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하려고 해도 현장을 알아야...
지금은 정보에 접근할 길이 많이 있으니까 미국대학으로의 유학을 원하는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유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미국대학 입학사정에 관한 교수진, 구비서류, 입학절차, 연구실적등 일반적인 정보는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실질적인 현장 정보와는 좀 다른듯하다. 뉴스를 통해 요즘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미국대학에 입학을 하는 사례를 듣지만 아직도 한국 석사학위는 미국대학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다. 특히 내가 유학을 결정하던 80년대에는 석사가 인정이 안된다는 정보가 만연했었다. 또한 외국학생에게는 장학금 지원이 없으며 입원원서에 장학금을 원한다는 내용을 적으면 입학사정에서 불리하다는 이야기까지도 있었다. 나도 그러한 정보에 기초해서 한국에서 석사를 마쳤지만 남가주 대학(USC), 버지니아 주립대학교, 미네소타 주립대학교등 세 곳에 석사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로터리 클럽 장학금도 받았겠다 장학금 신청난에는 큰 엑스표를 그었다. 그중에 가장 신속하게 답을 한 곳은 캘리포니아의 USC였다. 역시 수강료가 높은 사립대학인 만큼 학생유치를 위해 발 빠르게 입학허가를 보낸 것이다. 당연히 석사과정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다. 다른 두 대학도 기다려봤지만 답이 오지 않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했던 나는 그냥 USC로 결정을 하고 출국준비를 했다.
출국 날짜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미네소타 대학에서 편지가 왔다. 거기는 사실 미국의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체장애를 전공하는 교수님이 있다고 해서 지원서를 내 본 곳이었다. 이미 갈 대학도 결정했으니 별생각 없이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석사과정으로 입학원서를 낸 나에게 박사과정으로 허가를 내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한국 석사과정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내가 입학원서에 쓴 석사과정을 지우고 박사과정으로 입학허가를 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들이 실수를 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입학거부가 될 수 있다던 재정보조난에는 분명히 큰 엑스를 썼건만 무려 50% (20시간/주)의 조교 장학금까지 준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너무도 좋은 조건임에도 믿을 수가 없었고 이미 갈 대학도 결정했으니 분명 수상하기도 하고 학생이 부족한 대학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무시해 버리고 비싼 학비로 악명이 높은 사립대학인 USC를 의기양양하게 나의 유학지로 마음을 굳혔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의 학위도 소중하게 모두 다 인정받는다는 것이고 박사과정을 집중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거나 교수들이 많은 그랜트를 가지고 연구가 활발한 대학의 경우에는 외국학생에게도 많은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권의 유학생들은 실력뿐만 아니라 성실하기 때문에 선호하기도 한다.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 교육에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미국대학에서 주는 좋은 기회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 입학 서류 중에는 학위증과 함께 대학 4년 동안의 성적표를 제출한다. 미국 박사과정 입학에서는 대학원 때의 성적보다는 4년 동안의 학부 성적을 중요시한다. 나의 대학 4년간 평균은 B+ 정도였다. 그런데 평균학점(GPA: Grade Point Average)을 계산을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부 4년 전체의 평균성적을 내는 것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을 따로 계산하는 방법도 있고 1-2학년의 성적과 3-4학년의 성적으로 나누어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 나의 경우 전공과목만 보면 A를 넘었고 1-2학년때보다 3-4학년때 성적이 높다. 그렇게 3가지 방법으로 평균 성적을 계산해 제시하고 왜 1-2학년때 성적이 낮았는지 또는 전공과목에서는 높았는지 하는 내용을 자기소개서에서 강조하여 설명을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에 가서 고등학생때와는 다른 교육방법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대학생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었다.
토플과 GRE성적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점수로 각 대학에서 입학기준 점수를 정해놓고 있다. 토플의 경우 80점 이상을 맞아야 하고 GRE의 경우는 330점 정도를 요구한다. 토플은 외국학생에게만 요구하는 것이고 GRE는 미국학생을 포함한 모든 입학지원자들의 치러야 하는 시험이다. 하지만 학교에 따라서 GRE를 요구하지 않는 대학도 있다. GRE가 낮은 경우 인터넷 서핑을 통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시험을 봤던 과거에는 현재와는 계산방법이 달라서 토플 550점, GRE 1000점이 입학의 기본조건이었다. 과거의 GRE는 맞은 문항만 세는 것이 아니라 틀린 문항 2개마다 맞은 점수 1점을 감하는 세상에 처음 보는 채점법을 사용했었다. 나는 로터리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 좀 더 많이 했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토플 580, GRE 1200점 정도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GRE 점수가 높을수록 입학이 쉽고 장학금도 받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또한 교수 추천서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 교수님과 직접 만나 공부방향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을 어필하여 그런 내용도 적어달라고 요청을 해도 좋다. 나는 바쁘신 교수님들께 영어로 추천서를 써 달라고 하는 것이 또 다른 짐이 될 것 같아 어느 정도 내가 영어로 초안을 쓰고 그것을 교수님이 생각하신 대로 편하게 바꾸실 것을 조심스럽게 부탁드렸었다.
이 정도의 서류구비는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석사로 지원했던 나에게 박사입학을 허락할 정도로 미국대학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 바로 경력이다. 사범대의 경우는 아무리 연구중심의 일반대학원이라고 해도 2-3년의 교사경력을 반드시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유학을 준비하기 전에 5년간의 교사경험이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내가 근무했던 학교가 그 당시 한국최고의 재활원으로 손꼽히던 곳이라 프로그램이 다양했던 덕분에 석사를 졸업하기까지 5-6편의 연구논문을 기관지에 발표할 수 있었다. 다른 유학생이나 미국 지원자들 보다도 좋은 실무경력과 저널에 발표한 연구논문 때문에 입학사정 회의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한국과 미국의 큰 차이이다. 한국에서는 학사 석사 박사로 이어지는 연구자의 길을 똑바로 간 사람을 선호하고 그 중간에 교사경력이 있는 사람을 오히려 성골이 아닌 진골이라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경험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실무 일을 하고 유학을 하는 사람들이 더 강한 후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뒤 다음 단계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다.
막 1984년 LA올림픽을 마치고 아직도 전 세계의 청년들의 열기가 느껴지는 USC 대학 캠퍼스에 발을 들이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뭔가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세리머니를 했다. 올림픽 수영대회가 열렸던 곳이라는 수영장이 참 좋아 보였다. 학과에는 외국 대학원생들을 위한 오피스를 마련하고 한 명 한 명에게 편지수신함도 주었다. 그리고 아무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대의 컴퓨터가 오피스에 널려 있었다. 처음 IBM 컴퓨터가 우리나라에 선을 보였을 때 나는 교사로 근무했던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나는 컴퓨터와 첫 만남에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런 첫사랑 컴퓨터가 여기저기 책상 위에서 나를 기다리던 오피스 때문에 USC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지도교수를 만났을 때부터 신경전이 펼쳐졌다. 분명히 안내책자에 토플성적이 580을 넘으면 영어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쓰여 있다며 바로 전공수업만 듣겠다는데 그 교수는 한 과목이라도 꼭 영어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돈이 부족한 유학생으로선 한 과목이라도 빨리 전공과목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고 영어교사였던 나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그 교수의 조언이 틀리지는 않았다. 영어과목을 들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리포트 쓰는 법과 다양한 종류의 글을 쓰는 법을 배워 여태 영어로 글 쓰는데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전공과목도 이미 한국에서 들은 심리학의 기초를 들어야 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받은 편지를 통해 외국학생에게도 조교자리를 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지도교수를 찾아가 조교자리를 물어봤다. 그 교수는 우리 과에는 조교라는 제도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심리학 시간에 담당교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강을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학과에 속한 조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교수가 학생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거짓말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이라 느꼈다. 거짓말을 했고 외국학생을 차별하는 교수밑에서 공부하는 것이 싫었던 나는 그날 바로 미네소타 대학에 전화를 했다. 박사과정에 입학허가를 받았으나 너무 연락을 늦게 받아 다른 대학에 입학을 해 공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네소타 대학으로 겨울학기부터 옮기고 싶은데 입학허가가 아직 유효한지를 물었고 편지에 50% 조교일을 준다고 했었는데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쉽게 겨울학기에 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 주려고 했던 조교일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주었기 때문에 현재는 25% 정도뿐인데 그것이라도 괜찮겠느냐며 원하면 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USC를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미네소타에서 가장 춥다는 1월에 새로운 유학을 시작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