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나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너는 보기 싫어
"병신춤"을 처음 tv에서 본 순간 나는 얼굴로 뻘건 피가 솟아올라 상기되고 머리끝이 송긋하게 솟는 것을 느끼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저게 뭐지? 왜 저런 춤을 추지? 몸이 아픈 무용수인가? 공옥진이란 무용수였다. 춤이 끝난 후 걷고 말하는 것이 정상이다. 처음에는 장애인을 비하하고 놀리기 위한 사회적 현상을 승화하여 예술이라는 허울로 감추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병신춤은 조선시대 때 계급적 차별의 한을 풀고 어리석은 양반들을 풍자하기 위해 서민들이 비꼬아 추던 춤이라고 한다. 사회 풍자를 한 예술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왜 병신춤은 나를 숨고 싶게 했을까?
학창 시절에는 전교에 장애인은 나 하나였다. 장애라는 특권과 엄마의 치마광풍으로 나는 학교에서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됐고 아무도 날 막지 않았다. 가끔 내가 받는 특급대우에 화가 난 친구 집단에 끌려 빵집으로 가서 혼줄이 난적도 있다. 그래도 난 그런 친구들이 무섭지가 않았다. 그들의 쟁점은 IQ가 전교에서 1등이라는 아이가 왜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노느냐며 자기들과 어울리자는 말이었기에 무시했다. 그냥 공부를 안 하면 성적이 나빠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심밖으로 나갈 수 있는 해법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학원에 등록을 하고도 가방만 수업에 출석을 시켜놓고 나는 가까이 있는 명동성당으로 땡땡이를 쳤다. 성모병원을 드나드는 아픈 사람들과 가족의 얼굴을 유심히 봤고 그들을 굽어보는 성모상과 분수 앞에서 혼자 노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엉덩이와 끌리는 다리를 고무판으로 감싸고 거리를 기어 다니며 동정을 구하는 장애인 걸인들을 보았다. 아픈 사람들과는 달리 구걸하는 장애인의 얼굴을 보는 것은 내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고, 그들이 눈에 들어오는 길을 피해 가거나 바로 시선을 돌려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자신을 보았다. 왜일까?
그 후에도 나는 구로공단에 "공순이"라고 불리던 언니들과 몇 년 동안 주일미사를 보다가 그다음으로 홀트양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입양을 기다리는 혼혈아동의 숙소에를 다녔다. 동네사람들은 나도 그냥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 중의 하나로 생각할 정도로 매일같이 학교가 끝나기만 하면 그곳으로 갔었다. 그냥 혼혈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다였고 가끔 그들의 기도시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 한 장애를 가진 흑인 혼혈아동을 만났다. 그 아이도 장애를 가진 내가 매일 드나드는데도 나를 피했고 나도 그를 보는 순간 얼음이 되곤 했었다. 어느 날 그는 기도시간에 자기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고아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를 통해서 처음으로 믿음을 진심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그 후 진심으로 예수를 믿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심리학 개론 수업 중에 처음으로 다른 장애인을 볼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피하려던 이유가 무엇인지 단서를 잡았다. 바로 "동일시"이고 "투사"인 심리적 상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하고 잘 어울리고 나 외의 장애인이 없는 환경에서 편안하게 살던 나는 늘 "너는 장애가 없는 아이같이 잘 웃고 명랑해"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면 즉 "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비교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그대로 들어내는 표현인 것이다. 바로 사회에 팽배해 있는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은 나에게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에 동참했던 나였기에 나의 부정적 부분인 장애를 가진 "저 사람"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심리적 작용을 깨달고나서 나는 장애를 포함한 나의 모든 강점과 약점을 모두 포용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장애를 가진 걸인도 비장애인 걸인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이고 돈 버는 수단으로 걸인을 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장애를 가진 "나"이고 다른 사람은 장애를 가진 독립적인 "타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은 똑같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가르쳤고 잘하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을 공정하게 칭찬할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이 현상은 가난한 자와 부자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권력자와 추종자의 경우도 일어난다. 미국에 입국할 때 종종 소수민족 심사관이 소수민족에게 더 깐깐한 경우도 많다. 가난했거나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필요이상으로 더 증오하고 멸시하기도 한다. 소수 민족 중에 성공한 사람이 변변치 못해 보이는 같은 소수민족을 멸시하고 백인 편에 서는 경우도 투사적 동일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성공한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을 더 무시하고 막 대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타인에게서 발견한 자신의 아픈 부분을 동일시하면서 그 사람에게 더 강하고 매몰차게 투사하는 방법으로 살기 때문이다. 이겨내는 방법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아픈 부분을 직시하고 보듬어주며, 자신에게 관대하기도 하고, 잘했을 때 스스로 칭찬해 주기 시작하면 이 세상은 더 건강해지고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