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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Nov 06. 2021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원장 김은경       

     

이제는 버려야 하는 것들 

    

서울을 떠나오던 그해 늦가을, 그녀는 그동안 머물고 있던 작은 방에서 과거와 연결된 편지와 사진들을 정리했다. 어수선한 그 방 안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짐 싸고 있었다. 작은 창문으로 어두운 동네 골목길이 보였다. 기울어진 큰 전봇대와 그 전봇대에 달린 낡은 등이 칙칙한 골목을 희미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의 두 그림자가 그와 그녀의 기억을 불러온다. 뜬금없이 꽃다발을 들고 이른 아침에 찾아오던 그.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강의실 밖에서 서성이던 그,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알바하던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던 그. 퇴근길의 외로움을 안아주기 위해 어스름한 전봇대 뒤에 숨어있던 그. 이제 기억 속의 수많은 버팀목이었던 그와 이별을 해야 한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눈물이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순간에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누구나 그렇죠.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항상 좋지가 않아요. 그게 왜 그렇냐 하면 사람들은 즐거운 순간보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을 더 많이 기억하죠. 반면에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환상은 항상 미련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 반대로 했어요.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처음 디디던 내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정말 겁이 났어요.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저를 강하게 만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철저히 버림받은 마음으로 그와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버림받은 그래서 세상을 상대로 한번 복수하고 싶은….  

   

그래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해 가능한 한 빨리 다른 존재로 바뀌어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했어요. 이제 내가 알던 누구도 와 줄 수 없는 낯선 곳에서 아이와 둘이서 살아야 했거든요.”  

  

           

이제 모든 걸 버려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누군가와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이제 새롭게 살아야 한다. 이제부터 아이만 생각하자. 이제 여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야. 두려워하지 말자.   


        

내 손 안에서 아이의 작은 손이 꿈틀거린다. 내가 손을 너무 세게 잡았나 보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맞췄다. 그래, 집착과 두려움을 던져 버리고 꿈을 꾸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거야. 이제부터 너와 내가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인공으로 사는 거야.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고 우리의 선택으로.’      


아이에게 눈으로 말을 하며 마음을 다졌다. 이제부턴 그와 함께 보낸 시간뿐 아니라 서른이 될 때까지 나 자신에게 행복과 상처를 주었던 그 모든 시간, 그 시절과 이별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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