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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Sep 25. 2022

아내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05. 모든 음식에 식초 세 방울을 섞은 것 같은 맛이란다


“입맛이 완전히 변했어요.”


아내가 원망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쏘아보며 말한다. 


“모든 음식이 식초 세 방울을 섞어놓은 맛이 나.”


양팔로 꼭 끌어안은 쿠션으로 손톱이 파고든다. 나는 생각한다. 아내의 입덧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구나 하고.


임신 6주 차, 1.5mm 배아가 6mm가 되었다.


임신 6주 차가 지났다. 일주일 만에 뱃속에 있는 아이는 1.5밀리에서 6밀리로 자랐다. 그 손톱보다 작은 점 같은 녀석은 영차 영차 부지런히 세포를 쪼개면서 엄마의 몸에 거대 공사를 시작했다. 영양분을 들이는 상수도관과 노폐물을 빼내는 하수도관 공사. 이름하여 태반 공사다. 이 공사는 아내에게 눈에 보이는 직격탄을 날린다. 웨액.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아내의 상태. 6밀리미터 크기의 아이는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듯 그 존재감을 여지없이 과시하며 노래한다.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은, 내 꿈은~!


입덧의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 아내는 체덧이라고 한다. 마치 체한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며, 배가 고플 때도 배가 찼을 때도 체기를 느껴 비실거렸다. 먹는 양을 적당히 조절하면 어떨까 했으나 그 적당히가 매번 다르다며, 아내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실시간 업데이트를 하는데
왜 알림이 오지 않는 것인가.


“체기를 느끼지 않을 적당한 양이 매번 달라요. 아니, 그전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매번 달라지는 게 더 큰 문제예요.”


꼭 실시간 업데이트를 하는데 알림이 울리지 않는 느낌이라고. 제발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아내는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어제까지 잘 먹던 바나나가 오늘 아침에 그렇게 역할 수가 없어요. 어제까지는 보기도 싫던 방울토마토가 오늘은 그럭저럭 먹어볼 만 해. 오늘 점심시간에 팀장님이 물어봤어요. 점심 뭐 먹을까, 뭐 먹고 싶니? 하고. 나는 팀장님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말했는데, 그래도 내가 먹고 싶은 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요?”


글쎄, 하고 답하자 아내가 말한다.


“저는 아직 컨펌을 못 받아서요. 제출해 봐야 압니다. 그러니 팀장님 원하시는 곳으로 가시죠.”


이 조그만 게 완전 상전이예요. 내 몸을 완전히 지배했어. 소파에 파묻혀 여전히 원망 섞인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아내는, 이내 쿠션을 던져놓고 드러누우며 말한다. 아, 또 토할 것 같아. 


그 좋아하던 커피는 냄새조차 맡지 못할 만큼 질색을 하게 되었고,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갑자기 사냥개라도 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먼 곳의 냄새까지 캐치하는 예민한 후각을 갖게 된 아내. 아내는 지금의 자신을 낯설어하는 듯했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예민해지기 마련인가 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내의 입덧의 위력은 나의 상상보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던,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부여잡고 속을 게워내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세 자매를 낳으시면서 단 한 차례도 순하게 넘어가신 적 없다는 장모님의 입덧 경험담 때문에. 그리고 임신기간 내내 변기를 부여잡고 지내는 누나의 두 아이 출산기를 보았던 탓에. 


하지만 그 강도가 낮다고 괴로움이 덜해 보이느냐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잔잔하게 생활 속에 깊게 뿌리내려 계속해서 아내를 괴롭히는 것이 더 끔찍해 보이기도 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기존에 상상하던 입덧이 캠프파이어 장작더미에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면, 실제로 생활 속에서 마주한 아내의 입덧은 장작불이 밤새도록 타고도 아침까지 잔불이 남아 타닥거리며 연기를 내는 느낌이었다. 킬링 미 슬로울리. 어쩌면 차라리 단두대의 이슬이 더 나은 형편 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천천히 몸을 갉아먹는 시간을 겪다 보니, 아내의 생활 속에 짜증이 조금씩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연애기간을 합쳐 12년을 함께하면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보았던 아내의 짜증 섞인 표정과 목소리를 생활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빈도가 늘어났다. 생활 속에 찾아온 그 낯선 변화가 아내의 힘겨움을 말한다. 나는 그런 지금의 아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 짜증의 대상이 내가 아님을 상기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인간이기에 느끼게 되는 서운함을 표현하기엔 지금의 아내는 너무 연약했고 보살핌이 필요했기에. 그 힘겨움의 크기를 나는 느낄 수 없기에, 이해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아내 또한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요즘 많이 예민해진 것 같다고, 많이 힘든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아내는 약간의 뜸을 들이며 이렇게 말했다.


“대단히 많이 바뀌진 않은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좀 그런 것 같아. 평상시에 대단히 화가 나있거나 한 건 아닌데, 모든 일에 대해서 예전보다 참을성의 역치가 많이 낮아졌어요.”


뭔가를 참기가 힘들어요. 냄새도, 힘든 것도, 졸린 것도, 배고픈 것도, 감정 변화도. 아내는 인내심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그런 자신의 변화를 신기해하면서, 또 조금은 걱정하는 눈치였다.


티가 나지 않아 더 배려받고 싶은 마음


“이제 6주 남았네.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고, 12주가 넘어가면 또 좀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힘내.”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다 안다는 표정으로, 이미 다 겪어보았다는 느낌으로, 그리고 그 너머에 있을 것들이 뭔지도 아니까 벌써부터 이렇게 호들갑이면 안된다는 목소리로. 아내는 그 희망 하나로 하루하루를 묵묵히 버텨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내에게, 티가 나지 않는 임산부로서의 불편함은 큰 복병이었다. 


“오늘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려는데 내 바로 앞에 있던 아저씨가 쏙 하고 자기가 앉아버리는 거 있죠? 반대편 배려석에는 어떤 아줌마가 앉아서 졸고 있고…. 아저씨는 내 가방에 매달린 임산부 배지도 봤는데, 안 비켜주더라고요.”


대체 왜 임산부 배려석은 늘 관계없는 사람들에 의해 점령되고 마땅히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눈치 보는 상황이 되었을까. 노약자 보호석은 그렇게 잘 지켜주면서. 확 다 임신해버려라. 나의 투정 섞인 소리에 아내가 웃는다. 


배가 나오지 않은 임산부는 사회적 배려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하기사 임신 12주까지가 입덧으로 힘든 시기라는 것도 몇 주 전까지 모르고 살았던 나다.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 남들이 볼 때 아내는 그저 젊고 건강한(하지만 조금 많이 지친) 직장인 여성 A일 뿐이었다. 오직 가방에 매달린 임산부 배지만이 그녀가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려주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도 임산부 배지라는 게 어떻게 생겼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길에서 그냥 보았다면 뭔지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넉넉하게 상대를 배려하고 너그러워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입덧은 그런 느낌이다. 겪어보지 못하기에 이해하지 못할 그 어려움이 안타깝고 안쓰럽다. 곁에서 보는 내가 이런 느낌이면 본인은 오죽할까. 안쓰럽지만, 어쩌면 이 또한 부모가 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는 남에게 이해받지 못할 어려움의 시간을 통해 더 넉넉하게 타인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받아들이며 타인을 더 세심하게 대하고 위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부모가 되려면, 응당 그런 능력쯤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시간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도 모르게 주변을 잘 살피게 되었다. 도로에서는 임산부나 아이가 타고 있다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길거리에서 스치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배나 임산부 배지도 눈에 들어온다. 겪어보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할 힘겨운 시간들을, 꽤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이겨내며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들의 무리 속에, 아직은 한참 부족한, 나와 아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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