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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Sep 29. 2022

처음으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06. 남들은 울기도 하고 그런다던데...

“어땠어요? 꼬물이 첫 심장소리를 들은 소감은?”


이른 저녁시간, 병원 건물을 나서며 아내가 물었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글쎄. 참 부지런하게도 뛴다?”


그리고 소리가 특이했어요. 두근 두근이 아니라 슉슉슉슉. 아내는 나의 말에, 심장이 아직 나뉘지 않고 하나라서 그렇다고 답했다. 아직 좌심방 우심실 이런 것 없이 통으로 하나라서 그렇다고.


산부인과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임신 6주 차 금요일. 반반차를 내고 아내가 다니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처음으로 아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에 이 날만은 반드시 함께 동행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막히는 강남 한복판 길을 가로질러 병원 정문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자 아내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손을 흔든다. 회사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갈 수 있게,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로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에 위치한 병원이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요.”


병원에 도착한 아내는 제법 익숙한 듯 접수를 하고 간호사와 무슨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 몸무게와 혈압을 재고 소변검사까지 일사불란하게 척척 움직였고, 나는 아내가 맡긴 가방과 겉옷을 품에 안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 아내의 동선을 눈으로 좇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 나는 모습이 보였다.


산부인과는 남자와 큰 연관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던 탓인지 혹은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탓이었는지, 나의 머릿속에 그려진 산부인과의 모습은 늘 뭔가 베일 뒤로 감춰진 비밀스러운 공간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실제로 방문한 산부인과는 나의 상상과 거리가 멀었다. 그냥 평범한 병원이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차이가 좀 있다면 내가 그나마 살면서 많이 방문했던 내과와는 다른 홍보물이나 전단지가 군데군데 보였다는 것 정도일까.


“생각보다 남자랑 같이 온 사람들이 많네.”


아내가 곁에 앉자 내가 말했다. 아내는 내 팔을 품에 꼭 끌어안으며 팔짱을 꼈다. 가늘게 떨리는 아내의 손이 느껴졌다. 씩씩하게 병원을 누비고 다니던 아내의 방금 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긴장돼요?”


“응. 오늘 좀 그러네. 혼자 올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 같이 오니까 어리광 부리고 싶어 져요.”


집이었으면 아마 뱀파이어처럼 내 목을 앙 물고 쪽쪽 빨았을 거다. 아내의 특별 심신 안정법이다. 아내 한정으로 내가 참아주는 간지러움이기도 하고.


심장소리가 들리면 가장 큰 고비는 넘긴 거라던데


어느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따르면 꽤 많은 산모가 임신 초기에 유산을 경험한다고 한다. 딱히 산모가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우가 꽤나 많다고.


“착상이 되고 나면 태반을 만들면서 배아가 세포분열을 해요. 분열을 하다 보면 비정상적인 애들도 나오게 되는데, 그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지금 우리 몸에서도 흔치 않게 결함이 있는 세포가 만들어지고 있을 거야.”


문제는 비율이에요. 아내가 말했다.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면 결함이 있는 세포가 만들어져도 비율적으로 정상세포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괜찮지만, 초기에는 절대적인 세포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세포가 주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지게 돼요.”


그래서일까. 임신 초기 12주까지는 자연유산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쉬쉬 하면서 들렸던 소식이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심장소리가 들리면, 가장 위험한 시기는 지난 거라고 해요.”


내 팔을 쥔 아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내의 어깨에 팔을 둘러 품에 안아주었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 말아요. 토닥이는 나의 손에 맞춰 아내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평소에는 회사에서 잔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낯설었고, 또 한편으로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음이 안타깝기도 하고. 아내의 임신 기간 동안 남자가 잘해야 하는 건 이런 이유인가 보다. 함께 갖는 아이인데, 남자가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러니 말이나 행동이라도 예쁘게 해야 덜 미움받는, 그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들리시죠? 이게 심장소리예요.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자 40대 중 후반쯤 되어 보이는 중후한 남자 의사가 피로에 퉁퉁 부은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간단하게 아내의 상태에 대해 묻고는, 이제 6주가 되었으니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초음파를 시작하자 모니터 너머로 아기집이 보였다. 2주 전에는 너무 작아 보이지 않던 꼬물이가 이번에는 점처럼 나타났다. 화면을 확대하자 콩알 같은 것이 팔딱이는 게 보였다. 의사가 소리를 켜자 슉슉슉슉, 특이한 소리가 들렸다. 내가 상상했던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아니었다.


"들리시죠. 이게 심장소리예요."


의사가 말했다. 0.6밀리미터가 된 꼬물이의 심장이 분당 120회의 속도로 뛰고 있다고.


일주일치의 입덧 약을 처방받고, 다음 진료일을 정한 후 진료실을 나왔다. 그래도 이제 제일 위험하다는 시기는 지났으니까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게 아내가 말한다. 12주 차에는 아마 기형아 검사를 하게 될 거예요 라고. 이런 젠장….


생각보다 덤덤했던 산부인과 동행기가 되었다.


의사는 아이의 출산예정일을 아내의 생일로 지목했다. 물론 그날에 태어날 확률은 크지 않겠지만, 그래도 단 하루의 차이도 없이 딱 그날이 출산 예정일로 기록된 것이 신기했다.


"우리 꼬물이는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좋아하려나보다."


나의 말에 아내가 싱겁게 웃으며 말한다.


"날 닮았으면 그럴 리 없어요."


골수까지 아빠 바라기인 아내다운 대답이었다.


병원을 나서 지친 아내의 기운을 북돋워줄 겸 아내가 좋아하는 젤라토 가게에 들어가 앉았다. 젤라토를 한 스푼 떠 입에 넣자 혀끝에서부터 달콤한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진다. 조금은 기운이 났는지, 다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아내가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의사 선생님이 남자라서 불편하지는 않았느냐고, 산부인과에 같이 가 본 기분은 어떠했느냐고, 그리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소감은 어땠느냐고.


“남들은 울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한 나의 마음이었다. 남들은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으면 세상이 달라 보이기도 하고, 아빠가 되는 걸 실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눈물까지 보인다는데. 나는 그저 신기했다. 모니터 속에 조그마한 그 강낭콩 같은 것이 슉슉슉 펌프질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저 1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조그만 것이 몇 달 후에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게 신기했다. 정말 저게 내 아내의 뱃속에 있는 것이 맞나 싶기도 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대단한 어떤 책임감을 느끼거나 현실 자각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심장소리를 들으면 아빠가 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나의 기대는 빗나간 듯했다.


“그래도 한 가지 변한 건 있어요.”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뱃속에 생긴 그 조그마한 게, 나나 당신처럼 생명을 갖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것 같아요.”


너무 작고 하찮아 보이는 그 조그만 것이, 아직 제대로 나뉘지도 않은 심장 같은 것을 가지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만의 싸움을 열심히 치르고 있는 생명이라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아내는 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내에게 뱃속의 아이가 참 많이 부럽다고 말했다. 저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무엇을 하더라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그 열려있는 기회와 가능성의 빛나는 시기로 들어서게 될 아이가 부럽다고.


아내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뛰어들면서, 무참히 깨지고 실패하며 상처받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배우며 귀중한 가치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아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넘어져서 우는 아이가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그런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여전히 많이 못나고 부족해 한참 멀었구나 싶은 내가,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는, 초보 임산부의 남편이 전부인 나는, 앞으로 남은 8개월 동안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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