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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Oct 18. 2022

아이를 낳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10. 예비 아빠의 산후조리원 탐방기(1)

예비 아빠의 산후조리원 탐방기(1)

“산후조리원은 어디가 좋을까요?”


나의 질문에 아내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되묻는다.


“글쎄, 병원 가까운 곳이 나으려나, 아니면 집에서 가까운 곳이 나으려나? 어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조리원을 나오는 순간부터 지옥이야.


임신 7주 차가 끝나갈 무렵, 나는 산후조리원에 꽂혔다. 아내가 건네준 출산까지의 예산계획 엑셀 파일에서 가장 압도적인 금액을 차지하는 존재감도 있었지만,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가 천국이었다는 누나의 경험담도 큰 몫을 차지했다.


“조리원을 나오는 순간부터 지옥이야. 제발 이어서 4시간만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


손이 많이 가는 엄마 바라기 아들 둘을 가진 누나의 이야기를 햇병아리 예비 아빠인 동생이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모습을 실제로 내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아직 대학원생이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었던 그때, 누나는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몇 주간 부모님의 신세를 졌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우리 예쁜 조카에게 메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누나의 몰골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씻지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아이를 돌보고 달래고 먹이고 재우느라 온 힘을 다하던 그때의 누나는 정말로 지쳐 보였다. 툭 건드리면 와아 하고 눈물이 터질 것처럼. 100일의 기적이 현실이 되기까지, 누나는 최선을 다해 버티고 또 버텼다. 조카가 처음 4시간을 연달아 잤을 때 누나의 감격스러운 목소리에서 그동안의 지친 심신을 읽을 수 있었다. 정말 무너지기 딱 그 직전에서야, 조카는 누나에게 살아날 구멍을 열어주었다.


그런 누나가 산후조리원은 천국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내가 처음 내게 ‘조금 길게 산후조리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머무를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을 그곳에서 보내리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나와 아내의 건강과 평화를 위해 그리 하리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내게 100일의 기적까지 이어질 고난의 행군은 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고, 하루라도 그 재앙을 유예하며 줄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의지가 있었다.


분만이 되는 병원이 없다.


분만이 되는 산부인과를 찾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적당한 산후조리원을 찾는 과정도 정말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산부인과 병원들은 분만을 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수원 전체를 뒤지고 뒤져보아도 분만이 되는 병원이 한 손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수원 인구가 몇 명인데….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은 것이 원인인지, 아니면 이런 인프라와 환경의 부족으로 인해 출산율이 낮은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집 근처 병원을 빠르게 포기하고 아내의 회사가 있는 잠실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다행히,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제법 규모가 있는 분만이 되는 산부인과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응급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병원으로 옮기기 수월할 것 같아서, 그래, 차라리 집 근처보다 회사 근처가 낫겠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미소 지었다.


조리원 가격에는 중간이 없다.


병원을 알아볼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병원 근처와 집 근처의 산후조리원을 뒤졌다. 그리고 곧 아내의 병원 근처에 있는 산후조리원 몇 군데를 후보로 올렸다. 처음에는 집 근처에 있는 산후조리원을 갈까도 생각했지만,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아이를 차에 태워 1시간 넘게 이동하는 것이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차로 20분을 넘기지 않는 수준에, 내가 혹시 조리원에서 함께 숙식을 하더라도 회사에 출퇴근이 용이한 곳을 찾았다. 그렇게 위치만으로 고른 조리원들에 하나씩 들어가 프로그램과 가격 등을 확인해보았다.


 “… 우리 산후조리원 예산 얼마로 잡았더라?”


내가 묻자 아내가 침묵으로 답한다.


조리원 가격에는 중간이 없었다. 우리가 나름대로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곳은 2주에 500만 원을 우습게 넘겼고 가격대가 합리적이라고 할 만한 곳은 우리가 세운 기준을 채우지 못했다. 주 1회 이상의 소아과 의사 회진과 유아 대비 간호사의 수가 1:3 정도인, 방마다 어느 정도 크기의 창문과 유축기, 좌욕기가 비치되어 있는 곳에 코로나 시대를 맞아 방으로 식사를 가져다주는 곳. 그리고 기왕이면 마사지를 제공해주는 곳. 아내의 병원과 회사가 위치한 잠실에서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가 위치한 반포동까지의 산후조리원들을 검색해보면서, 우리의 기준은 너무도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쳤나 봐. 4주는 무슨 4주야. 정신 차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하루라도 더 산후조리원에 아내를 머무르도록 하겠다는 장대한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큰맘 먹고 삼칠일 금줄을 치고 드러눕겠다고 말하는 아내의 요구에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게 ‘받고 1주일 더!’를 외치자, 임신 후 아내가 처음으로 버럭 목소리를 높이며 말한다. 4주는 무슨 4주야. 정신 차려요. 미쳤나 봐.


“그럴 돈이 어디 있어. 안 그래도 여기저기 들어갈 돈이 산더미인데. 오버 좀 하지 마요.”


3주면 돼. 무슨 4주야, 4주는. 아내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진다. 꼬물아. 엄마가 화낸다. 귀 막아. 듣지 마.


생각해보면 나름 합리적 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펼쳤던 손가락 네 개 중 하나를 접었다. 3주. 그럼에도 가격은 만만치가 않았다. 남들 다 하는 마사지까지 포함하면, 사치스럽진 않더라도 중간이라도 가는 곳이면 700만 원 정도는 우습게 넘길게 뻔했다. 3주에 700만 원. 현실감이 떨어지는 숫자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인 금액의 크기로 인해 비싸다고 느끼긴 하지만, 이게 만약 호텔이라면 어떨까 하고. 삼시 세 끼 룸서비스에 간식도 주고, 때가 되면 모닝콜도 해주고(너무 잦아서 문제지만) 마사지며 세탁이며 청소도 모두 해준다. 만에 하나 아이가 아프면 의사도 와주고, 24시간 아이를 돌봐주는 도우미가 몇 명씩 붙어있다. 이런 서비스면 5성급 호텔 안 부럽다. 그래서, 요즘 서울 강남 잠실 5성급 호텔에 조식과 해피아워가 포함되면 1박에 얼마지? 시그니엘, 소피텔, 인터컨티넨탈, 파크 하얏트, 조선호텔 같은 곳에 3주면 서비스 다 빼고 방값만으로도 700은 우습게 넘긴다. 가구가 좀 덜 팬시하고 셰프가 미슐랭 스타를 받지 못했다는 차이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교를 해보면 납득이 가는 수준이다. 요즘 인건비가 얼마나 비싼데.


결국 우리는 고르고 골라 산후조리원 후보지로 세 곳을 정했다. 가격이 덜 부담스럽고(2주에 300만 원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여겨지는 곳으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겼던 기준을 충족시켜주는 곳으로.


아이를 낳는 데는 돈이 든다. 더 고급스러운 곳으로 잡아주지 못하는 나의 한계가 미안해서, 슬쩍 접었던 손가락 하나를 다시 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또, 버럭하고 언성을 높일 아내가 보일 듯해서, 나는 다시 묵묵히 접어든 손가락을 보며 나직이 말한다. 꼬물아, 임자, 내가 참,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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