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교육환경: 에덴의 동산
나는 성경을 통독할 때 매번 주제를 하나 정해서 읽는다. 한 번은 하나님과 어린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읽은 적이 있다. 그중에 가장 신이 나고 나도 함께 하고 싶어 가슴이 뛰는 부분이 있다. 직접적으로 어린이를 지목한 글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첫 자녀인 아담이 살던 에덴동산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 2:8)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교사인 나는 행복감에 눈이 동글동글 반짝반짝 해지곤 한다. 막 창조를 통해 새 세상에 나온 아담에게 다정한 대화를 나눠주시고 여러 가지를 주의사항과 해야 할 활동들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다정함이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더욱 비슷하겠지만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어린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로 생각이 든다. 에덴동산은 선생님 하나님이 학생 아담을 위해 꾸며놓은 교육환경인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동을 가르치는 교육환경과 교육활동이 이래야 한다며 미소를 짓게 된다.
첫째로 "에덴의 동산"하면 드넓은 초원과 골짜기와 냇물이 아기자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환경 속에 다양한 동물이 어우러져 살고 니무에는 먹음직스러운 과실이 주렁주렁 달린 곳일 것 같다. 아이들이 이런 자연적인 환경에서 공부를 한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을 해본다. 교육환경에는 풍부한 먹거리로 배고픈 아이가 없고 만지고 보고 상호작용을 하는 자연 속 배움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인자하신 선생님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다양한 친구들과 마음대로 뛰어놀고 탐구하는 곳이면 좋겠다. 서로 대화하고 함께 노래하고 까르르 대고 웃는 명랑함이 주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에덴의 동산과 비슷할 것 같다. 미네소타에서 친하게 지낸 마리교수님은 남들과는 좀 다른 퀘이커(Quaker)라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독특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여름이면 퀘이커들이 모두 만나 3박 4일 동안 "나이팅게일"이라는 캠프를 한다. 몇 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초원이 마당인 한 교인의 집에서 캠프를 했다. 앗! 거기에 우리 대학교의 한 남자교수님도 참여를 한 것 아닌가? 그분은 평소 말씀이 없어 엄청 딱딱해 보이기 그지없는 데다가 전공이 달라 말 한번 붙여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캠프에 도착을 하는 순서대로 사람들은 넓은 초원에서 각자 원하는 곳을 찾아 텐트를 쳤다. 그런데 혼자 텐트를 치다가 누군가 거들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노래를 시작했고 그 소리가 들리는 옆텐트의 사람들이 함께 화음을 맞추어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아! 나이팅게일! 지저귀는 새!! 그래서 캠프명이 나이팅게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멀리 걸어서 (집 마당이 엄청 큼!) 식사를 하러 집안으로 옹기종기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또 노래가 시작되었다. 어디서든 두서너 명이 모이면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부처보다 더 말이 없이 근엄했던 남자교수님도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3박 4일 동안 노랫소리가 그치지 않으면서 여름 수련회의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퀘이커 예배는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만큼 고요한 정적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이던 두 시간이던 원으로 둘러앉아 침묵을 하는 것이었다.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누구나 정적을 깨고 간증이던 말씀이든 나누고 싶은 어떤 말이던 해도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적 속에서 진행되는 퀘이커 예배 중에 누군가가 한 첫마디가 "밥 먹고 합시다"였다고 하며 미국 방송의 개그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퀘이커의 교육이 엄청 좋다고 한다. 어린 고명딸을 가진 미국의 42대 대통령이었던 크린턴이 백악관 근처에 딸을 위한 최상의 교육기관을 팔방으로 찾다가 바로 퀘이커 교단의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넓은 자연 속에서 마음대로 꽃도 심고 과실나무도 심고 땅을 파며 지렁이도 만나고 나비와 벌, 잠자리등도 만날 수 있는 교육환경 속에서는 모두 행복한 아이들이 되지 않을까? 왜 우리는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 학생을 몰아넣고 밖에 살아있는 교육자료들을 모두 책 속으로 집어넣은 교육에 집착하는 것일까? 유치원 때처럼 자유로운 교육환경이 학년이 올라가도 자연과 실생활 속에서 활동을 직접 체험해 보고 커다란 나무 그늘밑에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통해 배우고 실험해 보는 환경이면 좋겠다. 학급당 인원수가 많이 줄어든 요즘의 학교에서는 자연환경 속에서의 교육도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18세기의 프랑스 사상가 룻소는 그의 저서인 에밀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자연주의 교육론을 주장했고 영국의 써머힐 스쿨 (Summerhill School)이나 우리나라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성화초등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예를 봐도 교육환경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학교에서는 더욱더 학생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믿음을 생활화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에덴의 동산 모형을 닮아야 한다. 에덴의 동산과 같은 교회학교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장애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신앙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된다.
둘째는 창의적인 활동이 있는 환경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제일 진짜 부모나 선생님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 2:19)"라는 부분이다. 하나님이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하는 구절에서 마치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기가 엄마를 먼저 부르나 아빠를 부르나 떨며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나 아기가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것들을 어떻게 부르는지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인자한 엄마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가슴속까지 차오른다. 부모가 나무토막을 들고 "이게 뭘까요?"하고 어린 자녀에게 물으면 "자동차"하고 대답을 하면 나무토막은 쌩쌩 달리는 자동차가 된다. 아이가 낙서같이 그린 그림을 가리키며 "이건 뭔가요?"하고 물을 때 "공룡"하고 말하면 부모님들은 맞장구를 치며 공룡이라고 불러준다. 하나님도 아담이 목이 긴 동물을 보고 그 특징에 착안하여 "기린"하면 그 동물은 기린이 되고 코가 긴 특징을 가진 동물을 "코끼리"하면 코끼리가 되는 창의적인 활동을 맡기셨다. 교육도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키워주는 활동이 있어야 하고 교회학교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에덴의 동산이어야 한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 의하면 아기 때는 모든 것을 만지고 입에 넣어보고 사물을 이해하는 감각운동기가 있다. 감각운동기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아이들은 새로운 사물을 보면 자신이 아는 물체로 가상하여 노는 상징적 놀이를 시작한다. 이때는 외부의 물체를 보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물과 유사점을 찾아 "동화"를 시키는 인지발달 과정이 있다. 예를 들면 베개를 등에 업고 아기라며 노는 "상징적 놀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아동들에게 권하는 동화이야기들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상상으로만 가능한 일들로 가득 찬 것도 아이들의 인지발달을 돕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더욱더 많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연결을 하거나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는 다른 외부의 자극은 새로운 지식으로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에서는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마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무엇이라 부르나 보시려고"하는 부분이 너무도 다정한 마음으로 어린아이의 답을 기다리시며 창의성을 촉구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교육환경은 질문을 하고 스스로 탐구해 보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굳건히 하고 또 새로운 것들은 학습할 뿐만 아니라 각자의 창의성에 따라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허락된 에덴의 동산이어야 한다.
세 번째는 에덴의 동산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유로운 의지력이다. 사람은 에덴의 동산에서 어떤 나무의 실과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창 2:8). 하나님께서 오늘은 샐러드를 먹고 오늘은 구이를 먹고 등등 우리에게 매 순간 할 일을 이래라저래라 지적하지 않으신다. 물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인지 기도를 통해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매사에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를 일일이 기도한다며 현실 속에서 제대로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운 의지력의 의미와 그 힘을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살아가야 하는 규율과 질서의 굴레를 넓게 정하시고 우리에게 자유의사를 허락하신 것이 너무도 좋다. 요리도 내 마음대로 하고 동식물도 내 마음대로 키우고 이름도 붙이고 자유로운 생각을 다양한 활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일반학교나 교회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각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중심으로 교육활동을 제공하고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에덴의 동산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교육을 교실에서만 해야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에덴의 동산과 같은 성서적 교육환경을 유치원뿐만 아니라 일반 초중고 교육, 특수교육 모두에서 실천되면 좋겠다. 특히 교회학교는 반드시 에덴의 동산과 같은 성서적 교육환경을 마련해야만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학교는 일반 사회에서 흔히 보는 획일적인 교육환경과 방법과는 차별화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가정과 학교에서 공부와 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일반학교와는 다른 에덴의 동산과 같은 교회학교에서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경험하고 믿음을 굳건히 하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하던 에덴의 동산과 같이 교회학교에서는 각자의 능력에 맞추어 하나님을 경험하고 창의적인 활동에 마음대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설계하신 에덴의 동산에서 학습하고 체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