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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Oct 16. 2021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말씀 쿠키 153


   

살다 보면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때 진짜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고 죽을 용기로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어요. 죽음을 선택한 사람은 자기는 죽음으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남은 사람의 고통은 평생 가지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남은 사람 생각할 여지가 없겠지요. 삶을 선택한 사람은 그 남은 사람을 떠올렸을 거예요. 남은 사람이 받아야 할 고통을 생각하고 죽을 용기를 가지고 삶을 선택해요.     


저는 세 번이나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그래서 죽음을 선택할 뻔 한 기억이 있어요. 그중 하나가 몸으로 느껴지는 통증이에요. 35세에 경부암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무통주사를 맞이 않았어요. 1995년 당시에는 무통주사가 비보험으로 15만 원이나 해서 아는 사람만 알고 맞았던 것 같아요. 간호사들도 비용을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만 권했는지 저는 무통주사가 있는 줄도 모르고 고스란히 수술 후의 살을 잘라내는 것 같은 통증을 참아내야 했어요. 복부를 30cm 정도 절개하고 자궁을 모두 들어내는 대 수술이었는데 수술 후 배 위에는 묵직한 모래자루가 올려져 있고 팔에는 링거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어요. 수술 자리가 벌어지지 않고 잘 붙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진통제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어요. 주삿바늘 다 빼 던지고 떼굴떼굴 구르고 싶을 만큼 아픈데 움직일 수도 없고 차라리 죽고 싶었어요.


두 번째는 수술 후 우울증이 왔을 때에요. 3일 동안 계속 울었어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도 없고 그동안의 삶이 헛되게 느껴지고 죽는 것이 가장 평안할 것 같은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죄라고 하니 죽어서 지옥 가기는 싫은데 길을 가다 차가 와서 나를 치어 죽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녔어요. 제가 죽으면 제 아이들이(10세 4세) 아이들이 엄마 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용기를 내어 삶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세 번째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예요. 여의도 시범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학교에 다닐 때인데 집에서 편지가 왔어요.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가 되었으니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신청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름이 이상해요. 저는 조경희인데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조*숙인 거예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어 아버지께 여쭈어 봤더니 사연은 이랬어요. 1950년대 말 아이들이 태어나서 죽은 경우가 많으니 언니가 태어났는데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2년이 지나 제가 태어나니 그때 출생신고를 같이 하면서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출생 연도를 줄인다는 것이 3년이나 줄이는 바람에 면사무소 직원은 당연히 언니인 저를 조*숙으로 동생인 언니를 조경희로 등록한 거고요. 


언니와 저는 이름이 바뀐 줄도 모르고 학교에 다녔어요. 언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 다녔는데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으니까 제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하라는 통보가 오자 언니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라고 한 거예요. 하루아침에 18년 동안 살아온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고 명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죽고 싶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부기 2급 자격증도 따고 학교 졸업하면 경리로 취직할 수 있는데 주민등록번호가 달라지니 이 모든 꿈이 한꺼번에 증발해버린 거예요.

무작정 걸었어요. 펑펑 울면서 걸었어요. 길을 건너며 차가 와서 저를 탁 쳐서 죽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 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천천히 건넜어요. 빵 하는 요란한 경적이 울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세 번의 죽음의 그림자가 저를 비켜가고 지금의 제가 있어요.

 

누구나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있어요. 욥이 그랬어요. 하루아침에 십 남매와 모든 재산을 잃고 몸에는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박박 긁고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한 뒤 집을 나가고 친구들은 위로한다고 와서 모두가 너와 자식의 죄 때문이 아니겠느냐 한번 생각해봐라는 조언이나 하고 있으니 죽고 싶었을 것 같아요. 다행히 욥은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선택하여 이전보다 두배나 되는 축복을 받아요.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에게 밝은 햇살이 비취는 터널의 끝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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