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을 선택해야 할까?
Ep 6. 큰 병원으로의 치열한 원서접수
회사 건강검진 날 췌장 부근에서 큰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곧바로 동네 큰 내과병원에 가서 같은 의견의 소견서를 받아,
그날 오후 친한 간호학과 동기가 있는 2차 병원에 가서 CT를 찍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GIST암으로 추정되는 종양이 위와 췌장 사이에 보인다는 판독결과를 들었다.
간호사 친구는 교수님 외래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이 판독결과를 가지고 가능한 3차 병원 예약이라도 우선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해 주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주변 모든 이들과의 인연이 얽히고 성겨 우주를 만든다.
나의 작은 우주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어둠이 자욱해질 무렵
또 다른 한 곳에서는 별이 생겨나고 빛이 피어나고 있었다.
동기의 조언에 고민을 할 여유도 없이 다시 한번 더 간호학과 시절의 인연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국내 빅 5 병원, 집에서의 적정한 거리 그리고 부탁을 해도 불편하지 않은 가까운 인연들로
생각나는 동기, 후배들에게 곧바로 연락을 했다.
“지금 오빠가 이런 상황인데, 혹시 빠르게 외래 예약이 좀 가능할까?”
“언니 일단 오빠 주민번호, 핸드폰 번호만 줘봐.”
그리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인연들은 1주일 내로 예약 날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선 아무도 근황을 묻지도 않고, 흔한 위로조차 건네지 않았다.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인연들은 그게 나를 위한 가장 큰 위로였던 것이다.
아무 말하지 않고 바로 외래 예약에 도움을 준 모든 인연들,
이 공간을 빌어 다시 한번 더 정말 감사합니다.
Ep 7. 병원 투어
치열했던 주말의 병원 원서접수(?)를 마치고, 이제 남은 병원 투어 일정을 따라다녀야 한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CT촬영을 했던 2차 병원 외과 교수님을 만나 뵙고 소견서를 부탁드렸다.
교수님은 큰 병원에서 수술받는 것이 좋겠다며
어느 병원을 알아봤냐고까지 물어보시며 직접 그 병원으로까지 컨택을 해주시고 소견서를 작성해 주셨다.
힘내라는 위로와 별 일 아닐 거라는 토닥임도 함께...
아직 어린 30대 부부가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받은 소견서를 가지고, 참전했던 큰 병원의 원서(?)들에 소견서를 첨부하였다.
7cm 사이즈 종양이 있으니 외과적 수술을 요한다고 떡하니 적혀 있으니 막는 곳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3차 병원 프리패스 원서 접수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병원 투어 일정을 앞두고 우리 가족에게는 코로나가 찾아왔다.
Ep 8. 선택의 연속
- 첫 번째 선택 : 나 vs 남편
둘째가 기관에서 옮아 온 코로나.
그동안 한 번을 안 걸렸었던 코로나가 하필 남편의 병원 투어를 앞두고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어떻게 힘들게 예약한 병원들인데, 코로나에 걸려 외래를 못 보고 예약을 미룰 수는 없었다.
나는 내 몸과 남편 중에 당연하게도 남편을 선택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릴 테니 여보는 우리 엄마아빠 집으로 가서 지내.”
남편을 바로 처갓댁으로 내쫓고, 약 2주간의 독박육아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해열제나 열패치라도 사서 우편함에 넣어두는 남편이 있으니
없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다.
남편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야 처음 해보았다.
그렇게도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
그렇지만 다행히 나에게도 곧바로 코로나가 찾아와
잡생각은 할 여유도 없이, 애들 챙기고 내 몸 챙기느라 그렇게 2주의 시간이 지났다.
역시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
남편은 2주 간 처갓댁에서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면서 병원 투어를 다녔고,
병원 투어를 마칠 때쯤 그에게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외래 진료를 다 보고 수술 일정까지 받은 뒤에 찾아와 준 바이러스가 어찌나 고맙던지,
덕분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한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 두 번째 선택 : 어느 병원을 선택해야 할까?
[1. B대학병원]
수도권에서 꽤 큰 대학병원의 분원이다.
외과가 세분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소화기외과 하나로 과목이 묶여 교수님이 전체적으로 다 봐주시고 계셨다.
호탕하셨던 젊은 교수님은 ‘나 수술 잘해요~ 금방 제거해 줄게요.’ 라며 곧바로 수술날짜를 잡아주셨다.
외래, 수술 일정이 빠른 시일 내로 예약이 가능했고,
특히나 내시경, ct 촬영이 빠르게 가능해서 이곳에서 찍은 영상 CD를 가지고 타 병원에서 데이터를 등록하여 접수가 가능했다.
처음 찾아뵌 3차 병원 교수님께서 편하게 말씀해 주시니 가슴에 놓여있던 큰 바위가 약간은 깎이는 기분이 들었다.
[2. S병원 암센터]
남편을 암센터로 예약해 주던 국내 최고의 병원.
하필 코로나가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때라 남편이 홀로 암센터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곳의 교수님께서도 이건 어려운 수술이 아니니 일단 수술은 집 근처 B병원에서 하고
그 다음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다시 찾아오라며 쿨하게 보내주셨다고 한다.
남편은 더도 물어보지도 않고 감사합니다! 하고 2분 만에 진료실을 나왔다고 한다.
가슴의 바윗덩어리가 이제 잔잔한 돌로 쪼개지는 느낌이다.
[3. A병원 간담췌외과]
국내 최고의 췌장 전문 외과.
외과적 수술은 이곳을 따라오는 병원이 없다고들 한다.
특히 GIST암의 권위자이신 교수님 또한 이곳 소속이시다.
가장 외래 예약도 잡기 어려웠고, 수술 일정 또한 빨라야 한 달 뒤에나 가능했다.
우리가 만난 간담췌외과 교수님은 차분하셨지만 오히려 보수적으로 보시고 췌장 절제와 개복수술의 가능성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다시 가슴의 바윗돌이 크게 뭉쳐졌다.
B병원과 A병원을 꽤 오랜 시간 고민 했던 우리는
결국 A병원으로 선택하였다.
뭐든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가장 최악의 상황까지를 고려하며 대비하는 우리 부부.
교수님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가장 최악을 말씀해 주시는 교수님을 선택하였다.
최악이 아니라면 차악이겠지.
그럼 다 괜찮은 거야.
그렇게 예정된 수술일이 한 달여 정도 남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