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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Dec 11. 2020

미국의 작은 마을 바(Bar)

 



벌써 며칠째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다. 어릴 적부터 비를 좋아했던 나도 이번의 오랜 장마는 지겨울 정도다. 끝이 날 줄 모르는 이 빗속에 상념 또한 끝이 날 줄 모른다. 목적 없는 막연한 삶에 대한 불만과 내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는 나에 대한 답으로 공동체를 꿈꾸기 시작한 지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생태, 복지, 영성 등의 다양한 이름의 공동체들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공동체들 또한 뭔가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란 느낌을 받으며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어떤 공동체가 내가 원하는 공동체인가를 고민하던 중 언뜻 뇌리를 스치는 생각의 하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내가 바라는 공동체의 모든 요건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공동체를 찾아 방황하는 것일까? 오랜 시간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보완하며 만들어진 지금의 이 사회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병이 들어버린 것이다. 자본주의와 함께 과학과 물질문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우리의 공동체는 병으로 인해 근간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향락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등이 바이러스처럼 퍼진 결과다. 그동안 내가 그토록 원하던 실체는 병든 공동체의 치료와 건강한 발전이었다. 우리의 이기적 사고방식은 빠르게 소외된 개인을 양산하고 있다. 공동체는 무너졌다. 더 늦기 전에 이 언밸런스한 삶의 바탕을 근본적으로 수리해야 할 것이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사뭇 두드린다.      



갓 30에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형이 지인인 미국인 A 씨의 초청으로 사업차 가는 것이었는데, 나는 형을 졸라서 따라간 것이었다. 형은 어렸을 때 글을 모르는 동생을 데리고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던 때처럼, 처음 미국을 방문하는 어리바리한 동생을 자상하게 챙겨주었다. 은발의 머리에 당당한 체격의 A 씨는 뉴왁(NEWARK) 공항에 나와 우릴 맞았다. 차로 한 30분 정도 가자 A 씨가 사는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 있었다. 미국을 온통 뉴욕의 맨해튼(Manhattan)처럼 건물로 가득 찬 회색 도시로만 상상했던 나에겐 그 고즈넉한 시골길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공항에서 출발해서 얼마 안 지나 숲이 울창한 작고 꼬불꼬불한 길로 이어졌다. 중간중간에 노란색 사슴이 그려진 표지판이 보였다. 사슴이 나오니 운전을 조심하라는 표지판이라고 했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던 사슴이 길에 나온다고? 놀라움의 연속이다. 잠깐 사이에 도착한 A 씨의 집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있었다. 마을은 미국식 특유의 큰 집들이 멀리 떨어져 있고 나무에 가려져서 서로 잘 보이지 않았다. A 씨의 말에 의하면 그 집 중에는 자가용 비행기들이 있어서 자체 활주로를 갖추고 있는 집들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집들이 그렇게 뚝뚝 떨어져 있었나 보다.     



A 씨는 혼자 살았고 그 집의 지하실이 사무실이었다. 지하 사무실에는 20여 대의 팩스(fax)로 가득 차 있었고 그 팩스로 전 세계의 정보가 24시간 들어왔다. 그 정보가 A 씨의 비즈니스의 포인트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몰라 어리둥절한 나에게 형이 통역해 주며 은퇴 후 혼자 그동안의 경험과 정보, 그리고 인맥으로 비즈니스 컨설팅을 한다고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미 해병 출신임을 자랑하는 A 씨는 CIA 극동 지부에서 요직에 근무하다가 은퇴한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급변하는 한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 태국 등이 주 무대인 아시아를 담당했고, 그때 만났던 각 나라의 지도자들과의 교분을 자랑하는 사진과 선물들이 약 100여 평은 되어 보이는 지하 사무실의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형은 그를 존경하는 듯했고 그는 형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A 씨는 약 4일의 방문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주었다. 나이를 꽉 채워 은퇴했음에도 그의 정열은 젊은 청년인 나보다 더 파워 풀하게 느껴졌다.     



토요일이었다. 그날은 저녁을 그 마을의 다운타운으로 가서 먹자고 했다. 워낙 숲이 울창하고 한적한 곳이어서 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우리나라 읍내 같은 다운타운이 없을 줄 알았다. 그곳이 도시 주변의 전원마을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다운타운에 가자는 그의 말에 약간 놀랐다. 차로 10여 분을 달리자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전형적인 미국 시골의 마을 거리가 나타났다. 우리는 거리 중심의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는 이 마을의 식당이고, 바(bar)이자 문화센터이기도 한 곳이었다. 한쪽 옆으로 무대가 보였고, 또 반대쪽으로 바(bar)가 보였다. 바(bar)라는 말의 어원은 ‘가로장’이라는 뜻으로 옛날에 유럽의 술집에서 손님의 말을 매어 놓기 위해 가게 옆에 말뚝을 박고 가로장을 달아 놓은 데서 연유하였다는 이야기를 어떤 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그때 언제 외국에 가면 관광객들이 우글거리는 데 말고 진짜 그 나라 사람들이 가는 ‘바(bar)’엘 가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바였다. 한옆에는 식탁용 테이블들이 놓여있고, 주크박스(juke box), 당구대 등도 있었다. 서부영화에서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 털북숭이 지배인이 멜빵 달린 진 바지를 입고 우리를 맞았다. A 씨는 그 지배인에게 한국에서 온 친구들이라고 우리를 소개했다.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넓은 카페가 가득 찼다. 마치 옛날 미국 영화 속의 마을 파티 같았다. 클라크 게이블, 비비언 리가 곧 파티복 차림으로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린 식사를 주문했다. 미국식 스테이크와 샐러드 그리고 수프를 시켰다. 세상에! 내가 본 중에서 가장 큰 볼(bowl)에 나온 수프와 내 얼굴만 하고 두께가 4~5cm는 되어 보이는 스테이크 등등, 1인분으로 제공되는 식사량이 어마어마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스테이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컸다. 거의 반쯤 남기며 식사를 끝내고 칵테일을 한 잔씩 할 때 갑자기 무대에 사람들이 올라가 공연을 시작했다.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악단이었다. 흥겨운 음악 소리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와 춤을 추었다. 이 마을은 매주 주말이면 이런 파티가 자연스레 열리고 모두 파티를 즐긴다고 했다.           


누가 주최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을의 자연스러운 시스템인 것이다. 누구든 여기 와서 식사하고 음악을 즐기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거기에는 흑인도 동양인도 백인도 있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젊은 신혼인 듯 보이는 부부도 있었다. 신분이든 나이 든 직업이든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여서 같이 즐기는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말이 안 통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었다.     



그때 조금 특이하게 보이던 사람이 친구들과 당구를 치던 모습이 내 기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었다. 인상이 남달라서 몇 번씩 몰래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었다. 워낙 오래전 기억이고 또 그때는 다운 증후군에 대해 잘 모를 때여서 정확하진 않지만, 다운 증후군인 아들을 키우면서야 그때 그가 다운 증후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거리가 조금 있어서 어떤 대화인 줄은 전혀 듣지는 못했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과 아주 자연스레 어울리고 있었다.           

     

내가 그리는 공동체는 바로 그런 것이다. 조금 장애가 있다 해도,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고 기대를 능력만큼만 한다면 인간 대 인간의 수평적 관계는 형성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그만큼만 기대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고 사랑 아닌가. 그런 마을의 문화를 우리가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런 카페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문화가 부러웠다. 나중에 공동체가 생기게 되면 반드시 저런 카페 형식의 마을 문화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시 낭송도 하면서 모두가 즐기는 그런 차별 없는 모두의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아부지, 밖에 비가 많이 와요. 근데 안 주무세요?”

잠에 취한 아이의 음성이 끝없는 상상 속에서 나를 현실로 소환했다.

“아니 한밤중에 왜 일어났어? 비가 무서워?”

“오줌 누려고….”

불을 켰다. 잠에 취해 눈이 반쯤 감긴 아이가 맑게 웃는다. 그 웃음 하나로 됐다.

“그래, 일보고 빨리 자라.”

쏴아 하고 내리는 빗소리가 천지를 개벽하는 듯하다. 산골의 밤을 노래하던 다양한 소리들을 모두 하나로 통일해버린다. 작은 빗방울 하나하나의 소리도 뭉치면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데….               

2017년 여름 장마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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