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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Oct 14. 2020

마음은 머리보다 수만 배 강하다

    

 비가 많이 온다. TV에서 올해가 기록적인 장마라고 떠들고 있다. 누런 물이 도로를 덮는 장면이 끔찍하다. 베란다 창밖으로 몰아치는 비바람에 휘청이며 버티는 솔잎이 애처롭다. 생각해 보면 나를 다시 일으킨 건 희망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공동체라는 아이의 미래가 우리 가족에게는 희망이었다. 가족의 희망을 내가 주저앉히면 안 된다. 희망의 여정은 계속되어야 했다.      


 아내가 삼재가 들었다고 했을 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누구나 드는 삼재, 조심한다고 피해갈 수 있다면 왜 삼재겠나?” 하며 무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횡액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벌에 쏘여 쓰러져서 119에 실려 가는 것을 시작으로 회전근 파열로 어깨 수술을 하고, 3번 요추 압박골절로 꼼짝 못 하고 누워서 3개월을 보내고, 겨우 일어날 만할 때 이석증으로 또 쓰러지고를 3년 동안 반복했다. 몸이 아픈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가던 길이 주춤거리며 꿈이 더 멀어지게 되었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정신이 조금 차려지면서 진지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을 대뇌이며 생각대로 되지 않음을 하늘의 뜻으로 핑계해봤다.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정말 내가 최선이었나 하는 자책론이 고개를 든다. 결과가 나오지 않음은 방법이 잘못되었던지, 아직 내가 결과를 볼 만큼의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이랴. 몰려드는 횡액을 버티고 살아있다는 것은, 나에게 기회가 아직 남았음이라 자위해본다. 이제 남은 나이만큼 최선을 다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역발상으로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쉼과 공백은 짧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나갈 수가 없다. 누워서 할 수 있는 노동은 책을 보는 것이다. 조금 지나 앉을 수 있을 때는 컴퓨터로 자료를 찾아본다. 심각한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발달장애인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기 일을 찾고 사회에 두각을 나타내게 된 과정에는 어떤 공동체적 환경이 있었을까? 그러다가 특이한 천재들을 만나게 되었다. 발달장애인 천재들, 지능이 20~50 정도라는 다운증후군에 천재들이 있다? 이런 모순이 말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중국엔 천재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있었고, 영국에는 ‘사라 고디‘라는 국민배우가 있었다. 시리아에서는 자신의 친아들을 치과대학에 보낸 훌륭한 다운증후군 아버지도 있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완벽하게 했다고 아들이 sns 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이야기한다. 스페인의 배우 피네다는 교육대학을 나오고 교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내가 알던 상식을 초월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이들은 복지 천국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공동체 같은 환경도 아니었다.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세상에 도전한 이야기고, 우생학의 발생지로 다운증후군의 낙태율이 90%를 웃돌던 유럽에서 이야기고, 내전으로 살기가 힘들어 국민이 세계의 난민으로 떠돌아다니는 시리아 등의 이야기다.      


 내 아이는 할 수 없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예단하고 포기한 일들이었다. 이게 뭐지? 내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이 아니다. 그러나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일이었다. 잘못됐다. 이건 처음부터 잘못된 거다. 나의 귀농도 아내의 병도 모두 잘못된 정보와 편견의 결과였다. 영국 BBC 방송국 선정한 2016년 ‘올해의 여성 100인’에도 특이한 여성이 눈에 띈다. 창조영역에 과테말라의 패션디자이너 ‘이사벨라 테자다’가 바로 그렇다. 이건 또 뭐지? 다운증후군의 20세 여성이 디자이너로 창조영역에서 인정받다니. 그렇게 찾다 보니 영국과 스페인 칠레 등에 정치인도 있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도 있고 정규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꽤 많다.      


 자책하며 자료를 계속 찾던 중에 한 소녀의 도전이 눈에 띄었다. 기존의 아름다움에 과감하게 도전하여 새로운 미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한 소녀 ‘케이트 그란트‘. 이 북아일랜드 소녀는 13세에 모델에 대한 꿈을 가졌고, 18세에 세계미인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화장품회사인 베네통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이 소녀는 작은 키에 통통한 몸을 가진 다운증후군 소녀다. 이 또한, 11kg의 감량을 통한 결과였다. 미인대회의 심사의원들은 그녀를 궁극의 아름다운 영혼이고 내면과 외면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녀의 가족과 주변 모두가 그녀의 열정과 꾸준한 노력, 당당한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이것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머리보다 수만 배나 강하다는 말이 이것이었다. 누구나 아는 이런 간단한 이유를 눈앞에 두고 나도 장애인이기에 가능한 이유만을 찾고 있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 이제야 이런 정보를 접하다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편견에 사로잡혀 정보를 찾아볼 생각은 못 하고 선배들의 족적에 대한 정보가 없음을 불만했듯이 지금의 후배들도 그러리라. 예전의 희망풍경을 보고 찾아온 갓난아이의 엄마 말이 떠오른다. “남편이 너무 답답해하며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TV 방송의 희망풍경을 보고 너무 감동했습니다.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무작정 찾아왔어요. 고맙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하나 막연했는데 여기서 희망을 품고 갑니다.”      


 우리는 확실히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 발달장애란 없다. 발달에 장애가 되는 편견과 잘못된 제도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 중심인 공동체에서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든 구분한다는 사실 자체가 편견이었다. 사람의 가능성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예단하는 것 또한, 편견이다. 우리는 이런 편견으로 발달장애를 이해해왔다. 우리에게 장애가 있다면 다름을 차등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것이다.     


뭔가 길이 보이는 기분이다. 그래 우리 공동체에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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