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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Oct 30. 2022

꼭 산후조리원에 가는 게 정답일까?

12. 예비아빠의 산후조리원 탐방기(2)

약 10여 년 전, 그러니까 코로나가 없었던 시절에 나의 세 살 터울 누나는 첫 아이를 낳았고 그 다음다음 해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누나가 첫 아이를 낳을 때에는 부모님이 대치동에 거주하셨고, 둘째 아이 때에는 청담동에 거주하시던 때라 누나의 산후조리원도 부모님 댁을 기준으로 청담동, 압구정동으로 잡았더랬다. 


조카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던 산후조리원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좁고 어두침침했던 기억이 있다. 동네 자체가 워낙 비싼 곳이다 보니 나름대로 가성비가 좋은 곳을 열심히 찾았다는 누나.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그렇게 해두었던 것이 아닐까 싶지만, 작은 창문에 암막커튼까지 굳게 막아놓은 작은 방은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고, 그곳에서 영락없이 2주를 지내야 하는 누나가 조금은 안쓰러웠더랬다. 그리고 그렇게 답답하고 비좁은 곳이 2주에 300만 원, 500만 원 한다는 이야기에 턱이 빠질 듯 놀랐던 기억도 있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내가 산후조리원을 찾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누나가 머물렀던 산후조리원은 두 곳 모두 사라지고 없다. 주변에 살아남은 산후조리원들은 돈 천만 원이 우스운 곳들 뿐이다. 결혼 준비를 할 때도 느꼈지만, 출산과 육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처럼 '출산'이나 ‘육아’라는 단어가 붙으면 비용의 앞자리 숫자나 뒤에 붙는 0의 개수가 달라지는 느낌. 벌기는 참 어려운데, 쓰기는 이토록 쉽다니. 금전 감각이 마비되어버리는 기분이다. 


내 기억 속의 산후조리원은 어둡고 비좁으며, 공포스러울 만큼 비싼 곳이었다.


“오늘 두 곳을 가볼 거예요. 비 오니까 운전 조심해야 해요.”


토요일 아침. 평소대로라면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겨우 눈을 뜨고 부스럭 거리며 일어나 비틀비틀 거실로 나왔을 아내가 오전 9시가 되기 무섭게 나의 등을 떠민다. 오늘은 산후조리원 실사 방문을 하는 날이다. 


아내가 분만하게 될 병원 근처 산후조리원 중 세 곳을 후보로 찾아두었는데, 그중 한 곳은 몇 번을 전화해도 전화 연결이 통 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노력해서야 겨우 연결이 되었는데, 방문은 아예 불가하고 미팅도 대면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자로 사진 몇 장을 보내주며 시설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사진들이 모두 인터넷 홈페이지에 있는 것들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한차례 문자 폭탄으로 안내를 받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예약을 하려면 예약금을 송금하면 된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것 이상이 전혀 없었다. 이곳은 일단 두고, 상대적으로 연락이 잘 되고 방문도 할 수 있는 산후조리원 두 곳을 우선 찾아가기로 했다. 


비를 뚫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첫 번째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꼼꼼하게 손을 씻고, 소독을 하고, 옷 위로 일회용 가운 같은 것을 걸치고 원장실로 들어가 안내를 받았다. 시스템에서부터 비용, 시설, 추가 마사지와 교육 과정, 그리고 이용 시스템. 차근차근 친절한 말투로 안내해주는 원장님의 태도와 설명이 좋았고, 금액도 우리가 생각했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시설과 서비스 등을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이라 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꿨다.


“혹시 내부 시설도 볼 수 있나요?”


설명이 모두 끝나고, 혹시 궁금한 것이 있느냐는 원장님의 질문에 내가 물었다. 


“아니요, 죄송하지만 내부 투어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조심하고 있거든요. 이제는 남편분도 한 번 나가시면 PCR 검사 음성 결과가 있어야 다시 입실이 가능하세요.” 


원장님이 답했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쓰고 다시 출근을 하게 되면, 아내는 내가 PCR 검사를 받고 오기 전까지 홀로 있어야 한다. 요즘은 PCR 검사 비용도 높고 아무나 해주지도 않기 때문에, 아마도 한 번 나오고 나면 다시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을까. 많이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은데. 코로나가 참, 많은걸 바꿨다. 


두 번째로 방문한 산후조리원은 첫 번째와는 조금 달랐다. 비용은 비슷했지만 운영 지침이 조금 달랐던 것이다. 첫 번째 산후조리원의 경우에는 출입 허가 조건도 상당히 까다롭고 외부인 면담도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에 반해, 두 번째 산후조리원은 남편이 출퇴근도 가능했고 산모의 바깥출입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아마도 산모의 정신건강을 위해 어느 정도 느슨하게 규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부 투어도 친절하게 해 주었다. 커뮤니티 시설부터 비어있는 방을 모두 보여주었다. 확실히 머무르게 될 방을 실제로 확인하는 것이 사진으로만 보던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다. 숫자와 사진으로 표현된 방은 내 두 눈으로 실물을 보는 것과 제법 큰 차이가 있었다.


산후조리원 두 곳을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두 번째 산후조리원보다 첫 번째 산후조리원이 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같이 지내고 싶긴 한데, 안전을 생각하면 첫 번째 산후조리원이 나은 것 같아요.”


혼자 너무 외롭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아내가 웃으며 답한다. 


“이것저것 찾아보니까 산후조리원 일정도 엄청 빠듯하다더라고요. 아기 밥 먹이고 밥 먹고 하느라고 하루가 그냥 끝난 대요. 그리고 난 원래 집순이라 안 답답해할 거예요. 안 움직이고 한 곳에 쭉 머무르면 좋지 뭐. 난 괜찮아요.”


용감하고 씩씩한 아내가 참 고맙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아내 없이 3주 동안 혼자 집에서 지내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쓸쓸하고 외로운 것은 어쩌면 산후조리원에 있을 아내가 아니라,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게 될 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불편해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을 택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주말 내내 서로 생각하는 바를 부지런히 이야기했다. 우리가 처음 세웠던 기준에 과연 우리가 둘러본 산후조리원들이 부합하는지, 어떤 점이 마음에 들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비용은 우리가 정말 감당 가능한 수준이 맞는 것인지. 


결과적으로 우리는 규칙이 조금 빡빡하지만 안전하다 느껴지는 첫 번째 산후조리원을 택했다.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기간이 길고 얼굴을 보기도 많이 어렵겠지만, 위험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 여겼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산모가 바이러스에 걸리거나, 그게 아이에게까지 전염이 된다면 그때는 정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걱정에서 한 결정이었다. 늘 느끼고 있었지만, 우리는 안전에 대한 욕구에서만큼은 서로 이견이 없었다. 


산후조리원 예약을 앞두고 유튜브를 보다가, 궁금한 마음에 산후조리원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다. 산후조리원 후기나 리뷰, 브이로그 같은 것들 틈에서 꽤 자주, 그리고 꽤 많이 이런 문구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산후조리원을 조기 퇴소한 이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후조리원에 비싼 돈을 들여 들어가고는, 며칠 되지 않아 조기퇴소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들도 제각각이었다. 산후조리원의 서비스나 시설에 문제가 있었거나, 아니면 산후조리원의 폐쇄적인 시스템이 숨이 막힐 정도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되었거나. 


꼭 산후조리원에 가는 게 정답일까?


영상들을 쭉 살펴보면서 생각해보았다. 꼭 산후조리원에 가는 게 정답일까? 나의 경우에는 갓 태어난 연약한 아이를 내가 잘 돌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아내가 후유증 없이 건강을 되찾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산후조리원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선택해야 할 필수사항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나의 선택일 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영상이 말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충분히 산후조리원 없이도 해낼 수 있다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후조리원의 시스템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어쨌거나, 우리의 선택은 산후조리원이었다. 삼칠일 금줄을 치겠다는 아내의 희망을 나는 최대한 존중해주기로 했다. 햇살이 잘 들고 유축기가 방 안에 있으며 식사도 방으로 가져다주는 곳. 소아과 의사의 회진이 있고 아이 대비 간호사 비율이 3:1을 넘지 않는 곳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열심히 찾았다. 덕분에 많이 싸지도, 그렇다고 너무 비싸지도 않은 곳을 찾아 예약을 마쳤다. 출산을 하기까지 가장 비싼 결정을 완료한 것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열심히 아껴서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는 것. 결국 출산과 육아는 돈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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