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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Nov 05. 2021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원장 김은경         

  

책임의 한계        

   

그의 얼굴엔 진심이 묻어있었다. 또 정적이 흘렀다. 이 소모적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그가 하늘을 보다가 입을 뗀다.  

   

"왜 왔어? 그냥 모른 척하고 살지."     


"어떻게 그래? 내가……."    

 

"그동안 나도 많이 힘들었어. 나라고 쉽게 이런 결정 내린 거 같아? 너는 독일 가서 연락도 되지 않지…."

     

"......"

      

"네가 떠나고 나니 사랑도 차츰 떠나가더라고. 그렇게 시간이 가니까 연락을 끊은 네가 밉기도 했어. 한편 이해도 되고 아마 한국 땅은 뒤도 돌아보기 싫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니 미련도 버리게 되고…….     

우리 젊은 날의 미숙함에 대한 책임 때문에 나의 인생을 포기하기 싫었어."

      

"아이는? 우리가 최소한 책임은 져야 하잖아?"    

  

"어떻게 하는 게 책임을 지는 거야? 또 그게 왜 나야?"

      

"........."

     

"지금 서로 잘잘못을 따져봐야 뭐하겠니? 너도 그냥 네 인생 살아. 아이 문제는 그렇게 처리하는 게 최선이야."


      

그를 나무랄 입장이 못 되었다. 미워 죽겠지만, 이해도 된다. 아무리 이해는 되어도 아이 문제는 현실이다. 미숙아로 태어나 뇌를 다쳐버렸고, 엄마에게까지도 버림받은 아이,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 아이가 이제는 아버지에게서 버려졌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해?”   

  

“이제 솔직히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야. 우리 이제 완전히 끝났잖아.”      


냉정함을 가장하는 그가 불쌍했다. 그래 이제부터 더는 아이를 버림받게 해서는 안 돼. 이제부터 내가 책임질 거야. 오기가 생겼다. 그동안 아이 아빠를 핑계로 모른 척 회피했던 모성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보셨어요? 거기서 ‘비비안 리’가 마지막 장면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뜰 거야.’ 하잖아요. 그 영화 감명 깊게 봤는데 그 장면과 그 대사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를 찾아왔죠. 이번에도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를 독일로 데려갔어요. 아이를 데리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발을 디디던 그 순간 저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었어요.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이제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하잖아요.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돌보던 때가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도 그땐 우리나라여서 주변에 사람도 많았는데 여기서는 날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게 엄청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결론을 말하면 독일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문화와 시스템이 저를 도와주었어요. 동정이 아니라 도움이요. 그 경험이 정말 저한테는 좋았어요. 그게 제가 공동체를 꿈꾸는 이유가 되었죠.”  


        

이야기하는 도중 그녀의 표정은 비 온 뒤의 구름처럼 변화가 무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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