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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Nov 13. 2022

[Review] 담백한 시집, '흉터 쿠키'


시(詩). 


 나에게 시는 책을 읽을 때 선뜻 손이 안 가는 분야이다. 소설처럼 긴 문장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 간결 하고 함축적이기에 더 알쏭달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늘 다양한 장르의 책을 접하고 싶은 나에게 이번 시집 '흉터 쿠키'는 자연스럽게 시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책을 받고 읽어볼 때 솔직하게 말하면 큰일 났다 싶었다.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문장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글을 읽을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어서 '나 이거 어떻게 읽고 글을 쓰지?'. /'역시 나는 시는 못 읽나 봐.'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와 같은 정신없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덮을 수는 없었기에 몇 번을 곱씹고 읽고 또 읽다 보니 문장들이 내 눈에 익숙해졌고 놀라움을 느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지?'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글자들이 마치 찰흙처럼 요리조리 뭉치고 자르고 만들어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것처럼 시가 되는구나를 생각했다. 참 신기했다. 어떻게 문장이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나도 같은 언어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내가 쓰는 문장과는 차원이 달랐고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p.38 제목 '슈슈' 中.

넌 또 울지

물의 끝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물의 끝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하염없이 우는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이 시인의 시구나.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p.69 제목 '비가 물의 결심이라면' 中.

더 투명한 이야기를 지어야지

가지는 동시에 놓아주고 싶으니까

순간을 매듭짓고 풀어내는 비처럼 


시는 참 신기하다. 내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문장이 만들어지고 그 문장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바라보게 된다. 이 언어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늘 어렵고 흥미 없다고 생각했던 시를 이번 책을 통해 언어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시를 읽고 작가의 에세이를 읽을 때의 내 마음은 조금 달랐다. 시는 몇 번을 읽고 곱씹고 다시 또 읽으며 이 문장이 내 마음에 들어오길 애썼다면 에세이는 읽으면서 눈물이 고였다. 이 시를 쓰기 위해 온전히 고군분투했을 작가의 마음이 떠올라서였다. 독자가 신기해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쓰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얼마나 많은 마음을 쏟아부었을까?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눈물이 났다. 나 역시 내가 가는 길이 두렵고 무섭고 외로운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떤 날은 무섭다. 그냥 무서운 것도 아니고 너무 무서운 순간도 있다. 그 두려움이 내 마음속 깊이 차곡차곡 쌓여서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나는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작가가 빛이 없어도, 빛에 비켜서 있어도, 때로는 빛이 없어도 시를 계속 쓰길 응원한다. 어떤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지 궁금하다. 시에 대해 흥미가 없는 내가 이렇게 마음 안에 들어오는 시를 읽게 되었으니 앞으로 내 마음에 어떤 시가 들어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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