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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Oct 26. 2022

이제는 태아라고 불러주세요.

11. 임신 8주 차가 되었다.

“이제는 태아라고 불러요.”


아내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임신 8주 차가 되던 날 아침이었다.


“어제까지는 배아. 오늘부터 태아.”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가 묻는다. 그 둘의 차이가 대체 뭐냐고. 아내가 답한다.


“배아는 꼬리가 있어요. 태아는 꼬리가 없어요. 꼬물이의 꼬리가 없어졌어요.”


꼬리가 없어진 우리 아이는, 법적으로 태아의 지위로 올라섰다. 차근차근 부지런하게, 꼬물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불안했다.


8주 차가 되면 아이는 손 비슷한 것도 생기고, 귀 비슷한 것도 생기고, 또 통으로 있던 심장에 구역도 나뉜다고 한다. 초음파 사진을 찍으면, 이제는 좀 사람 같은 모양새가 보일 것이라며 아내는 기뻐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여전히 불안했다. 다름이 아니라 아내에게서 갈색 분비물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피가 비치는 건가 싶어서 무서운데, 또 피라고 할 정도의 색은 아닌 것 같고. 애매해요.”


인터넷을 찾아본 아내는 종종 자신과 비슷한 케이스의 사람들이 보인다고 했다. 팬티라이너나 생리대 같은 것으로 해결이 안 될 정도가 아니면 괜찮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자신은 그 정도는 아니라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두 눈에는 살짝 불안감이 어려있었다. 처음 해보는 임신 과정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신체 변화는 충분히 두렵고 낯설 텐데.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아마 귀여운 수준일 것이다. 참 용감하고, 또 세심한 사람이다.


마음이 중요해. 무조건 마음이 편안해야 해.


입덧이 시작된 후, 정말 힘든 날이면 아내는 퇴근 후 나를 혼자 집에 두고 처가로 훌쩍 떠났다. 바로 아파트 옆 단지에 사시는 장모님을 찾아가 저녁을 내놓으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한다. 갑자기 찾아오는 아내를, 장모님과 처제는 정말 극진히 대접해주는 모양이었다.


“신기하게 입덧이 심해도 엄마나 동생이 해주는 음식은 잘 들어가요.”


이번에는 전복죽을 만들어줘서 한 그릇을 다 먹었어요. 아내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참 좋았겠다고. 그래서 장모님이랑, 처제랑, 처남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느냐는 질문에 아내의 표정이 바뀐다. 기분이 좋았던 건 딱 거기까지였나 보다. 맛있게 먹은 밥.


“이 사람들은 날 가만 두질 않아. 시키는 게 너무 많아요. 배 따듯하게 해야 한다. 옷이 그게 뭐냐. 이 옷 입고 있어라. 여기 누워봐라. 내가 여기 주물러줄 테니 너는 여기를 주물러봐라. 내가 안 해줘도 너 혼자서 이곳을 자주 주무르며 풀어줘야 한다. 이거는 먹었니. 저거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자 이제 옆으로 누워봐라…. 아 진짜…. 그래 놓고 이래요. 마음이 중요하다고. 무조건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고.”


가만 둬야 편안해지지. 날 좀 제발 가만 두란 말이야. 편안해지게. 빵빵해진 볼로 불만을 쏟아내는 아내. 다 죽어가던 아내가 기운을 차리고 화를 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 돌아온 모습이 반갑다. 잘 돌봐주셨구나. 참 감사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남편으로서 잘해주지 못하고 있는 건지, 내가 뭔가를 더 해줘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참 미안해서.


“혹시 장모님한테 여쭤봤어요? 장모님은 그러신 적 없었는지.”


문득 생각이 나 아내에게 물었다. 장모님의 입덧을 데칼코마니처럼 빼다 박은 아내이기에, 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아내의 평소와 다른 신체적 징후들에 대해 장모님이 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도 장모님 댁에 가자마자 여쭤보았었다고. 하지만 장모님은 그러신 적이 없었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괜히 물어봤다가 잔소리만 들었어요. 그러게 몸 따듯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냐. 스트레스받으면 안 된다 등등… 아, 지겨워.”


장모님은 일장 연설 끝에, 언제 다시 병원에 가야 하는지를 물으셨다고 한다. 마침 입덧 약도 떨어져 가고, 또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이번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병원에 가보련다고 답하자, 조용히 딸과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의사한테 가도,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뱃속에 든 아이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의사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 너도 알잖아?”


장인어른 말씀에 아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알고 있다. 지금 단계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아마 없을 것이다. 장인어른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에게 가고 싶은 건, 결국 의사가 해주는 ‘괜찮습니다.’ 한 마디가 듣고 싶은 거야.”


의사의 괜찮다는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맞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태아에게 문제가 있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병원에 가더라도 의료기기를 통해 현 상황을 볼 수 있을 뿐이며, 우리는 그저 안심할 수 있는 전문가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필요했을 뿐이다. 처음 겪는 신체의 변화가 너무도 급격해서. 우리의 일상이 너무 빠르고 크게 변해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그 변화가 안전한 것이라는 말이 간절해서. 그래서, 의사의 그 괜찮다는 한 마디가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주말을 맞이한 우리는 하루하고 반나절을 잠으로 채웠다.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고, 모든 걸 던져두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가끔 눈이 떠질 때면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가고, 밥을 먹고, 또 잠을 잤다.


일요일 저녁이 다 되어 갈 때쯤이 되어서야 우리는 조금 멀쩡해진 정신으로 소파에 앉았다. 이틀 동안 침대에 눌려 날아갈 것 같이 변해버린 까치집 머리와 두 눈 가득 낀 눈곱이 우스꽝스러워 우리는 서로를 보며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흘려보냈다. 잘 쉬었고, 참 잘 잤다.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집 근처 호수공원을 산책했다. 잘 쉰 덕분인지, 아내는 오랜만에 꽤 길게 걸으면서도 크게 지치지 않았다. 1시간가량을 호숫가를 따라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쥐고 말없이 걸었다.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다.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임신 8주 차의 평범한 주말이었다. 여전히 겉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지만, 계속해서 심해지는 입덧이 아이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우리는 마음을 편히 가지려는 노력과, 그럼에도 불안해지는 마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태양을 바라보는 미어캣처럼 의사의 말 한마디를 갈구하면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그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다가도, 또 어느 순간 불안해하기를 반복한다.


이 반복이 거듭될수록, 어쩌면 조금은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신중해지고, 무거워지며, 또 겸손해짐을 느낀다. 앞으로 숱하게 있을, 우리의 생각이나 노력과는 달리 어찌할 수 없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연습. 그 감각을 익히는 것이 어쩌면, 아이를 통해 삶을 배우는 과정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고.


“… 그래도 나, 좋은 게 하나 있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 침묵을 깨고 아내가 말했다. 뭐가 좋으냐는 나의 물음에 아내가 답한다.


“생리 안 해도 돼. 생리통이 없어.”


그건 정말 중요한 거예요. 아내의 말에 나는 조용히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다행이다. 정말 푹 잘 잤구나. 그리고… 아직 살만 한가 보네.


어쩌면, 의사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보다 아내의 이런 장난기 어린 농담이, 어쩌면 더 내 마음을 더 보듬어주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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