시지에 답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태어나기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나를 가지셨을 때에도 집안 어르신들은 나의 존재를 이렇게 반기고 기뻐해 주셨겠구나. 그저, 우리가 피를 나눈 친척이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아직 아무것도 아니던, 그러니까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하나의 세포 덩어리였을 때부터, 나의 심장소리 하나에, 나의 발길질 하나에, 이 사람들은 이토록 웃고 기뻐하고 반겨주었겠구나.


고마웠다. 모든 축하의 말들이 가슴에 차곡차곡 하얀 눈처럼 쌓여, 바깥의 따가운 바람을 막는 온기를 만들어주었다. 몇 달 후 찾아올 우리의 아이가 환영받는다는 사실이, 그 언젠가 내가 이토록 환영받았다는 사실이, 마치 누군가가 나를 품에 안고 토닥여주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구나 하고. 그리고 가족은, 어떠해야 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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