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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Aug 23. 2020

[Review] 책, 체리

 마음 속 깊은 어두움을 보는 시간



 장마가 끝나고 최근에 폭염이 다시 시작되면서 나는 비타민을 보충하듯 체리를 사 먹었다. 때마침 체리를 신나게 먹던 시기에 이 책을 받았다. '체리'라는 제목을 보면 내가 먹은 여름 과일이 떠오르겠지만 이 책은 과일처럼 달콤하고 상큼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어둡고 불안정한 상황과 마음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내내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어두울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아....'라는 반응이 저절로 나왔다. 그만큼 주인공이 경험했던 사건은 극심한 트라우마였고 주인공의 삶을 흔들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라크 파병에 참여 전 주인공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학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고 마약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없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삶을 살아가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라크 파병에서 돌아온 후 마약에 더욱더 빠져나올 수 없게 되고 은행 강도가 된다. 파병 후의 삶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적인 외상이 큰 주인공을 보면서 그것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상황을 내버려 두고 고통에 시달리며 결국 마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불현듯 외가 친척들이 생각났다. 내가 직접 뵌 분은 없지만,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전쟁에 참여 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으셨다는 친척,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충격으로 쓰러지셨던 친척이 있었다. 전쟁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을 떠올리며 나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외가 친척들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받으셨던 분들도 참 많았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을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치료는 없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고 주인공 역시 치료를 받을 수 있던 상황이 아니라 마약에 의존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p.304

약에 취한 젊은이로 사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세상에 있을까.




 계속해서 파멸해가는 주인공, 자신을 쓰레기라고 지칭하는 주인공의 내면에는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었다. 그저 약에 취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내가 그동안 살면서 읽은 책 중에는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던 책도 있었다. 하지만 책들 대부분이 어두운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상황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체리'도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저 주인공의 삶이 끝없이 반복되는 우울감과 고통을 보여준다. 처음에 이 책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문득 내가 생각하고 희망하는 것이 100% 정답이 아니듯 이 책도 다른 상황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현실도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고 나는 이런 현실은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희망차고 밝고 긍정적인 게 좋다고만 생각하고 어둡고 무거운 다른 현실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서 나 스스로가 편협하게 느껴졌다.  


 영화가 개봉하면 나는 보러 갈 것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끝나고 나서까지 아마 마음이 무거울 테지만 이런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내 관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게 할 영화이기 때문이다. 매번 비슷한 장르와 비슷한 내용의 책만 접한 사람들에게 색다른 '체리'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도서 정보]

 

제목: 체리 (원제: CHERRY)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니코 워커(Nico Walker)


옮긴이: 정윤희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20년 7월 27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432쪽


정가: 14,800원


ISBN: 979-11-90234-07-8 03840 / CIP제어번호: CIP2020029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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