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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Nov 29. 2022

임신 후 맞이한 아내의 첫 명절

19. 너무 별 것 없어서 허탈했던 추석

“이번 추석은 어떻게 할까요? 언제 가는 게 좋으세요?”


수화기 너머 어머니에게 묻는다. 잠시 고민하던 어머니가 답하신다.


“이번 추석에는 그냥 편안하게 쉬는 게 어떠니? 아직 임신 초기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많이 불편할 텐데.”


명절이라고 꼭 와야 할 필요 있겠니. 아직 입덧도 심하다며. 좀 더 안정기에 접어들거든 보지 뭐. 너희가 와도 좋고, 아니면 우리가 가도 되고.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연락을 드리겠다 답하고 통화를 마쳤다.


임신 후 맞이한 첫 명절은 고요하고 잔잔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임신 후 첫 명절을 맞이한 우리는 평상시 주말의 루틴을 그대로 따라갔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점심에 가까운 브런치를 먹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적당히 밀려오는 고요한 졸음에 반쯤 젖어들고 있을 때쯤 아내가 말했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건가? 하고.


“어머님 아버님도 오지 말라고 하시고, 우리 집에서도 오지 말라고 하고. 이번 추석은 추석 같지가 않아요. 그래도 명절인데.”


어머님 아버님 뵌지도 오래됐고, 나나도 보러 가고 싶은데. 아내가 볼멘소리로 말한다. 나나는 부모님이 키우고 계신 열일곱 살 먹은 우리 막내 고양이다. 올해 들어 부쩍 기운이 떨어지고 잔병치레를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나나. 아내에게 나나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정을 준 고양이다. 나만 고양이 없어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짖을 만큼 고양이를 애정 하는 아내에게 나나가 어떤 의미일지 잘 안다. 어쩌면 아내가 나의 본가에 가는걸 늘 흔쾌히 웃으며 따라나서는 것도, 혹은 가끔 내게 언제쯤 본가에 갈 거냐며 채근하는 것도 나나의 역할이 클지 모르겠다.


“입덧은 좀 있지만, 그래도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쉬워요.”


나는 우리 어머님 좋아. 아버님도 좋아. 뭔가 자꾸 해드리고 싶어 져요. 평소에도 이렇게 말하는 아내가 진심으로 나의 부모님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아내가 고마웠다.


임신 후 맞이한 우리의 첫 명절은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갔다. 당연히 찾아가겠다고 말하는 우리에게 양가 어르신들은 모두 손사래를 치며 오지 말라 하셨다. 처가에서는 특히 처남과 장인어른이 코로나에 걸리신 것도 한몫을 했다. 자가격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굳이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추석 명절 나흘 내내 단 둘이 시간을 보냈다. 마치 평범한 주말처럼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또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명절 기간 동안 딱 하루 장을 보러 나간 것 외에는 바깥출입도 전혀 없었다. 이보다 더 게으르고 늘어질 수 있을까 싶은, 그런 명절이었다.


아내의 입덧은 조금 나아졌을 뿐 여전히 아내를 괴롭혔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런 주말 같은 명절이 필요했던 듯하다. 우리의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께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했다는 일종의 부채감이었지, 사실 대단히 아내의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추석을 나면서 우리 꼬물이는 13주 차에 접어들었다. 아내의 입덧은 전보다 증상이 조금 나아졌을 뿐 여전히 아내를 괴롭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이따금 등을 쓸어내려주거나 품에 안고 어깨를 토닥여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그나마 아내의 기분을 조금 낫게 만들어주는 듯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아내는 입덧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양가 부모님의 배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명절 기간 내내 한 쌍의 나무늘보가 되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게으름을 누렸다. 아무 데도 가지 않으니 태어날 아이 방을 만들기 위해 가구를 옮기고 버릴 짐을 추리겠다던 목표도 추석기간이 시작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그저 먹고, 자고, 뒹굴었을 뿐. 그런데도 아내와 나는 끝없는 피로감에 휩싸였고, 그래서 나흘 내내 멍한 정신 속에서 먹고 자고 깨기를 반복했다.


다음 해 추석의 달라진 모습을 상상한다.


너무 별 것 없이 지나가버린 우리의 임신 후 첫 명절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추석. 그리고, 단 둘이 보낼 수 있는 소중한 휴가를 낭비해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후회가 남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는 다가올 다음 명절을, 또 그다음 명절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설날이 되었을 때 아내는 아마 출산을 두 달 앞둔 만삭에 가까운 임산부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내는 무거운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며 이곳저곳 쑤시고 뭉치는 몸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아내의 곁을 지키겠지. 그리고 그다음 추석이 되면, 우리는 이제 막 기어 다니고 혼자 앉기 시작한 아이를 품에 안고 양가 부모님을 뵈러 갈 것이다. 그때는 힘들고 피곤할 테니 오지 말라 하시는 일이 없겠지. 새로 찾아온 눈처럼 희고 깨끗한 아이가 우리의 부모님을 홀릴 것을 안다. 우리는 뒷전으로 밀리고, 우리의 아이가 온 집안의 관심을 차지하며 웃음을 줄 것이, 마치 선명한 사진처럼 그려졌다.


단 둘이 보내는 우리의 명절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너무도 별것 없어서 허탈했던 추석. 어쩌면 너무도 후회하게 될 우리의 마지막 추석. 하지만 어쩌면 반드시 필요했을 휴식이 너무도 달콤했던 추석.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가올 변화를 차분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준, 고마운 명절의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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