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자연 햇살 농원

3부 세상을 그려보다

by 상욱애비

착한 경쟁력 만들기



내가 생각하는 착한 먹거리의 기본인 제초제와 살충제를 안 쓰고 화학비료를 안 쓰고 하는 농사는 쉽지 않았다. 농사 전문가라고 생각했던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해 봤지만, 모두 유기농 농사는 어렵다고 고개를 흔들어 만류했다. 혼자서 좌충우돌 시작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먼저 건강하고 풍부한 유기물이 함유된 땅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 목적으로 매일 일기 쓰듯이 인근 산의 나뭇잎들이 오랫동안 발효된 부엽토를 몇 자루씩 가져와 땅에 부었고, 아내가 정기적으로 침을 맞던 한의원에서 약 찌꺼기를 매주 가져왔다. 한약 찌꺼기는 각종 발효균과 함께 플라스틱 통에 넣어 발효를 시켰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몇 달이 지나 겨울 무렵에는 밭에 시커먼 부엽토가 쌓이기 시작했고 매주 가져온 한약 찌꺼기 발효한 것도 10여 통이 훌쩍 넘었다. 충분히 발효된 것들은 가을에 미리 밭에 넣어주고 밭을 갈아엎어 다음 해 농사 준비를 했다.




직접 몸으로 하는 농사일은 힘이 많이 들었다. 회사를 운영하며 남들 시키기에 익숙해 있던 나는 직접 하는 육체적 노동에 매일 저녁이면 녹초가 되었다. 귀농하기 전의 지난 몇 년간의 내가 살아온 나날은 지옥이었다. 힘들어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답 없는 고민을 했었다. 결론이 불행일 수밖에 없는 미래로 향하는 매일이 고통스러웠고, 앞이 보이지 않던 하루살이 같은 삶은 무감각하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귀농을 하고 농원을 준비하면서 나는 하루하루 육체가 녹아내리듯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너무 행복했다. 집에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린다. 나는 매일같이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했다. 하루하루 쌓이는 부엽토와 퇴비들은 내 서투르지만 꾸준한 노동의 가치를 증명해 주었다. 아내는 자신이 도와주지 못한다고 미안해했다. 대신에 내가 나가는 곳마다 꼭 아이를 따라다니게 했다. 아이의 노동력은 생각보다 많이 도움이 되었다. 아이는 쌓이는 부엽토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한다.


“아빠, 우리 부자다.”


긍정의 힘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열어주었다. 그렇게 생산의 기본인 땅은 만들어져 갔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판매를 시작해서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유기농 먹거리에 관심이 있는 층을 공략해 고객을 만들어야 했다. 또 그들을 관리해서 지속 가능한 우리만의 고객을 만들어 보기로 방향을 잡았다. 고민을 많이 했던 초기 고객 모집은 지인들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처음 하는 농원 사업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연습 상대가 되어 주었다. 이들과 1년을 함께하면서 재배 농작물을 정했고, 재배 농법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신선한 농산물을 보내기 위해 배송 시간이 빠른 택배 형식으로 물건을 보내 주었고, 신선도를 유지하고 파손 없이 안전하게 보내는 포장방법 등을 만들었다. 농산물이 생산되지 않는 농한기에 보내기 위한 저장 방법도 배우고 저장시설을 만들었다. 토마토와 방사 유정란과 김치를 기본으로 한 몇 가지 주력상품을 중심으로 여기 정선의 대표적인 더덕과 곤드레 등 산나물을 매주 보내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만들었다. 고객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택배를 보낼 때마다 농산물 재배방식과 요리법, 보관법, 잘 먹는 법 등을 적어 보내며 소통을 시도했다. 이렇게 농원 직거래 시스템의 기초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좌충우돌하며 서투르게 시작한 농원은 나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구상하게 해 주었다. 농원을 운영하며 유기농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고, 막연하던 내 아이에 대한 미래도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다. ‘장애’라는 잘못된 설정으로 생긴 편견이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농원이 잘 발전하면 마을기업으로까지 확산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도 가졌다. ‘이런 형식의 농원을 마을과 함께한다면’ 희망의 공동체 ‘캠프아라리’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낙오자는 과거를 자랑하고 진취자는 미래를 구상한다.’ 모교인 부산의 고등학교에 걸려있던 문구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처음인 미래를 구상해 보기로 했다.




유기농 인증


농원을 처음 계획할 때 나는 유기농 인증을 굳이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 유기 농산물을 사 먹으면서도 인증에 대해 큰 신뢰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주장하는 농사법은 자연농법이기에 유기농법과도 조금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처음 시작할 때는 그냥 우리 가족의 먹거리 정도의 텃밭 농사로만 생각하기도 해서였다. 생각지도 않게 많이 수확되는 농산물에 판매가 시작되었고 농원을 공동체의 수익모델의 방향으로 잡았을 때 유기농 인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앞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의 수익원으로 청정 농산물 재배와 그 농산물로 가공을 하고 또 ‘착한 먹거리 식당’으로 프랜차이즈까지 구상했을 때 유기농 인증이라는 공인된 검증이 필수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유기 농산물’, ‘유기 전환기 농산물’, ‘무농약 농산물’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해서 인증하고 있다. 예전에는 ‘저 농약 농산물’도 있었으나 이 제도는 폐지되고 지금은 이렇게 3가지로 나뉘어 있다. 이 중 농약과 화학비료 등을 쓰지 않는 농산물을 유기농 농산물이라고 한다. 유기농 농산물을 인증받기 위해서는 먼저, 농지를 유기농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3년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정식으로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이 유기농 인증을 받은 땅에서 자라나는 농작물이 유기농 농산물이다. 유기농 인증을 받기 위해, 유기농 인정을 받은 농지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3년간 재배한 농산물을 ‘유기 전환기 농산물’이라고 부른다. 무농약 농산물은 농약은 전혀 쓰지 않고 화학비료는 허용치 이내로 사용해서 키운 농산물을 말한다. 여기서 농약이란 작물 재배에 해가 되는 잡초를 죽이기 위한 제초제와 각종 해충을 박멸하는 살충제 등의 독약이다.




처음 단순한 생각에 토양검증과 작물에 대한 검사를 받으면 되리라 생각을 했다. 너무 유기농 인증에 관한 제도를 쉽게 봤다. 제출서류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 신청서, 인증품 생산 계획서, 영농일지(영농 관련 자료), 토양관리 시비 처방서(농업 기술센터 의뢰), 토양 중금속 검사 (농업 기술센터 의뢰), 해당 필지 토지대장, 해당 필지 지적도, 수질검사 성적서(강원도 보건환경연구원) 등이 들어가고 그 내용은 품목별 재배 작기의 형태, 토양관리계획, 비배관리 계획, 병해충 및 잡초방제 대책, 필지별 재배 내역(재배면적과 생산량에 대한 계획), 품목별 재배 작기 등을 기록해야 했다. 제출서류가 너무 복잡했고 의미가 없는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들었다.




신청서와 토지대장 지적도 등은 이해가 갔으나 나머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기농 인증이 신고만 하는 것이라면 필요한 서류일 수도 있지만, 인증제라면 농산물의 성분 검증으로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유기농(친환경) 인증에 왜 그런 서류들이 필요한지 정말 모르겠다. 왜 내가 농사를 어떤 방법으로 지었는지? 얼마나 생산하고자 하는지? 작년에 얼마를 생산해 얼마를 팔았는지? 등이 유기농 인증과 무슨 상관인가? 유기농 생산 농가마다 다 제각기 자기만의 농법이 있고 자기들만의 판매방식이 있는데 그걸 왜 제출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와서 토양 검사하고, 수시로 와서 생산물 채취해서 성분 검사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매년 담당 공무원에게 왜 굳이 생산자가 하지 않아도 되는 서류를 하게 하느냐고 이야기하기도 지친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자신들의 업무가 너무 과중해서 매번 검사하러 갈 시간이 부족하단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모든 농민에 대한 지원정책은 농민을 슈퍼맨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농업경영을 가르쳐서 농민을 경영인으로 만들려고 하고, 모든 작물의 재배법을 익혀 모든 생산을 다 할 수 있게 하고, 포장 가공도 가르치고, 판매 유통도 가르치고, 마케팅도 가르치고 각종 장비 다루는 법도 가르치고 등등 이건 해도 너무했다 싶었다.




소농들의 대부분이 개인 또는 가족 사업이다. 물론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두 해내야 한다. 그런데 이곳 농촌의 상황은 대부분 농민이 자식들은 도시로 내보내고 남아있는 늙은 노부부거나 노인 한 명이 남아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생업으로 하고 있다. 그들이 농업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학력 또한 초등학교나 중졸이 대부분이다. 농민 지원정책은 이들을 가르쳐서 조직과 과학으로 중무장한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하라고 한다. 그걸 강‚소농(강한 작은 농가) 정책이라 한다. 농민에게 생산 잘하고, 마케팅 잘하고, 사진도 잘 찍어 SNS 잘 활용하고, 고객관리도 잘하고, 경영을 잘하라 하면서 쥐꼬리만큼의 지원금을 준다고 하고 있다. 유기농 인증도 마찬가지다. 인증을 받기 위해 자신만의 농법을, 판매방식을, 경영의 목표를 도시의 기업으로 따지면 기업의 비밀이나 자신들만의 민감한 비법을 전부 공개해야 한다.




불합리하다고 느껴도 결국은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인증 절차와 방법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방문과 형식에 맞는 수정을 하고 인증서를 받았을 때 하나의 큰 고비를 넘긴 것처럼 뿌듯했다. 토마토, 찰옥수수, 배추, 무, 부추, 양배추, 열무, 알타리무, 풋고추, 곤드레, 건 고추, 명이나물, 곰취, 가지, 오이, 감자, 애호박 등 20여 가지 품목을 인증 취득했고 농원은 공식 유기농 농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