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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Oct 05. 2022

산부인과 의사가 남자라 싫진 않았어요?

07. 의사는 의사일 뿐이라는 아내

“의사 선생님이 남자라서 싫진 않았어요?”


혹시 기분 나빴나요? 임신 6주 차. 산부인과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잠시 생각을 하던 내가 아내에게 되묻자, 아내가 답한다.


“오늘 초음파 검사를 할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오빠가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그랬나요? 아내가 재차 묻는다. 


어떤 사람은 화도 낸다고 하던데.


아내의 질문을 곰곰이 씹어보았다. 나는 기분이 나빴나? 아내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는 대략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 정도로, 짙은 피로감이 두 눈 밑까지 차올라있었다. 수면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를 검은 그림자가 퉁퉁 부은 얼굴 위로 떠올라 있던 의사 선생님은 그저 안쓰러워 보일 따름이었는데. 


“기분 안 나빴어요. 정말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침묵을 깨고 답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묻는다. 오히려 당신이야말로 괜찮냐고. 남자라서 불편하진 않느냐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진료를 받는 당사자도 아닌 내가, 만약의 경우에 닥칠 위기의 순간에 아내의 생명줄을 쥐게 될 사람을 불편해하고 자시고 하는 것은 좀 배부른 소리가 아닌가 싶어서. 내 입장에서는 그저 실력과 마인드가 좋은 의사가 아내를 담당해서, 출산까지 무사히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면 그것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아내는 다르다. 진료를 받는 당사자이고, 아무리 의사라도 상대가 남자라면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신체접촉이 이루어지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만약 당사자가 그렇다면 그건 나의 불만과는 다른 문제다. 이런 경우라면 담당 의사를 바꿔달라고 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아내가 혹시 불편한가를 물었고, 아내는 이렇게 답했다. 


“아뇨. 난 괜찮아요. 의사는 의사지. 난 실력만 좋으면 아무 상관없어요. 어떤 남편은 의사가 남자면 불쾌해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오빠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어요. 난 이 선생님 좋아요. 수술 실력이 좋기로 유명한 분이거든요. 기왕이면 자연분만을 할 생각이지만, 만약의 경우에는 실력 좋은 선생님이 수술을 맡아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간혹 좋지 못한 이야기가 들린다.


아내와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내도 나도 의사가 남자인 것에 아무런 불만이나 불편함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상대가 불편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은 아무래도 좋지 못한 소식들이 간간이 들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건과 사고들. 그중에서도 성적인 것과 결부된 그런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신뢰했던 만큼 배신감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는 여차하는 순간에 내 목숨을,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의사라는 직업을 사회적으로 더 특별하게 여기고, 의사라는 사실 만으로 그만큼 존경받고 신뢰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사가 신뢰를 저버리는 순간,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은 낙담하고 좌절하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사람들의 희망의 불씨가 흔들리는 것이다. 


일부 의사가 저지르는
지저분한 사건의 피해자에는
선량한 대부분의 의사가 포함된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탓인지, 혹은 남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는 탓인지, 요즘 산부인과를 찾는 환자들 중 남자 의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남자 의사밖에 없는 상황에서조차 촉진을 거부하는 사례가 제법 된다는 이야기도 어깨너머로 들려왔다.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가 필요한 검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또 내가 도우려는 사람에게 의심과 불쾌함의 눈초리를 감당해야 하는 의사는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일부 엇나간 사람들로 인한 피해는 피해자뿐 아니라, 대다수의 선량하고 성실한 의사들에게까지 적지 않게 퍼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그냥, 믿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수년 전 연예기획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자회사를 설립했고, 나는 그 회사의 임원으로 부임받아 그곳에서 아이돌 팀 뽑아 데뷔시키는 일을 함께했다. 크지 않은, 정말 조그마한 연예기획사였지만 스태프들이 부족할지언정 멤버들이 먹는 음식, 입는 옷, 그리고 숙소와 연습실,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부족하지 않게 지원해주며 작지만 꾸준하게 방송 횟수와 앨범 판매량을 늘려나갔다. 그리고 그즈음, 몇몇 소속사의 부적절한 언행이 뉴스를 탔다. 브이 라이브에서 나이 어린 여자 아이돌 멤버들에게 노출을 강요하는 매니저, 숙소에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가전을 제공하지 않아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심지어 월세도 밀려 숙소에서 쫓겨난 멤버들이라던지…. 그런 사건들이 집중적으로 조명되면서 그 여파는 꽤 많은 중소 기획사에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음악방송이 있어 방송국에 드나들 때, 그 팬 많고 유명한 예쁜 여자 아이돌 멤버들을 수도 없이 복도에서, 대기실에서, 리허설과 사녹 장소에서, 주차장에서 마주칠 때 그들을 성적 호기심이나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았었는지.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그런 성향의 흥미를 느낀 적이 있었는지를.


답은 아니었다. 한껏 아름답게 꾸민, 정말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이 전문가의 스타일링을 받고 무대에 서기 직전의 모습을 보아도, 나는 그들에게 사실 일말의 흥미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투명인간처럼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내가 케어해야 할 대상이 따로 있었으며, 내가 집중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감정이나 흥미가 개입할 여지가 그곳에는 없었다. 그곳은 일터였고, 그들은 나의 업무 관계자였다. 


대부분의 의사도 대략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러 사람들의 몸을 보고 관찰하며 문제 여부를 찾아내야 하는 의사에게 몸은 그저 내가 돌봐야 할 업무의 대상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런 생활에 물리고 물려 나중에는 정말 지긋지긋한 대상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내가 음방이나 팬미팅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그런 상태가 된 것처럼. 


그래서, 아내와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선량한 의사들은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고, 환자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우리가 소중한 아이를 갖기 위해 필요한 진단을, 지식을, 가이드를 제공해줄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의사는 의사일 뿐이다.


의사는 의사일 뿐.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다음 진료는 3주 후다. 3주 후에도 우리는 그 피로에 찌든, 그 퉁퉁 부은 의사 선생님의 진료실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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