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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Nov 04. 2021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원장 김은경          

 


이별 그리고 탈출     


아이와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입의 근육이 문제를 일으켜 ‘관’을 입으로 삽입했고 그 방식으로 이유식을 먹여야 했다. 그런데 자꾸 먹은 것을 토해낸다. 다친 뇌가 근육을 통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래를 뽑아내야 했고 체내 산소포화도는 걸핏하면 위험수위로 떨어졌다. 수시로 몸에 열이 올랐다 내렸다 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24시간을 메여 있어야 했다. 하루 종일 그녀가 붙어 있었고, 아이 아빠가 직장을 마치고 오면 그때야 조금 쉴 수가 있었다. 한숨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 삶은 힘들었고, 일상을 무너져 내렸다. 아이도 버티지 못했다. 이유식이 자꾸 역류하면서 합병증에 시달렸다. 병원 또 수술…….          




은혜가 이유식을 넘기지 못하고 토하던 원인을 찾아서 수술한 다음다음날이었다. 아이는 겨우 안정을 찾아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왔는데 아이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왔다.  

    

"‘이대론 안 돼. 우리 이렇게 살 수 없어. 끝이 안 보여.’ 그러면서 우는 거예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그의 울음소릴 들으니 화가 나는 거예요. 아마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화가 더 난 것 같아요."  

 

  

그녀는 잠시 창밖을 응시했다. 창밖의 네온사인 불빛으로 빨갛게 파랗게 반사되는 그녀의 얼굴은 분노와 슬픔의 피에로 분장 같았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어요. 은혜를 자신이 책임지겠다네요. 그래서 저는 독일로 가게 됐어요. 그때는 무조건 떠나고 싶었거든요. 교수님이 추천해준 학교로 유학 가게 된 거죠. 가서 한동안 한국 쪽과는 연락을 끊고 살았어요. 그런데 독일 생활이 조금 안정되자 자꾸 은혜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때 제가 발도르프 교육과 그 이념에 꽂혀있을 때거든요. 공부 마치고 돌아가서 다시 은혜를 한번 잘 키워보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대학 때 친구랑 통화하는데 은혜 아빠가 결혼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순간 마음이 묘해지더라고요. 헤어졌지만 내 마음속에 뭔가가 남아 있었나 봐요. 아이를 맡겨 미안하기도 했고……. 또 아이는 어떻게 하나 싶기도 하고……."    


 

그녀는 잠시 귀국했고 아이의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그녀가 독일로 간 얼마 뒤 아이는 시설에 보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 아빠인 그는 이제 직장동료와 결혼을 한다고 했다. 두려움과 배신감에 그녀는 며칠을 방황하다가 그에게 만나자고 전화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반갑다. 좋아 보이네. 독일 물이 좋긴 좋나 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도 살아야 했어. 난 가슴이 아프지 않은 줄 알아? 근데 나도 살아야 했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가 이해되는 자신이 미웠다. 20대의 청춘이 후회스러웠다. 

    

"너의 선택은 존중해. 하지만 은혜 문제는 다르잖아. 그렇게 네 맘대로 처리하면 안 되는 거잖아. 나에게 의논이라도 해야 하는 거잖아."

     

"의논하면…. 뭐가 달라져?"

      

"내가……."

     

"네가? 독일의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난 말이야 최대한 너를 배려하고 보호한 거야. 우리 그때 너무 힘들었잖아. 우리 둘 다 죽을 거 같았잖아. 미래도 희망도 모두 무너졌었어.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네가 떠났겠니? 알량한 책임감 때문에 네가 떠나지 않았으면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한참 침묵이 흘렀다. 남자답고 당당한척하려고 애쓰는 그가 안쓰러웠다. 

    

"우리 정말 사랑했었나?"

      

"그래. 최소한 나는 그랬었지, 그런데 네가 먼저 떠났잖아. 나랑 아이만 남겨놓고……."

     

"내가 그냥 떠났냐? 네가 나보고 가라고 그랬잖아. 너무 힘든데 너까지 나를 가라고 떠밀었잖아?"

     

"그래, 내가 그랬어. 다시 말하지만, 그때는 너를 그 상황에서 풀어주는 게 나의 최선이고 너에 대한 배려였어. 사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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