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상이 품고 있는 "리우 데 자네이루"
짧게 우리는 "리우"라고 부른다. 2016년 하계 올림픽이 열려 우리에게 친숙한 브라질의 해변도시이다. 리우(Rio)는 '강', 자네이루(Janeiro)는 '1월'이라는 뜻으로 북반구 사람인 나의 정서로는 마치 추운 1월의 얼어붙은 차가운 강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남반구에 있는 1월의 강은 한 여름의 시원한 느낌일 것이다. 이곳은 대서양이 굽어져 들어와 만들어진 만인데 1502년 1월 처음 발견한 포르투갈인 항해사가 산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것이 강이 끝나는 아름다운 포구로 보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좌우간 뭔가 낭만적이다.
낭만적으로 들리는 리우까지 가는 길은 현실적으로 고난의 길이었다. 며칠간의 세미나를 마치고 밤이 되어서야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때까지도 어디론가 가서 하룻밤을 묵고 가는 길이려니 했다. 아니었다. 그 버스는 밤을 뚫고 달려 동이 트기 시작할 즈음에 리우에 도착을 했다. 밤새도록 왜 그렇게 에어컨 바람은 세게 불었던지... 온몸이 마비가 되는 듯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을까 관광버스의 좌석은 허리가 휘고 주저앉았던지 졸음에 취한 몸을 받아주기에는 가시가 돋친 듯했다. 마치 지옥이 있다면 이와 비슷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자 곧 안개가 걷히듯 사라져 버렸다.
여름의 더위가 힘을 쓰지 못하는 새벽이라서인지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시에는 사람들의 북적임이 적었다. 늘 밤을 태워가며 일하는 습관에 찌들어 새벽공기의 상큼함은 느껴 본 지 오랜만이라 그런지 눅눅하지만 조용한 거리에 푸르스름한 이른 모습이 간밤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목적지는 그 유명한 예수상을 보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늘 사진과 영상으로 대하던 인자한 모습의 거대한 예수상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작은 흥분으로 떨렸다.
드디어 사람들이 모여들며 줄이 길어지고 곧 트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기슭을 요란한 금속음을 내며 달리는 트램 아래로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 정교하고 세련된 곳으로 보이지는 않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좀 오래되고 낡은 듯한 지방의 한 도시였다. 리우를 읽느라 잠시 어디로 향하는지 잊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저기, 저기"를 외친다. 올려다보니 예수상의 뒷모습이었다. 이런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뒷모습을 먼저 보다니 하는 생각을 하며 사람들의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에이~ 사진이나 영상의 효과였나? 마치 리우 시 전체를 포용할 듯 팔을 벌린 예수상은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크다는 상상을 만들어 놓았었다. 별로 크지도 않고 벌려진 팔도 세상을 감싸는듯한 부드러운 선이 아니라 날카로운 직선을 그리며 벌리고 있었다. 아! 한국의 곡선미는 아닌 것이 틀림없다. 다행히 예수상은 머리를 들어 멀리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약간 고개를 숙여 나를, 사람들을,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직선으로 팔을 펴려면 분명 더 힘이 들 텐데 어쩌면 예수님이 겪은 고통과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을 대치하고 있는 표현 같았다.
갑자기 트램으로 계속 올라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어지고 있었다. 올라오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상을 배경으로 예수상처럼 팔을 벌리고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바닥에 누워 올려다보며 찍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하고 찍었다. 나는 셀피를 좋아해 이런저런 구도로 혼자 사진을 찍었다. 역시 한국사람이 주체로 이끌고 있는 우리 팀은 그 비좁음 속에서도 현수막을 펼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대충 여기저기 다양한 각도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정작 예수상은 그저 내 배경이 되었고 나는 아까 처음 본 뒷모습 외에 정면에서 예수상을 똑바로 올려다볼 시간조차 갖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자! 내려갑시다" 하는 소리에 뒤를 돌면서 배경에 있던 예수상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예수상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갑자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지? 얼른 눈을 피해 아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막으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예수상 밑의 그 자리에 혼자였다. 우리 팀의 누군가가 나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북받인 감정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는 꼭 집어 표현할 수 없어 눈물이 어느 정도 멈추자 도망치듯 예수상을 떠났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스치듯 본 그 예수상의 눈빛은 처음 내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그 눈길 그대로였다. 바삐 살아오며 너무 많이 변한 나는 그때 그대로의 눈길로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예수상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삶에 너무 찌든 내 모습은 그대로 드러났고 마치 변한 모습으로 첫사랑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에 갑자기 숨고 싶은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반가운 마음을 숨긴 채 나는 얼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예수상이 서있는 그 주변은 브라질의 우범지역이라고 한다. 환자가 있는 곳에 병원이 세워지고 그 병원이 있는 지역으로 더 많은 환자가 몰려드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마음도 역시 초심을 완벽하게 지키며 우범지역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치유하시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왜 나는 그렇게도 브라질을 향한 마음이 식지 않았을까를 조금 알 것 같다. 정년 후 무엇을 할까 하고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 중남미 선교였다. 내가 감히 선교라 해봤자 그저 또 다른 소외된 사람들인 장애인과 그 부모들에게 내가 그동안 미국에서 배운 지식과 나누어 온 경험을 나누는 정도이다. 처음 만난 모습 그대로인 예수상과 눈이 마주치며 나도 정년 이후라도 특수교육을 시작했을 때의 초심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생각이 옳다는 확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