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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Apr 25. 2021

꿈에 놀라 꿈이 변한다.

꿈에 놀라 꿈이 변한다.       

              

아이가 부르짖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가 울면서 아빠를 찾는 꿈이었다. 내가 어디 있었을까? 왜 나를 찾으며 울고 있었지? 온몸이 땀에 젖어있다. 얼른 아이의 방에 가본다. 더운지 발을 이불 밖으로 내놓고 자는 아이의 모습에 꿈임을 자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걱정을 끄지 않고 잠이 들었나 보다.     


작업실로 가 컴퓨터를 켠다. 글을 쓰려 작업 홀더를 꺼내 놓고 또 망설여진다. 뭘 쓰려고 하는지…….   

             

벌써 몇 개월 전부터 황금 같은 새벽 시간에 글을 쓰려는 나와 글을 쓰는 내가 싸우는 중이다. 쓰기 전에는 쓰고 싶은 게 많았는데 쓰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게 글로 변하는 순간 이상해진다.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묘사해서 편하게 공감이 가는 글을 생각하면서도 중간중간 힘들었던 나를 위로받고 싶어 한다. 게다가 과거 회상에 부풀린 감정이 붙고 변명이 붙는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족한 지식과 이기심까지 보인다. 그러니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자꾸 감정이 개입한다. 글을 쓰는 내가 자꾸 싫어진다. 그렇다고 멈출 순 없다. 

         

옛 선인은 예순 살이 되면 네 가지를 끊을 때라고 했다. 확실치도 않은 일을 자의적으로 단정하는 일, 자기 생각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일. 자기만 옳다는 마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아집. 나한테 너무 들어맞는 이야기 같았다. 다시 마음을 자꾸 들여다본다.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며 아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꿈을 꾸며 귀농했다. 그때는 내가 답인 줄 알았다. 많은 격려를 받았을 때도 그랬고, 농원에 방문객과 고객이 넘칠 때도 그랬다. 그 힘을 믿고 뭔가를 시작하려 할 때 정신없이 밀려드는 사고에 3년을 쉬게 되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아이의 아버지로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가장 확실히 알게 된 건 장애에 대한 무지고 사회적 편견이었다. 나 또한, 내 아이의 장애에 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절망했었고 불행한 미래를 예단했었다. 그 배경에는 편견이 있었다. 검증되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그 사람의 삶을 예단하는 것은 마땅히 잘못된 일이다. 사람의 능력을 예단하기 위해 하는 여러 검사와 시험, 더 나은 능력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심. 이것이 문제였다. 잘못된 앎은 삶을 망가뜨린다.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 했다.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정의는 당연히 완벽하지 않았다. 불완전한 전제에서 발생하는 상상력은 너무 부풀려있다. 전형적인 계급이다. 인적자원과 그 자원을 사용하는 자.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생긴 잘못된 문화다. 뭐든지 등급을 매기면서 인간은 자신에게 등급을 매긴다. 천재, 평범한 사람 그리고 학습장애. 이 등급이 마치 천재는 부리며 살고, 보통 사람은 부림을 당하고 살며, 장애는 부리지도 못할 인간이라는 명시적인 사회적 묵계라도 있다는 건가? 천재는 행복하게 살고 보통 사람은 행복을 희망하며 살고, 장애는 행복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가?   


        

무엇보다 나의 편견이 후회스러웠다. 내가 처음 공동체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의 원천이 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의 장애를 병리적 과학적 측면에서만 조금 알면서 미래를 예단했었다. 누군가가 돌봐줘야 하는 삶으로 규정하고 악인이 득실거리는 사회에서는 불행한 삶을 살 거라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유롭게 안전하게 사는 측면을 부각한 공동체를 기획했었다.    

            

독립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평생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 그 모든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 공동체다. 존재가치에 조건이 없어야 한다. 어차피 사람은 돌봄을 받으며 자라고 돌봄을 하며 살고 늙어서는 또 돌봄을 받으며 여생을 보낸다. 독립을 생각하는 부분은 사람의 생애 중 일부일 뿐이다. 그 일부 또한 정확히 말하면 함께 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서로 돌봐가면서 살아간다. 부분만 보면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었다. 사회의 선한 네트워크를 생각지 않은 오류와 이 아이들의 능력에 관한 편견이 전제된 계획이었다.   

            

갑자기 내 아이에 대해 미안함이 몰려든다. 내가 장애라는 편견에 자유로웠다면 하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든다. 모두 나와 같을 것이다. 애초에 ‘장애’라는 편견만 없었더라면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이다. 다시 장애라는 사회적 표현이 없는 공동체로 생각이 돌아간다.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마을을 만든다면, 그 마을이 모델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면….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동의 꿈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찾은 정보들을 공유해서 희망을 만들고 희망을 품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야 한다. 공동체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다.        

   

그리고 이미 공동체는 있었다. 편견과 욕심이라는 사회적 장애가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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