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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Nov 24. 2022

낯설고 어색한 태담

18. 가슴에 담고 꺼내지 못하는 말

“아빠!”


아내가 말한다. 콧소리가 반쯤 섞인 목소리다. 이건 아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뱃속의 아이가 엄마의 성대를 빌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빠. 아빠. 아빠. 뭐라고 말 좀 해봐요.


“태담을 많이 들려줘야 아기에게 좋대요. 특히 태아에게는 아빠의 낮은 목소리가 엄마의 높은 목소리보다 더 잘 들려서, 태어난 후에 아빠 목소리를 더 잘 기억하고 알아듣는다고 해요.”


그러니까 아빠 목소리를 많이 들려줘요. 아내가 내 손을 잡고 배 앞으로 끌어당긴다. 아직은 티가 나지 않는 저 조그만 배에 꼬물이가, 우리 아이가 있다. 아내의 재촉에 주저하던 나는 마지못해 아이를 불러본다.


“꼬물아.”


“네 아빠.”


아내의 콧소리 섞인 대답.


“꼬물아.”


“네에 아빠.”


“… 음… 꼬물아.”


“네에에 아빠아.”


멀뚱멀뚱 아내의 배를 쳐다보던 나는 아내의 얼굴을 본다. 반쯤 웃음을 참고 있는 아내의 표정이 얄밉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결국 백기를 들고 마는 초보 예비 아빠다.


낯설고 어색했던 첫 태담


낯설었다. 태담을 하라는 말이 당혹스럽고 어려웠다.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심장이 뛰는 것을 보았지만, 이 아이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도 모르고,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손과 발은 어떤 모양인지, 두 눈은 어떤 색을 하고 있는지, 울음소리는 어떤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아직 배도 불러오기 전이어서 아이가 정말 아내의 뱃속에 있다는 것도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내게 아이와 대화를 하라니. 내가 하는 말을 아이는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마치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것만 같아서 어색하고 낯설었던 나는, 결국 태담이랍시고 아내 배에 대고 몇 번씩 아이의 태명을 부르는 게 전부였다. 꼬물아. 네 아빠. 꼬물아. 네 아빠. 꼬물아아. 네 아빠아아.


어쩌면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하지만 아내는 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소파에서, 침대에 누워서, 차 보조석에서, 아내는 콧소리를 섞어 나를 불렀다. 아빠. 아빠아.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의 삶이 빠르게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정체되어있던 삶이 타임워프라도 할 기세로 쏜살같이 앞을 향해 튀어나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 무렵 또 한차례 아내가 아빠, 하고 나를 부른다.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아이의 목소리에 답한다.


꼬물아. 안녕. 반가워.


“아빠아.”


아니, 사실 잘 모르겠어. 네가 오면서 세상이 너무 다르게 보여서 아빠는 혼란스러워. 내가 아빠라고 불리는 것도 처음이라서. 내가 정말 아빠가 되는 건지 실감이 되지 않아서.


아빠는 네가 생기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통째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 늘 내가 원하는 삶을 생각하던 것을, 이제는 네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지를 생각하게 돼. 내가 원하던 것들이 조금씩 부질없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나와 네 엄마를 닮은 생명이 생겨났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그 감사함 속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 뭔가를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닌, 주변에서 소중한 것을 찾고,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


“아빠아.”


아빠는 올해 마흔이 되었어. 아마도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시간의 절반 정도를 지나온 것 같아. 있지, 아빠의 아빠는 지금의 아빠 나이 때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셨어. 아마도 나이가 들어감에 대해 큰 짐을 느끼셨던 것 같아. 그리고 몇 년 후에, 할아버지는 큰 병을 얻으셨어. 다행히 수술을 하고 완치를 받으셨지만, 할아버지는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이 언제고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자각하셨던 모양이야.


꼬물아. 네 할아버지는 불꽃같은 애정과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분이었어. 할아버지가 지금의 아빠 나이가 되셨을 때, 아빠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그때 아빠가 보았던 할아버지는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았고 멈추지 않고 증기를 내뿜는 열차 같았어.


“아빠아.”


아빠는 할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굉장히 천천히 따라 걷고 있는 것 같아. 네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면, 아빠는 아마도 쉰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있을 테니까. 네가 성인이 되면, 아빠는 아마도 환갑을 지나려 하고 있겠지. 그래서인지, 아빠는 네게 할아버지가 보여줬던 그런 젊은 열정을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게 되는 것 같아.


하지만 반대로, 조금 더 넉넉하게 너를 품어주며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그 굳건하고 강건했던 나의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평범하고 흔한 것에 감사하며 눈물을 보이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아마 아빠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거든.


꼬물아. 아빠는 네가 세상을 사랑했으면 좋겠어. 감사할 줄 알고,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신뢰와 애정을 나눌,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따듯한 사람으로 성숙해져 갔으면 좋겠어.


아직은 너무도 먼 이야기


“꼬물아, 아빠가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이젠 대답도 안 해준다. 나빴어. 그렇지?”


아내가 대답 없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배를 쓰다듬으며 꼬물이에게 이야기한다. 아직은 태동도 느껴지지 않는, 아랫배만 아주 조금 톡 하고 나온 조그마한 배다.


내년이 되고 겨울의 거친 추위가 사그라들 때쯤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닮은 아이가 태어난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아내의 부모님을 닮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늘어나겠지.


하지만 아직은 가슴 깊이 담아두고 꺼내지 못할 이야기. 우리 아이에게 아직 너무도 먼 이야기라서. 아내가 바라는 나의 태담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그 간극을 알기에, 나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다. 그렇기에 여전히 나의 태담은 낯설고 어색하다.


언젠가 우리 아이가 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경험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기까지, 나는 아이의 곁을 지키며 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아직은 너무도 먼 그 이야기가 내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도록, 내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은, 너무도 먼 이야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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