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함에 취한 쓰라림
그간의 타임라인
8. 26(금) - 회사 건강검진, 췌장 근처 종양 첫 발견
8. 26(금) - 당일 오후 지역 2차 대학병원 CT 촬영
8. 29(월) - CT판독 결과 위와 췌장 사이 6-7cm 종양 추정. 외과적 수술 필요 소견
8. 31(수) - 병원투어 시작, B병원 소화기외과 초진
9. 5(월) - S병원 암센터 초진
9. 6(화) - A병원 간담췌외과 초진
10. 19(수) - A병원 입원 예약
10. 21(금) - 수술 예약
Ep 9. 반가워 아산!
(치료를 받게 될 병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아 공개하겠습니다.
병원이름이 주는 위압감과 규모를 표현하고 싶기에.... )
현대 아산병원
가장 예약을 잡기 어려웠던 병원이다.
그래도 아는 후배 한 명이 있어 그나마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인연은 한 달 뒤 병원을 퇴사를 했다.
퇴사하기 전 부탁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아산병원은 한강의 남쪽 송파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5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한강이 보이는 곳에 살고 싶은 우리 부부,
다른 이유지만 올림픽대로를 지나며 한강이 보이는 건물에 도착하니 기분이 생경했다.
오가는 차량들로 병원 진출입로는 혼돈의 카오스에,
주차장은 지하 4층까지 내려가야 겨우 주차할 자리가 보인다.
그리고 무슨 주차장은 이렇게 넓은지,
건물은 동관, 서관으로 나뉘어 있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시골쥐가 서울쥐 동네에 놀러 온 기분이다.
그런데 서울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나 보다.
아, 아니지 우리처럼 서울로 먼 길 떠나 온 분들이 대부분이겠구나.
실낱같은 희망의 끈이라도 잡아보려고,
주차를 하고 간담췌외과를 찾아 또 다른 투어를 시작했다.
교수님이 계신 진료실을 가려면 지상 1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에 치여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지하 1층까지 올라왔는데
우와, 병원에 식당이 이렇게나 많고, 마트에선 안 파는 게 없다.
동네 대형마트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그렇게 대형마트로 향하는 쇼핑의 욕구를 누르고 다시 발걸음을 서둘러 서관 1층으로 향해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 1층에 다다른 순간 병원 메인 로비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백화점 로비 같은 회전문이 돌아가고,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병원으로 들어온다.
잠시 로비의 황홀함에 취해있던 중, 시야에 또 다른 장면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아이가 온몸에 쇳덩이와 기계를 주렁주렁 달고 베드에 누워 이동을 하고,
다리 한쪽이 벌겋게 녹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성인 남성이 휠체어에 실려 어딘가로 급하게 간다.
저마다의 이유로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
세상에는 정말 아픈 사람들이 많다.
마음 한 구석이 조각난 것처럼 아려오기 시작했다.
황홀함에 취한 쓰라림
서울 한복판에 한강이 보이는 곳에 왔다고 남편 몸의 종양 덩어리가 녹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남편도 환자복을 입게 될 것이고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아득함의 기운에
점점 목구멍까지 쓰라려 온다.
쓰라림을 머금은 채로 다시 우리의 목적지를 찾아 떠난다.
30분 정도 헤매다 간담췌외과를 찾아서 등록 접수를 하고 남편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Ep 10. 9번 진료실
우리가 간 곳은 외과 진료실이다.
다 같이 외과를 찾은 사람들이 삭막한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내 이름이 언제쯤 올라가나 기다린다.
예약을 하고 왔지만 대기는 기본이다.
같은 시간대에 예약이 몇 명이 되어있는 데다가,
교수님께서 앞선 환자와의 말씀이 길어지시면 대기시간은 뒤로 점점 늘어난다.
내가 그동안 뭔가를 위해 이렇게 기다려본 적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와 있는 사람들.
그렇지만 보통 외과를 찾는 사람들은 뭔가 외과적 수술이 필요해서 오신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 몸 안에 있는 정체 모르는 그놈을 알아내기 위해서..
내 몸인데 내가 몰라서 전문가를 찾아 떠나왔다.
우리의 전문가 교수님께서 드디어 남편을 불러주셨다.
안녕하세요, 한 마디 인사 뒤, 그동안의 기록과 영상을 다 살펴보신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교수님이 무어라 말씀하실까 긴장의 순간이다.
미리 예상은 하고 왔지만 그래도 긴장은 어쩔 수 없다.
남편 뒤에 서서 보호자의 자격으로 내가 서 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보호자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남편도 처음이겠지, 엄마가 아닌 아내가 보호자로 옆에 와 있는 건....
40대로 보이시는 젊은 교수님께서 아주 반듯하고 침착하게 입을 떼신다.
‘상당히 사이즈가 크네요. 그래도 복강경 수술로 해볼게요.
그리고 양성 종양일 수도 있고, 암덩어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건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어요.
일단 원발 부위가 어디인지를 모르겠습니다.
ct촬영으로 봤을 땐 췌장이 원발일 확률이 높아 보여요. 그럼 췌장을 절제할 겁니다.
만일 위가 원발부위면 췌장은 건들지 않고, 위만 일부 절제할 거예요.
수술하실 생각이시면 밖에 간호사분과 일정 잡고 가세요.
수술날 뵙겠습니다.‘
우리는 90도로 인사를 드리고 대기실로 나왔다.
간호사분 앞에서 또다시 이름이 불러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나는 최종 결정을 하였다.
그래 우리 여기서 수술하자.
만약에 췌장에 문제가 있더라도, 가장 유명한 곳에서 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우리는 입원일과 수술일을 예약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