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le Lee Nov 09. 2022

밀접접촉자가 된 예비아빠의 격리

14. 아내보다 내가 더 죽을 맛이다.

“문제가 생겼어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아침 내내 회의가 있었어요. 사업팀 팀장님과 2시간 동안 내 방에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그리고, 그 팀장님이 방금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어요. 나의 말 끝에 우울한 그림자가 진다.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유리문 너머 직원들의 타이핑 소리만 요란하게 귓가를 울린다. 토독, 토독, 토도도도도도독.


코로나 밀접 접촉자가 되었다.


“… 마스크는 썼어요?”


침묵 끝에 아내가 말한다. 나는 응, 하고 대답한다. 마스크 썼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내와 나는 차 한 대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수원에서 서울까지 함께 왕복하며 교통비도 아끼고 꽤 많은 대화도 나눈다. 일상에서 챙기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우리의 행복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함께 움직이는 게 맞는 걸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결정일까?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일단은….”


아내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결의에 찬 목소리로 아내가 말을 잇는다.


“일단은 PCR 검사를 하고, 같이 집으로 가요. 지금 당장 증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해도 잠복기일 수도 있고. 대신 차 안에서도 마스크는 꼭 써요. 내가 운전할 테니 뒷자리에 앉고. 가급적 말도 하지 않는 걸로 해요.”


그렇게 나는 코로나 밀접접촉자가 되었다. 내 잘못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 창문을 열고 우리는 말없이 퇴근길 러시아워의 지루한 도로를 지나 집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훨씬, 퇴근길이 길어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침실로 들어가 방 문을 닫았다. 마스크는 벗지 않았다. 아내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작은 캐리어에 며칠 동안 갈아입을 옷을 챙겨 처가로 갔다. 바로 옆 단지에 장모님이 계신다는 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이야.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침실 문을 열고 마스크를 벗었다. 갑갑하던 세상이 갑자기 환하게 트이는 느낌이었다. 내 의지와 달리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한창 조심해야 할 임산부 아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나의 가슴에 얹혀 불편함을 주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낼만해요?


“지낼만해요?”


아내가 처가로 가로 이틀째 되던 날, 아내가 내게 물었다. 혼자 지내는 건 어떤지. 먹을 건 잘 챙겨 먹고 있는지.


매일 함께 있던 아내가 없는 생활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 낯섦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것이 얼마만인지. 텅 빈 공간에 가만히 앉아있노라면 묵직한 적막이 두 귀를 감싼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또 다른 편안한 감각이다. 그런 상태로,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즐겼다. 퇴근 후 빠르고 간단하게 먹는 저녁식사. 그 후 플스 패드를 잡고 엘데로 떠난다. 열심히 유다희 님을 만나다 질리면 아이패드를 집어 들고 유튜브를 뒤적인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내게 그만 자야 한다고 핀잔을 주지 않는다. 총각 시절 자취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래, 이렇게 자유로웠었지. 누군가의 시선 속에 있지 않은 나의 생활은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유도 이틀이면 물린다. 사흘째가 되던 날부터는 혼자 저녁을 대충 차려먹고 그대로 소파에 누워 멍하니 적막 속에 파묻혔다. 그러다 속이 또 허전해 간식을 꺼내 부스럭거리며 먹고는, 또다시 소파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갈아입은 옷을 걸어놔야 하는데, 혼자라는 감각이 족쇄처럼 두 손과 발을 묶어 놓아주지 않았다. 나흘째가 되던 날 아침, 출근하기 전 둘러본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떠올랐다. 나의 자취집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던가를. 자취생이던 때의 나는 얼마나 건강이 좋지 못했던가를.


아내가 사라진 나의 일상은 평소보다 많이 길고 무기력했다.


결국, 아내가 없는 나의 일상은 평소보다 많이 길고 또 무기력해졌다. 마치 가을 낙엽처럼, 순식간에 마르고 건조해져 갔다. 아내와 함께하던 시간이 뭉터기로 남아 꼬리를 흔들며 내 주변을 빙빙 돌았다. 자꾸만 재촉하는 이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집안 꼴이 엉망이에요. 오늘 저녁에는 좀 치우고 자려고. 당신은 어때요? 장모님이 잘해주시죠?”


잘 지내고 있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우물쭈물하고는, 이내 아내에게 묻는다. 너무 일찍,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선택한 듬직한 첫째 딸이 늘 그리운 장모님은 이번 기회가 썩 싫지 않으셨으리라. 품을 떠나 훨훨 날아갔던 아기새가 오랜만에 품으로 돌아온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당연히 아주 편안하게 지내리라 의심치 않았다. 퇴근하고 나면 깜깜무소식이 되는 아내의 핸드폰이 말해주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카톡 답장을 해주는 아내가, 처가에만 가면 몇 시간이 지나도록 메시지 하나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내게, 아내는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아우 귀찮아. 나 좀 내버려 두지.”


잘해줘요. 잘해주는데, 아 좀, 나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 잠들기 전까지 뭘 그렇게 시킬게 많은지, 잠시도 쉬지를 못해요. 이리 와서 누워봐라. 이거 먹고, 이제 엎드려봐라. 자, 이제 옆으로 누워보고, 이것 좀 마셔보고. 자, 바로 눕고 다리 밑에 이거 받치고.


“저녁 먹고 나면 동생이랑 엄마가 팔다리에 붙어서 자꾸 주물러요. 다 좋고 고마운데, 너무 불편해. 나 좀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요.”


볼멘소리 가득한 아내의 표정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아내의 한 고집하는 성격은 장모님을 그대로 닮았다. 장모님도 임신해서 고생하고 있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으실 테지. 어쨌거나 아내는 처가에서 황제 못지않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입덧이 심한 딸을 위해 저녁마다 죽을 끓이고, 도시락으로 가져갈 것도 따로 챙겨주신다고. 남편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해줬던 것들은 너무 사소해 보일 정도로, 아내는 좋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또다시 죄인이 되는 것 같은 느낌. 나는 아내에게 정말 좋은 남편인 걸까. 자신이 없어진다. 투정 섞인 목소리의 아내가 나와 지낼 때보다 좀 더 기운이 생긴 것 같아서.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닷새 동안 아내와 떨어져 지내면서 혹시라도 증상이 나오지 않나 확인해봤지만, 다행히 내게 코로나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테스트 결과도 깨끗한 음성이었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는 도르륵 캐리어를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았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 날, 깨끗하게 집을 청소하고 어질렀던 흔적을 모두 지웠다. 마치 단 한 번도 엉망이 된 적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깔끔하고 정갈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깊이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토할 것 같아.”


입덧이 심한 아내의 불만 섞인 표정.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드는 아내의 불편함이, 텅 비어있던 나의 공간에 다시 돌아왔다. 아내의 미간에 잔뜩 잡힌 주름이, 메마른 나의 공간에 촉촉한 온기를 채워줌을 느낀다. 오늘은 오랜만에, 서늘했던 잠자리에 따듯한 온기가 돌 것이다. 손을 뻗으면 잠결에도 습관적으로 안겨오던,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아내가, 곁에 있을 것이다.


코로나 밀접접촉자가 되고, 아주 잠시 아내와 떨어져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 사라진 공간이 얼마나 차가워지는지. 지친 하루를 마치고 내가 돌아갈 곳은 이 콘크리트로 된 공간이 아닌, 따듯한 손을 내 가슴에 얹으며 품에 안기는 아내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이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할 때, 나의 삶이 얼마나 빠르게 빛을 잃어버리는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 그랬다. 최고의 효도는 손주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