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AIR

3부 세상을 그리다.

by 상욱애비

UNFAIR


역사의 한 장에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인간이 자기들의 혈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별하여 학살한 인류 최고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전조는 나치의 장애인에 대한 학살로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치는 장애인들을 학살하기 위한 명분으로 사회의 합리성, 효율성, 생산성을 내세웠다. 노동 생산성이 없는 자들, 전시인데도 참전할 수 없는 자들, 그래서 국민의 세금만 축내는 자들, 나라와 사회의 발전에 절대 도움이 될 수 없는 생명을 제거해서 마치 기업의 구조조정을 하듯이 국가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들은 장애인의 평생을 돌보는데 엄청난 소모적인 비용이 든다고 대국민 홍보를 했으며 ‘유전병 후손 예방법’을 제정하여 ‘단종’하기 시작했다. 장애가 있는 유아들은 그 장애를 이유로 죽음으로 내몰렸다. 중증 장애 유아들을 지정병원에 수용한 다음 버려뒀고 방치된 어린아이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 나갔다. 같은 인간임에도 ‘쓸모’라는 이기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구분해 제거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현재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이 나치의 논리와 다름이 무엇인가? 그때보다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사회에 합류하지 못하는 ‘존재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구분하여 격리하고 있다. 무차별 개인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에서 사람을 물질적인 기능과 효율성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기계적인 ‘쓸모’로만 구분한 결과이다. 사람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뒤 사람을 유전적 차이에 따라 구분하는 우생학적 세계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각성했고, 또 반성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생학은 오늘날의 세상에서 유전공학으로 탈바꿈하였고 그것을 근거로 분리하고, 멸시하고, 저주하는 등의 제노사이드는 아직 ‘ing’이다. 한 전직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낙태에 대해서는 반대인데, 불가피한 때도 있다.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인터뷰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사회의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을 대변하고 있는 발언이다.



장애에 대한 문제는 개인의 능력의 차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문제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 생기기까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왜곡된 고정관념일 것으로 생각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우리는 장애라는 다양성에 대해 이해할 건 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다양하고 복잡한 특성들을 가진 사람을 장애라는 부정적인 잣대로만 평가하고 모든 것에 우선한 주홍 글씨씩의 낙인은 위험한 것이다. ‘장애인’ 하면 모든 것에 ‘장해’가 된다는 이미지가 어느 사이에 고정관념이 되어있다.

사실 지금의 공장식 교육 방법과 능력 위주의 평가 방식은 많은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단순히 머리만 좋다고 세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지능이 높다고 사회의 발전 요인일까? 이 사회라는 공동체에 필요한 인간에 대한 평가로 지능이나 능력이 기준이 되는 게 맞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뛰어난 재능이 인류를 위협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 결론은 재능으로 인간의 적합도를 평가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장애 아이들이 바깥으로 드러난 낮은 지능지수와 약간의 다른 특징적인 외모와 불편한 몸 때문에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단점 때문에 이 아이들의 내면에 어떤 진실이 들어있는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다. 선별을 받아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이 나를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론 편하게 해 줬다. 지금의 장애에 대한 모든 것이 최소한 FAIR 한 것은 아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시작점을 알아야 한다. 원인과 이유를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 여기서부터 시작점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사람들과 해 보면 모두 원론적인 부분은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개선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입들을 모아 이야기한다. 특히 장애 아이의 부모들은 그냥 포기하고 쉽게 살자고, 시도해 봤자 상처만 더 입는다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한 세상 살아가자고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나도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 세상을 초월한 듯 오감과 칠 정을 끊고 살아 도를 닦아 본들, 부족한 아이의 미래를 포기하고 결론이 뻔한 내 아이의 삶을 모른 체하고 살아가는 내가 행복해지거나 도를 이룰 수 있을까? 아무리 자문해 봐도 그건 아니었다. 진실은 장애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의 문제다. 정말 UNFAIR 한 일이다.




비장애인 부모


누구에게나 2세는 미래고 보상이고 꿈이다. 나도 그랬다. 내가 못 가진 것을 아이는 갖게 하고 싶었고 내가 못 이룬 것을 아이에게 이루게 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기만 했던 것을 아이는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꿈은 아이의 장애 판정과 동시에 무너졌다. 희망했던 미래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아이의 존재만으로 불행했다. 부족한 내 인생의 대안이고 희망이었던 아이. 그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생기는 실망감의 크기는 완전히 내 삶을 지배했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이면서 비장애인이었고 아이의 미래를 판정하는 판정관이고 아이의 모든 걸 관장하는 절대자였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비겁하고 잔인하게 아이를 포기까지 생각했었다. 몇 년 여의 갈등 끝에 완전히 아버지로 돌아왔을 때 장애의 실체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 아이의 장애가 뭔지?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길래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지? 뭐가 문제인 줄 알아야 답을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또다시 ‘억울’이란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니 삶이 정상적이지 못했다. 아이는 장애가 있고 나는 편견과 왜곡된 부성애에 함몰된 비장애인 아버지였다. 참 묘한 갈등 속에 진실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이의 장애를 판정받고 처음 한 일이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을 만나 상담한 일이었다. 그들이 하는 현실적인 조언을 들으며 막연하게 세뇌되어있던 내 생각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잘못된 첫 단추처럼, 꼬여있는 내 마음이 그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전문가들이 어떤 말을 하던 그건 내가 듣기 원하는 말이 아니었다. 조기교육을 시작하면서 갈등은 더 해갔다. 어떤 목적으로 교육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타고난 지능이 떨어진 아이에게 뇌 발달 교육을 하면 지능이 얼마나 좋아지나? 결과를 상상하지 못하는 막연한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세상과 멀어지고 세상을 원망하고 아이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되었다. 이런 잘못된 교육의 여파는 실로 컸다. 아이는 부모도 세상도 친구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에 발달장애 아이들의 중복장애가 타고난 것보다 단절된 소통으로 인한 마음의 병이 더 큰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 아이의 주변에는 편견과 왜곡된 사랑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를 외길로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불행을 탓했고 신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아이가 처음 접하는 불평등과 편견은 가족, 특히 나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아이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내가 아이에게 가장 큰 편견의 벽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만약 내가 내 아이의 장애에 대한 정보가 많이 있었고 그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었다면, 막연한 자식에 대한 꿈이 아니라 내 아이의 조건에 맞는 미래를 구상할 수 있었다면, 주어진 아이의 조건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었다면’ 하고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로 잘못을 돌려 보지만 결과는 달라질 것이 없었다. 영웅전의 주인공들이나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그 어떤 무명 인도 아이 때는 똑같이 부모의 돌봄을 받았을 것이다. 사회적인 능력의 잠재력 유무 예단으로 사랑을 차등받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사는데 조금 다른 생각이 필요했다. 너무도 뻔한 결과에 손 묶여 끌려가기 싫었다. 살면서 매일 억울했다. 사람이 적은 산골로 귀농을 한 이유였다. 사람이 적어 사람의 관계가 소중한 곳, 서로에게 간섭이 덜 한 곳, 친구가 필요한 아이에게 자연의 모든 것이 친구가 되어 줄 만한 곳이라 생각한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틀에 박힌 주입식 학교 교육보다는 생활과 자연을 아이와 함께 체험할 수 있었다. 농촌 생활이 주는 삶의 환경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아이의 삶이 생기 차 보였다. 그리고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아빠와 팀이 되어 농사를 도와야 했다. 아이에게 역할이 생긴 것이다. 자존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모든 일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또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아픈 엄마를 도와야 했다. 설거지를 담당한 것이다. 자기의 역할이 생겼고 잔소리가 늘기 시작했다. 함께 역할을 분담하니 아이의 자리가 제법 보인다. 아이는 이제 수다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약속을 가르쳐 주고 책임감을 만들어 주니 눈에 초롱초롱 빛도 난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05 UNFAIR 2.jpg



최근에 내전 중인 시리아의 한 다운증후군 아빠 자드 이사(Jad Issa)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참고 https://blog.naver.com/wkdusguard/222165295300)


시리아의 자드 이사(Jad Issa)는 현지 제분 공장에서 일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그의 치과대학생인 아들이 인터넷 관계망 서비스에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다운증후군인 자드는 비장애인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들 사드를 낳았다. 그는 현지 제분 공장에서 일하며 그의 가족을 20년 넘게 부양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자랑인 아들 사드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 했다. 그의 성실한 모습을 본 제분 공장 사람들도 자드를 인정했으며, 이제 그는 제분 공장에서도 주임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다운증후군에 대한 편견으로는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이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가정을 가진다는 것도, 가장으로 책임을 다한다는 것도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나는 그 동력을 기회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자존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쟁으로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 군대에 갔을 것이다. 남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또 사회에 노동력도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자연스럽게 자드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그는 성실하게 그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그의 성실함이 그를 존중받게 한 것이 아닐까? 만약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제 아이도 아이 엄마도 자꾸 웃는다. 아이가 가족의 혹에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함께 살아가는 파트너다. 욕심을 버리고 아이를 받아들이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잡초는 원래부터 없었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사람이 원래부터 없는 것이다.


지능이 좀 떨어지면 어때? 키가 좀 작으면 어떻고. 아이와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주변의 눈만 제외하면.


이제 노후에 아이에게 의지도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까지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