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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여사 Dec 09. 2024

#1. 발견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Ep 1. 2022년 8월의 어느 날


청춘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20대 초반에 만나 5년여의 연애를 하고,

요즘답지 않은 이른 시기에 결혼을 한지도 만 5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토끼 같은 12개월 터울 연년생 아이 둘을 낳고

지극히 평범한 매일을 보내던 우리 부부.


같은 대학에서 같은 과를 졸업하고 어쩌다 보니 같은 회사까지 다니고 있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 될 때까지 10년을 넘게 함께 했으니 얼마나 닮아있었을까.


이 무렵 나는 잠시 육아를 위해 휴직 중이었고, 남편은 교대근무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1년마다 의무적으로 회사 차원에서 받아야 했던 건강검진.

우리는 그것을 ‘신체검사’라고 부르곤 했다.

대체 이렇게 무의미한 검진을 해줄 거면서 뭐 하러 시간 아깝게 하루를 허비하느냐고 비아냥대는 표현이다.

그마저도 2022년에는 교대근무를 하고 있던 남편의 근무 스케줄이 따라주지 않아

불시의 어느 날, 출장 건강검진을 나온 어느 선생님께 회사 구석 간이 사무실에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오전 중으로 남편 검진이 끝날 예정이었으니,

끝나면 같이 점심으로 빅맥을 먹을 생각에 잔뜩 신이 났다.

그러던 나를 깨우듯 걸려온 전화 한 통.


“여보, 췌장에 뭐가 보인대. 얼른 큰 병원 가서 다시 확인해보라는데? “

“뭐? 췌장?”


그 이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시각 오전 11시.

일단 남편 보고 집으로 당장 오라고 했다.




Ep 2.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췌장... 췌장... 췌장이라는 두 글자에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사람들

‘스티브 잡스, 유상철 감독, 회사에서 알고 지냈던 본부장님...’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지금 나와 함께 숨을 쉬는 이 세상에 없다.


순간적으로 까만 구름이 머릿속에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한없이 아득했고 아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일단 검사를 해봐야 한다.

잠시 생각을 접어서 뇌의 주름 어딘가에 꾸겨넣고, 다시 나는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이 집으로 오자마자,

우리는 함께 소견서를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동네 큰 병원으로 일단 향했다.

큰 2차 병원에 가려면 동네병원의 소견서라도 우선 필요했다.

그래야 빠른 접수가 가능하다.


동네에서 곧바로 또다시 초음파를 찍어보는 남편.

그리고 그곳의 젊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동일했다.


“얼른 소견서 써 드릴게요. 바로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다시 머리가 아득해져 왔다.

시야도 뿌예진다.


우리의 평범했던 하루가 특별해진다.

빅맥을 먹기로 했던 평범했던 우리의 낮이 깊은 어둠 속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남편을 바라보고 손을 꽉 잡았다.

‘아니야, 우리 괜찮아.’

10년을 넘게 서로 바라보고 살아왔으니,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괜찮을 거라는 막연함을 가지고 더 큰 병원으로 향했다.


회사 사무실 구석에서 간이로 검사를 받았다가,

신도시 메인 상가 대형건물의 한 층을 차지하는 규모의 병원을 찾았더니,

이번에는 본관에 별관까지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라 한다.


우리는 한 장 짜리 소견서를 봉투에 고이 담아 다시 차를 몰고 움직였다.

남편이 여느 때처럼 운전대를 잡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남편의 남은 한 손을 꼭 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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